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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한의 리썰웨펀]북한군은 왜 '월북' 공무원을 쏘았나? 사건의 재구성
뉴스종합| 2020-09-24 18:05
24일 오후 인천시 옹진군 소연평도 해상에 실종됐던 해양수산부 공무원이 탑승했던 어업지도선 무궁화 10호가 정박해 있다.[연합]

[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실종-월북-발견-총격-불태움. 이번 사건의 흐름도다. 이 중에서 가장 의아함을 자아내는 2개의 키워드는 '월북'과 '총격'이다.

목포 소재 해양수산부 소속 어업지도 8급 공무원 K씨는 왜 NLL(서해 북방한계선)을 넘어 월북한 것일까. 그리고 북한군은 월북 의사를 밝힌 이 K씨를 왜 돌연 총격 사살했을까.

안타깝게도, 군 당국은 K씨가 월북을 시도한 여러 개의 정황 증거를 파악했다고 밝히고 있다. 해당 증거를 공개할 경우, 군의 대북 정보자산이 노출될 수 있어 공개할 수는 없다고 한다. 현재 상황에서 K씨의 월북 시도를 전제로 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또한 군 당국은 북한군의 총격에 대해 "상부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한다. 군은 이 또한 근거가 밑받침된 내용이며, 관련 근거를 공개할 경우 군의 정보자산이 드러날 가능성을 우려한다. 따라서 '월북'과 '총격'이라는 크리티컬한 두 가지 '사건'에 대해 지금 당장으로서는 사실이라고 전제하고 이 사안을 이해할 수밖에 없다.

가장 민감하면서도 의혹이 제기되는 이 2가지 항목을 사실이라고 전제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 사건 관련 모든 내용을 군과 정보당국 설명에 전적으로 의존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무턱대고 군의 설명의 신빙성을 문제삼을 수도 없다. 군이 소상히 밝힌 사건 경위를 바탕으로, 빈 곳을 채워가면 점차 진실이 드러날 것이다.

▶사건의 재구성=실종된 어업지도 공무원 K(47)씨는 목포 소재 서해어업지도관리단 소속 8급 공무원(해양수산서기)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지난 23일 오후 1시 30분, 국방부가 기자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에 따르면, 실종 당일인 21일 K씨는 어업지도선을 타고 NLL 인근인 소연평도 남방 해상에서 어업지도를 하고 있었다.

그날의 기상 상황은 좋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요즘 꽃게 성어기를 맞아 연평도 인근 해상에는 꽃게를 잡으러 온 어선으로 가득했다고 한다. 혹시 모를 불상사에 대비하기 위해 꽃게잡이 어선 주변에는 해군 및 해경 함정이 대기하고 있었고, 어업지도를 위해 해양수산부 소속 어업지도선 등도 총출동한 상태였다.

K씨는 21일 새벽 0시부터 오전 4시까지 당직 근무를 섰다. 근무 후 오침(근무 후 낮잠)을 취했을 것이다. 통상 최전방 GOP(일반전초) 부대에서 야간경계 근무자들 다수는 새벽에 근무하고, 낮에 잔다. 그러나 점심 때가 되면 오침을 마치고 기상해 점심식사를 해야 한다.

K씨 역시 이날 점심식사를 위해 11~12시 사이에 기상해야 했을 것이다. 같은 배에 탄 선원들도 그 사실을 알고 K씨가 나올 것으로 기대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나오지 않았다. 이날 오전 11시30분께 소연평도 남쪽 2.2㎞ 해상에서 K씨 실종신고가 접수된 경위다. 동료 선원들은 선박과 인근 해상을 수색했지만, 선박에서 A씨 신발이 나왔을 뿐, A씨 행방은 묘연했다.

해양경찰에 실종 신고가 접수되자, 해당 사실이 군과 경찰에 빠르게 전파됐다. 이날 오후 1시에 K씨 실종사실을 접수한 군 당국은 해군 선박을 출동시켰다. 오후 1시 50분, 해군과 해경, 해수부 선박 20척이 꽃게조업 해역에 집결해 항공기 2대와 함께 정밀 집중수색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날 오후 6시까지 아무런 흔적을 찾지 못했고, 오후 6시부터는 대연평도와 소연평도 해안선 일대에서 집중 수색작업을 실시했으나 역시 성과가 없었다.

군이 K씨 행방의 실마리를 찾은 것은 다음날인 22일 오후 3시가 넘어서였다.

군 당국은 22일 오후 3시 30분께 NLL 북쪽 3~4㎞ 지점인 등산곶 인근 해상에서 북한 수산사업소 선박이 K씨를 처음 발견한 정황을 파악했다. 군의 북한 통신신호 감청정보(시긴트·SIGINT)를 종합적으로 분석한 결과로 보인다. 군은 관련 정보출처에 대해 역시 밝히지 않았다.

군 관계자는 "북측이 구명조끼를 입은 상태에서 한 명 정도 탈 수 있는 부유물에 올라탄 기진맥진한 상태의 실종자를 최초 발견한 정황을 입수했다"며 "북측은 이후 실종자와 일정 거리를 유지한 채 실종자가 유실되지 않도록 조치를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K씨가 북한 당국자와 처음 만난 지점은 K씨가 실종된 소연평도 남쪽 2.2㎞ 해상에서 서북서 방향으로 약 38㎞ 떨어진 해상이다.

북측은 이후 4시 40분께 A씨에게 표류 경위를 확인하면서 A씨의 월북 의사를 확인한 것으로 추정된다.

군 관계자는 "오후 4시 40분께 방호복과 방독면을 착용한 북측 인원이 실종자에게 접근해 표류 경위를 확인하면서 월북 경위 진술을 들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후 약 5시간은 공백 상태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북한군 해군계통 상부 지시로 사살 명령이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군은 이날 밤 9시 40분께 해상 선박 내에서 K씨를 총살했다.

