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헤럴드시사-전대규 서울회생법원 부장판사] 아직도 '법정관리'인가
뉴스종합| 2020-10-14 11:08

얼마 전 전철을 탄 후 신문을 펼쳤다. 기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최근 자동차산업의 불황으로 대기업 납품업체인 어떤 기업이 재정난을 견디지 못해 법원에 ‘법정관리’를 신청했다는 내용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기업이 법원에 회생 절차를 신청하는 것은 일상적인 현상이다. 눈에 거슬린 것은 ‘법정관리’라는 단어였다. 기자들을 탓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법원의 실무 운영이 아직도 ‘법정관리’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일까. 네이밍(naming)은 프레임(frame)이 된다는 점에서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법원이 기업의 재건(회생)을 위한 구조조정 업무를 시작한 것은 오래됐다. 초기에는 ‘회사정리법’을 근거로 했다. 기업이 회사정리 절차를 신청하면 원칙적으로 기존 경영자를 배제한 채 제3자를 관리인으로 선임해 엄격한 법원의 통제를 받으면서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거기에는 기존 경영자의 경영상 책임을 묻는다는 의미와 채권자를 보호한다는 고려가 담겨 있었다. 법원이 엄격하게 기업을 관리한다는 의미에서 일상적으로 ‘법정관리’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그래서 ‘법정관리’라는 용어에는 구조조정을 통한 기업의 재건보다 기업인에 대한 단죄(경영권 박탈)라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깊이 박혀 있다.

하지만 법정관리 형태로 기업의 구조조정 절차를 운영하다 보니 기업들이 법원에 회사정리 절차 신청을 꺼렸다. 그래서 적기에 구조조정이 이뤄지지 않아 회생은 고사하고 파산에 이르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근본적인 인식 전환을 해 지금의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채무자회생법)’은 기존 경영자 관리인 제도의 이념을 도입하기에 이르렀다. 기존 경영자에게 중대한 경영상의 책임이 없다면 그대로 관리인으로 선임하거나 관리인으로 간주해 기업 경영을 계속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러한 법의 취지에 따라 법원도 그동안 제3자 관리인의 선임을 자제하고, 최대한 경영상의 자율성을 보장해주는 방향으로 실무를 운영해왔다. 현재의 법 내용이나 법원의 실무 운영에서 보면 적어도 지금은 ‘법정관리’라는 용어는 적절하지 않다. ‘회생 절차’라는 용어가 적절하다.

그런데 왜 아직도 대부분의 언론 기사에는 ‘법정관리’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일까. 거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다. 첫째는 회생 사건을 다루는 기자들이, 그리고 일반인들이 기존의 ‘법정관리’라는 용어에 익숙해 그냥 쓰는 것일 수 있다. 둘째는 현행 채무자회생법에 따른 회생 절차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것에서 비롯될 수 있다. 셋째는 법원에서 아직도 ‘법정관리’처럼 실무를 운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원인은 법원의 홍보 부족에서 온 것으로, 길게 보면 쉽게 해결할 수 있다. 문제는 세 번째의 경우다. 법원의 지속적인 노력에도 사실 외부적으로 여전히 법원의 회생 절차 실무 운영에 대한 비판이 존재한다.

기존 경영자를 관리인으로 선임하는 것은 거의 예외가 없지만(물론 일부 제3자 관리인 선임에 대한 문제제기도 있다), 회생 절차에 들어오고 나서 법원의 지나친 간섭으로 기업을 운영하는 데 적지 않은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도 있다. 과도하게 자금 지출에 개입하고, 결제가 신속하지 못하며, 사업성에 대해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또한 회생계획 인가 후 종결이 늦어지는 경우도 있다. 회생 절차에 머무는 동안은 보증기관으로부터 보증서를 발급받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관급공사의 입찰도 할 수 없어 사업에 적지 않은 타격을 받는다. 그래서 신속하게 종결해줄 필요가 있다.

법원으로서는 기업친화적으로 회생 절차를 운영할 필요가 있다. 회생 절차에서도 기업인들에게 최대한 경영상의 자율성을 보장해주고, 회생계획이 인가되면 종결이라는 실무가 확실하게 정착돼야 한다. 그러다 보면 ‘법정관리’라는 용어도 자연스럽게 없어지지 않을까.

전대규 서울회생법원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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