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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던 이건희 회장
뉴스종합| 2020-10-27 11:26

삼성그룹 이병철 창업주는 호암자전(湖巖自傳)을 남겼다. 25일 별세한 이건희 회장은 자서전이 없다. 그의 어록은 대부분 말을 글로 옮긴 것이다. 때로는 퇴고를 거친 글이 말보다 그 사람을 잘 보여준다. 1997년 이 회장은 국내 한 언론사에 칼럼을 연재한다. 반도체 사업이 대성공을 거두기 전이고, 자동차 진출의 쓴맛을 보기 이전이다. 어찌 보면 50대 중반 가장 역동적이던 ‘경영자 이건희’를 엿볼 수 있는 기록이다.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라는 책으로도 출판됐지만 절판된 지 오래돼 몇 가지 소개해본다.

23년 전 이미 이 회장은 1기가 반도체 등장의 목전에서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컴퓨터와 휴대전화를 생각한다. 이런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도약적 혁신’을 강조한다. “변화의 충격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의외로 적다. 변화의 근원이 무엇인지, 그런 변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변화에 대비하고 경쟁자와 어깨를 겨루려면 점진적 개선이 아니라 도약적 혁신을 해야 한다.”

지난해 일본이 우리나라 핵심 부품과 소재수출을 규제해 난리가 났었다. 일본을 깊이 공부했던 이 회장은 이미 오래 전부터 그 가능성을 내다봤다. 지난해 삼성이 일본의 수출 규제에 가장 발빠르게 대응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우리나라 주력산업의 대부분은 일본에 의존하고 있다. 큰 약점이다. 자칫하면 일본의 경제식민지가 될 수도 있음을 냉철히 인식해야 한다. 지난날 이완용이 나라를 팔아먹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내가 제2의 이완용이 되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해야할 것인지 생각해야 할 때다.”

21세기 경제 패러다임 변화 가운데 하나가 공급자에서 수요자로의 중심이동이다. 이 변화에 뒤처진 20세기 기업들 상당수가 21세기에 도태됐다. 이 회장은 일찌감치 경영철학의 획기적 전환을 주문했다.

“과거는 ‘남들만큼’의 풍요를 추구하던 시절이었다. 소비자들의 욕구는 단순하고 상품 본래의 기능만 있으면 만족했다. (이제는) ‘남들만큼’에 만족하지 않게 됐다. 단순히 재화를 써주는 존재로서의 소비자(Consumer) 개념은 사라지고, 개개인의 취향까지도 맞춰줘야 하는 대상으로서의 고객(Customer) 개념이 자리잡게 됐다.”

이 회장의 인재 철학은 이미 유명하다. 후에 ‘10만명을 먹여 살리는 1명’, ‘S급 인재’ 등으로 표현이 바뀌지만, 도전 정신을 가진 창조적 인재는 이 회장이 가장 사랑한 대상 가운데 하나다.

“미래는 머리와 맨손으로 싸우는 시대다. 창조적 소수집단의 역할이 증대되고 머리로 승부하는 뇌력사회(腦力社會)다. 한 사람의 비범한 천재가 수 만명을 부양하는 시대가 될 것이다. 개성이 강하고 ‘끼’있는 사람을 “건방지다” “말을 함부로 한다”하여 기를 죽이는가 하면, 주위의 시기심과 ‘뒷다리 당기기’ 때문에 우수인력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전 세계의 천재가 한곳에 모여 서로 협력하고 경쟁할 수 있는 ‘두뇌천국’을 만들어야 한다.”

이 회장에 앞서 구본무 LG 회장, 김우중 전 대우 회장도 영면에 들어갔다. 우리의 경제 기적을 이끌었던 ‘기업영웅’들이다. 코로나19가 인류를 치명적으로 위협하는 지금은 ‘도약적 혁신’과 ‘뇌력사회’가 절실한 난세다. 기업이 경제의 주축이다. 새로운 기업영웅들의 ‘청출어람’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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