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팀장시각] 시장과 동떨어진 정부와 여당의 ‘전세난’ 인식
뉴스종합| 2020-10-26 11:38

지난 23일 국회에서 열렸던 국토교통부 대상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장. 한 여당 의원은 김현미 장관을 향해 “전세가 없는 게 아니라 전세 매물이 없는 것 아니냐?”며 다소 애매한 질문을 던진다. 갸우뚱하는 김 장관에게 그는 “전세는 있는데 전세 매물이 없는 건 전세 살던 사람들이 대부분 재계약을 해서다. 크게 올리지도 못한다. 그만큼 전월세상한제, 계약갱신청구권이 제대로 발효되고 있는 것 아닌가?”라고 덧붙인다.

임대차3법이 제대로 작동해 기존 전세입자가 안정적으로 머물 수 있게 됐으니 전세 시장이 안정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 장관은 “8월부터 변화를 보면 전세 계약 갱신 사례가 늘고 있고, 그런 경우 전세가 상승률이 낮아지고 있다는 것을 수치로 확인할 수 있다”며 수긍한다.

최근 전세 시장에 대한 여당과 정부의 시각은 여전히 낙관적이다. 거의 모든 언론에서 전세난의 심각성을 지적하는 상황인데도 여당 의원 상당수는 “지나친 과장 보도에 현혹되지 말라”며 김 장관의 어깨를 두드린다. 온라인으로 국정감사 중계를 보는 국민은 답답하기 그지없다. “웃기고 있다. 서울서 전세 구하러 다니다 들어갈 데가 없어, 경기도를 알아보고 있는데, ‘전세가 있는데 전세 매물이 없다’는 게 도대체 무슨 궤변이냐?”며 분통을 터뜨린다.

김 장관이 “임대차3법으로 전세 공급이 줄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일정 부분 타당하다고 봅니다만 똑같이 (전세) 수요도 줄었다. 양쪽 요인을 같이 봐야 한다”고 전세 시장의 심각성을 대수롭지 않은 듯 설명한 대목도 시장에선 당혹스럽다는 반응이 더 많다.

전세 수요는 매매 수요와 반비례 관계다. 누구나 매매든 임대든 살 집을 구해야 한다. 매매 시장에 거래가 줄었다는 건 이미 통계 수치로 나타나는 명백한 사실이다. 정부의 부동산 규제 정책 때문에, 혹은 집값 하락을 기대하고 매수를 미루는 사람들 때문에, 전세 수요는 늘었다. 이제 막 결혼한 신혼부부 등 신규 주택 수요층도 일단 전세를 찾는 경향이 강해졌다. 반면, 기존 전세 재계약이 늘고, 새 아파트 입주량은 줄어 전세 공급이 늘어날 여건은 아니다. 누가 봐도 전셋값이 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전세시장은 수요 조절이 어렵다는 게 특징이다. 매매 수요는 향후 싼 주택이 나온다는 기대감이 생기거나, 대출 등에 규제를 강화하면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임대 수요는 다르다. 향후 저렴한 전세가 나온다고, 당장 텐트를 치고 지낼 수 없다. 그래서 전세는 ‘수요 비탄력적’이라고 한다. 전세 공급이 조금이라도 부족하면 단기간 가격이 폭등하는 건 이 때문이다. 매매 가격은 너무 비싸면 그냥 전세로 살면 되지만, 전셋값이 오르면 임차인은 그냥 감내해야 한다. 아니면 다른 지역으로 밀려나야 한다. 학교를 다니는 자녀를 두고, 적당한 거리에 일터를 둔 직장인이라면, 갑자기 이사한다는 게 쉬운 결정이 아니다.

정부가 24번째 부동산 대책으로 전세 관련 대책을 준비하고 있나 보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건 전세 대책은 전세 대책 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주택 공급 상황 등 매매 시장과 언제나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움직이기 때문이다. 몇 년 전부터 강화된 대출 등 온갖 규제로 시장에선 투기가 사라진 지 오래 됐다는 데, 여전히 ‘투기꾼 규제’를 강조하는 정부와 여당이 정말 제대로 된 전세 대책을 내놓을 수 있을까. 시장에선 불신의 목소리가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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