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남산산책] 행복한 퇴사
뉴스종합| 2020-10-14 11:03

보통의 직장인들에게 “언제 퇴사하고 싶냐?”고 물었더니 “아침에 눈뜰 때”라고 대답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아무리 분위기 좋은 회사나 부서에서 근무할지라도 ‘출근하는 게 정말 즐겁다’는 이를 찾는 것은 쉽지 않다. 회사가 학교 동아리 같을 수 없고, 업무가 친구들과의 게임 같을 리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콧노래 부르며 출근하지는 못하더라도 날 밝으면 나가서 열심히 맡은 일을 해야 하는 것이 샐러리맨의 숙명일 테니….

이런 직장생활을 수십년 해내고 법과 사규에 정해진 정년을 채운 뒤 물러나는 이들은 일단 박수와 존경을 받아 마땅하다고 여겨진다. 스스로 그만둘 수도 있었고, 업무역량이 부족해 쫓기듯 나갈 수도 있는데 이를 모두 이겨냈다는 증거이니 말이다. 25년 넘게 직장생활을 한 기자도 정년퇴직을 한 선배를 많이 보지 못했다. 자의든, 타의든 정년이 되기 전에 떠난 사람이 훨씬 많았다.

정년과 퇴사를 갑자기 떠올린 것은 올해 은퇴식을 한, 또 은퇴 시즌이 진행 중인 두 선수 때문이다. 코로나 사태로 지난 11일 은퇴 경기를 한 프로농구 울산모비스의 양동근과 올 시즌을 마치고 은퇴하기로 한 프로야구 LG트윈스의 박용택이 그들이다.

직장인들의 정년퇴직도 쉽지 않은 미션이지만 거친 경기에 몸을 쓰며 버텨야 하는 운동선수들의 ‘정년퇴직’은 그에 비할 수준이 아니다. 몇 곱절 난도가 높다. 프로선수가 되기도 어렵지만 팀의 주전선수가 되는 것은 더 어렵고, 한두 해도 아닌 스무 해 가까이 1군 무대에서 버텨내는 선수의 숫자는 0.1% 정도나 될까. 이들이 그 긴 시간 얼마나 엄격한 자기관리를 했는지는 불문가지다.

지난 2004년 프로에 데뷔한 양동근은 군복무 기간을 제외한 13년간 팀의 주전가드로 활약하며 6차례나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신인상과 MVP 트로피도 따냈다. 양동근은 삼십대를 훌쩍 넘긴 나이에도 가장 체력 소모가 많은 포지션에서 한참 어린 선수들과 맞섰고 이겨냈다. 영리했고 성실했다. ‘만수’로 불리는 유재학 감독도 양동근이라는 에이스가 있었기에 자신의 농구를 할 수 있었다. 기량으로도, 성품으로도 모두 농구팬들의 박수를 받은 선수는 많지 않다. 양동근은 그래서 단순히 ‘6번의 우승을 이끈 선수’가 아니라 ‘모비스의 심장’으로 불렸다.

올해 만 41세인 박용택은 2002년 LG유니폼을 입고 19시즌째 뛰고 있다. FA 자격을 얻고도 LG에서 뛰며 우승하고 싶어 소속팀과 재계약을 했던 박용택은 지난 6일 누구도 밟아보지 못했던 ‘통산 2500고지’에 올라섰다. 불미스러웠던 타격왕 타이틀도 품었지만 무엇보다 꾸준히 최고의 기량을 유지해야 가능했던 프로야구 ‘통산 최다 안타’의 기록은 박용택의 이름 옆에 영원히 남게 됐다. 그에게 남은 꿈이라면 우승이다. 19년의 세월을 버텨냈지만 LG는 1994년 이후 우승하지 못했다. 다행히 올해는 2위에 올라 포스트 시즌에 나가게 된 LG이기 때문에 박용택의 꿈이 이뤄질 가능성이 남아 있다.

이들보다 뛰어난 선수도 많았다. 하지만 어떤 이는 부상으로, 어떤 이는 불미스러운 일로 소리소문 없이 팬들의 눈앞에서 사라져가는 것을 우리는 수없이 봤다. 은퇴를 앞둔 몇 년간 미미한 활약을 한 끝에 아쉽게 운동을 그만두는 경우 역시 다반사다 .

강자만이 살아남는 스포츠의 세계에서 마지막까지 버텨내고 당당하게 떠나가는 그들은 정말 ‘행복한 퇴사’를 하는 중이다. 박수와 존경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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