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팀장시각] ‘차벽’, 최선이었나요
뉴스종합| 2020-10-15 11:48

국경일은 ‘國慶日’이라는 한자 뜻 그대로 ‘나라의 경사스러운 날’이다. 지난 3일과 9일, 개천절과 한글날도 우리나라의 국경일이었다. 두 날 모두 주말까지 겹치며 여유로운 연휴가 됐지만, 그 의미를 되새기기는 쉽지 않았다. 단순히 1년 가까이 우리나라를 넘어 전 세계에 맹위를 떨치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만은 아닐 것이다.

개천절과 한글날, 우리나라의 중심이자 서울의 한복판이라 할 수 있는 종로구 광화문광장은 경찰 버스로 겹겹이 쌓은 ‘차벽’과 철제 펜스에 포위당했다. 그곳에서 예정됐던 각종 집회가 ‘감염병예방법’에 의거, 불법 집회로 규정돼 차단할 수밖에 없었다는 경찰의 설명이었다.

김창룡 경찰청장도 지난 5일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개천절(집회) 차단 조치는 직접적 접촉에 의해 야기될 수 있는 전염병 감염 확산 우려를 최소화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면서 “광복절 집회 때도 집회로 인해 감염병이 확산하는 상황이 확인됐고, 집회를 관리했던 경찰관도 8명이나 감염됐다”며 원천 봉쇄의 당위성을 이야기하는 데 주력했다.

그러나 이 같은 조치 때문에 비단 집회 참가자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까지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한글날 회사에 잠깐 볼일이 있어서 광화문광장 인근을 찾았다가, 경찰에게 목적지를 이야기하고 신분증을 보여 주며 검문을 받아야 했다”는 한 직장인의 전언은 아직도 씁쓸하게 느껴진다.

훈민정음 창제를 기념하는 한글날, 광화문광장 안 세종대왕 동상도 더욱 외로워 보였다. 배준영 국민의힘 대변인도 같은 날 논평을 통해 “오늘 세종로라 이름 붙여진 광화문광장에서 세종대왕 동상은 한나절 내내 울타리와 차벽에 갇혀 지낼 것이다”고 했다.

그 같은 불편함을 국민이 참는 이유는 감염병의 확산 방지를 통한 공공 안녕을 바라는 염원 때문일 것이다. 이 같은 순수한 뜻을 정부와 정치권이 왜곡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 그러나 최근 들어 집회 차단 같은 당국의 감염병 차단 조치를 의아하게 바라보는 국민이 자꾸만 늘어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러한 국민의 ‘합리적 의심’은 개천절·한글날이 끼었던 연휴에 싹이 튼 걸로 보인다. 당시 당국은 집회를 원천 차단했지만, 연휴를 맞아 놀이공원, 관광지, 대형 마트 등에 몰리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별다른 제재를 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조치가 내려져 실내 50인·실외 100인 이상의 집합·모임·행사가 금지됐던 때였다.

‘의심’은 거리두기가 1단계로 완화된 지난 12일부터 더욱 커졌다. 서울시는 거리두기 1단계에 맞춰 집회금지 조치 기준을 기존 ‘10명 이상’에서 ‘100명 이상’으로 조정했지만, 광화문광장 등 도심 지역에서 열리는 집회는 계속 금지하겠다는 뜻을 같은 날 밝혔다.

감염병이 퍼지기를 원하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하지만 ‘감염병 차단’이라는 대전제를 지키기 위한 기준이 공정하고 불편부당하지 않으면 의심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코로나19는 최근 ‘조치’처럼 특정 상황이나 사람을 가리지 않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코로나19는 정치, 경제, 문화, 종교, 사상 등과 무관하다”며 “‘차별’을 적용하면 음모론이 번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당국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 아닐까 싶다.

신상윤 사회부 사회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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