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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별세] 싸구려 취급받던 삼성 제품에 격노…"마누라·자식 빼고 다 바꿔"
뉴스종합| 2020-10-25 12:04
1993년 프랑크푸르트 신경영선언 당시 이건희 회장. [헤럴드경제DB]

[헤럴드경제 김현일 기자]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1987년 12월 삼성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이후 '은둔 행보'를 이어가던 이 회장은 1993년 삼성의 역사를 바꿔놓은 프랑크푸르트 선언으로 경영 전면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인근 캠핀스키 호텔에서 그렇게 프랑크푸르트 선언이 나왔다.

이 회장은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는 말로 압축되는 신경영 선언을 했다. 불량 부품을 칼로 깎아 조립하는 것을 보고 격노했던 그는 삼성의 제2 창업에 착수했다.

이 회장은 "모든 변화는 나로부터 시작한다. 모든 변화의 원점에는 나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변화의 방향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고 에세이에 썼다. '나부터 변해야 한다'는 결심을 프랑크푸르트 선언에 담아낸 것이다. 삼성의 신경영은 그렇게 탄생했다.

시간을 거꾸로 돌려 그해 2월 이건희 회장 취임 5년차였던 2월 삼성은 8㎜ VTR을 막 개발해 시장에 내놓았다.

이 회장은 임원들과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 가전매장을 찾았다. GE, 필립스, 소니, 도시바 등 선진국 전자회사들의 전시장 한 귀퉁이에 삼성 제품이 먼지를 뒤집어쓴 채 있는 모습을 봤다.

LA 센추리프라자 호텔 회의장. 이 회장은 78가지 전자제품을 갖다놓고 당장 분해하라고 했다. 회의장에는 이 회장의 호통과 불호령이 이어졌다. 삼성 제품이 싸구려로 취급당했기 때문이다.

그해 6월 도쿄 오쿠라 호텔에선 이 회장이 일본 기업 교세라에서 직접 스카우트한 후쿠다 다미오 삼성전자 디자인고문과 마주앉았다. 후쿠다 고문은 삼성의 문제점을 속속들이 파헤쳤다.

'일본 기업은 세계 1위 제품을 놓고도 연구소에서 밤을 지새우는데 삼성은 국내 최고라는 자만심에 빠져 일찍 퇴근하더라', '삼성 직원은 텃세가 심해 외국인 고문 얘기는 무슨 수를 써서든지 듣지 않으려 한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이 회장은 후쿠다 보고서를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세탁기 사건이 터졌다. 삼성사내방송 SBC의 몰래카메라 영상물에는 세탁기 뚜껑 여닫이 부분 부품이 들어맞지 않자 직원들이 아무 거리낌 없이 칼로 2㎜를 깎아내고 조립하는 장면이 나왔다.

심지어 교대자를 바꿔가며 이런 식으로 제품을 대충 끼워 맞추는 장면이 카메라에 적나라하게 잡혔다.

이 회장은 득달같이 이학수 비서실 차장에게 전화를 건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녹음하시오. 이게 그토록 강조했던 질 경영의 결과란 말이요. 당장 사장과 임원들 모두 프랑크푸르트로 집합시키세요."

당시 윤종용, 김순택, 현명관 등 삼성의 CEO와 고위 임원들이 부랴부랴 항공권을 구해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삼성의 변혁을 이끈 프랑크푸르트 선언은 이렇게 나왔다.

이 회장은 당시 테이프를 갉아먹는 VTR, 시청 도중에 퓨즈가 나가는 TV를 쳐다보면서 탄식을 했다고 전해진다. "삼성전자는 3만명이 만든 물건을 6000명이 고치러 다닌다. 암으로 치면 2기"라는 말도 했다.

이 회장은 "전자산업의 경우 불량률이 3%에 달하면 그 회사는 망한다. '불량은 암이다. 악의 근원이다'라고 되뇌면서 일하라고 했다"고 전해진다. '불량은 범죄'라는 철학도 그래서 나왔다. 이후 이 회장은 삼성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한 대수술에 들어갔다.

이 회장은 에세이에서 "한국 기업의 풍토는 세계 삼류라는 현실을 인정하고 경각심을 느끼기보다는 국내 정상이라는 우물 속 평온함을 즐기고 안도감에 젖기를 원한다"고 지적했다. 어렵사리 모셔온 기술고문들의 노하우를 겸허히 배우려 하기보다는 '배워서는 안되는' 온갖 이유를 찾아내려는 오그라진 형태를 쉽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삼성은 불량품이 발생하면 즉시 생산라인을 멈추는 라인스톱제도를 도입해 불량률 제로에 도전했다. 신경영이 삼성의 체질을 뿌리부터 바꿔나갔고 그렇게 초일류를 향한 새로운 걸음걸이가 시작됐다.

joz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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