북한 측은 지난 7월 강화도 탈북민의 월북사건 당시 월북한 탈북민의 코로나19 감염 가능성에 극도의 경계감을 표한 바 있다.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따르면, 함경북도 한 간부 소식통은 지난 2일 "중앙의 통보문과 지시문에는 7월 19일 개성으로 귀향한 탈북자가 코로나19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은 것으로 적시됐다"라고 밝혔다.

또한 북한에서는 그 사건을 계기로 외국으로부터의 코로나19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총격사살'이라는 접경지역 방역 지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군은 총살 20여분 만인 밤 10시께 방독면을 쓰고 방호복을 입은 북한군이 시신에 접근해 기름을 붓고 불태운 것으로 파악됐다. 우리 군의 감시장비로 사건 당시인 이날 밤 10시 11분 불꽃이 포착됐다. 그러나 그 불꽃이 군 당국 감시장비에 포착된 22일 밤 10시 이전까지 군 감시장비에 녹화된 영상에서는 K씨 관련 흔적이 전혀 포착되지 않았다고 한다.

군은 이런 정황을 시긴트 정보 등으로도 인지했지만, 달리 손 쓸 방도가 없었다고 한다. 이런 갑작스러운 사태 전개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군 관계자는 "북한이 설마 그런 만행을 저지를 줄 몰랐다"면서 "또한 사건이 북한 해역에서 발생했고, 정확한 위치를 특정할 수 없었으며, 우리 첩보자산이 드러날 가능성도 있어 실시간으로 대응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우리가 첩보 자산을 바로 활용하게 되면 그 다음부터 첩보를 얻지 못한다"면서 "과거 사례를 보면 피해를 감수하고도 첩보 자산을 보호한 사례가 있다"고 부연했다.

사건이 벌어진 22일 오후~밤 시간대는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을 불과 몇 시간 앞둔 시점이었다. 이런 점에서 이번 사건은 현 정부의 남북대화 의지를 크게 손상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문 대통령은 23일 새벽 1시 26분~1시 42분 사이에 유엔총회 연설을 했다. K씨가 사망한 지 불과 3시간여 지난 시점이다. K씨 사망 건은 당시엔 이미 국방부 장관과 청와대 국가안보실(NSC) 등으로 보고 완료된 것으로 파악됐다.

군 관계자는 "실종자 시신을 불태운 정황을 포착한 뒤 국방부 장관에게도 바로 보고가 됐다"며 "청와대 위기관리센터에도 장관에게 보고하면서 바로 보고된다"고 말했다.

보고 이후 문 대통령은 미국 뉴욕 유엔총회장에서 열린 제75차 유엔총회에서 "한반도 평화는 동북아 평화를 보장하고 세계질서 변화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그 시작은 한반도 종전선언"이라는 취지의 영상 기조연설을 했다.

그러면서 "종전선언이야말로 한반도에서 비핵화와 함께 항구적 평화체제의 길을 여는 문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미 비핵화 대화 및 남북관계가 얼어붙은 상황에서 종전선언을 고리로 북한을 대화의 장에 다시금 이끌어내 멈춰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동력을 다시 확보하고자 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이러한 구상에 이번 총살사건이 찬물을 끼얹은 격이 된 셈이다.

안영호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이 2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 전체회의에 참석, 연평도 인근 실종 공무원 북한 피격 사건 관련 보고를 하고 있다.[연합]

▶북한군 총격사살, 어떻게 봐야 하나=군 당국에서는 북한의 신속한 총살 결정이 코로나19 방역 조치의 일환일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다.

군 관계자는 "북한은 국경지대에서 무단 접근하는 인원에 사격하는 지침을 갖고 있다"며 "이 지침에 따라 목표물이 발견되면 무조건 사격하는 반인륜적 코로나19 방역 조치를 하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북한군이 K씨 시신에 기름을 뿌리고 불태운 것도 무자비한 북한 측의 코로나19 방역 지침에 따른 것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그러나, 북한군이 우리 국민을 무자비하게 살해하고 시신마저 훼손함에 따라 향후 남북관계는 악화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 우리 정부와 군 당국은 우리 국민이 북한 해역에서 무자비하게 사살되고 시신마저 불태워진 사건을 반드시 짚고 넘어가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안영호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육군중장)은 이날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브리핑에서 "우리 군은 다양한 첩보를 정밀 분석한 결과, 북한이 북측 해역에서 발견된 우리 국민에 대해 총격을 가하고 시신을 불태우는 만행을 저질렀음을 확인했다"면서 "우리 군은 북한의 이러한 만행을 강력히 규탄하고 이에 대한 북한의 해명과 책임자 처벌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 국민을 대상으로 저지른 만행에 따른 모든 책임은 북한에 있음을 엄중히 경고한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야권에서 이번 사건을 '제2의 박왕자 사건'으로 규정하며 정부의 대북정책 변화를 촉구하고 있어 명분상으로도 대북정책의 수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비대위 회의에서 이번 사건을 언급하며 "북한은 달라진 것이 없는데 문재인 대통령은 어제도 종전선언을 운운했다. 참으로 무책임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북한은 박왕자씨 사건 때나 지금이나 전혀 변한 게 없다"면서 "정부가 북한에 대해 당당한 태도를 갖고 조치하고, 전반적인 사건 과정을 소상히 밝히라"고 촉구했다. 박왕자 사건은 지난 2008년 금강산 관광객이던 박왕자씨가 북한군 총격을 받고 사망한 사건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개성·금강산 관광이 중단되는 등 남북관계가 급격히 악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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