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남산산책] 전셋값이 왜 이래?
뉴스종합| 2020-10-28 11:31

몸에 탈이 나는 것은 한방에선 기혈(氣血)의 흐름이 막힌 탓이라고 본다. 인체의 오장육부와 사지백해(四肢百骸)는 기혈의 흐름을 통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어 적절한 부위를 침이나 뜸으로 자극해주면 건강을 증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부동산시장도 살아 있는 유기체와 같다. 주택 공급과 수요, 매매와 임대시장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막힘 없이 흘러가야 건강한 생태계를 유지할 수 있다.

가을 이사철 성수기에 수도권 전세시장에 탈이 난 것은 정부의 정책이 주택시장의 유기적 연결고리를 생각하지 않고 ‘강남 집값·다주택자 때려잡기’에 편중되면서 빚어진 것이다. 특히 7월 말부터 충격요법처럼 시행된 임대차 2법( 전·월세상한제, 계약갱신청구권)은 선한 의도와 달리 전세 공급의 씨를 말리고 가격급등을 몰고 오는 뇌관으로 작용했다. 안 그래도 전세시장은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시행에 따른 ‘로또 청약’ 대기 수요, 강남·서초 재건축단지 이주 러시, 임대사업자 세제 혜택 박탈, 재건축아파트 분양권 취득에 2년 실거주 요건 신설, 갭투자 규제 강화, 내년 하반기 3기 신도시 청약 대기 수요 등이 복합 작용하면서 공급이 수요에 턱없이 모자라는 국면이었다. 특히 집주인 입장에선 0%대 초저금리가 장기화하면서 전세금을 목돈으로 받아도 마땅히 굴릴 데가 없는데 정부가 고가·다주택자의 보유세 부담을 징벌적 수준으로 높이자 반전세(보증부 월세) 또는 월세 전환으로 세금 부담을 세입자에 전가하는 움직임이 가속화됐다.

내년 전세시장 전망도 어둡다. 국토부에 따르면 내년 서울 주택 입주물량 예상치는 6만2000가구다. 올해 추정치 7만9000가구보다 1만7000가구 적다. 아파트는 입주 감소폭이 더 크다. 내년 3만6000가구로, 올해(5만3000가구)보다 30%가량 줄어든다. 민간에서는 올해 입주물량의 절반 수준인 2만2000여가구로 추산하기도 한다.

한국의 소득 대비 주거비 부담은 현재 15.2%로 37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낮다. 이는 한국 특유의 전세제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목돈을 강제로 저축해 미래에 집을 사는 ‘징검다리’ 역할도 했다. 주택 매수자에겐 집을 살 때 모자란 목돈을 보충하는 통로였다. 전셋값이 지금의 주택담보대출 역할을 거뜬히 해낸 것이다.

반면 월세는 서민들의 주거비 부담을 급증시키고 중산층으로 향하는 ‘주거 사다리’를 걷어차는 역기능이 크다.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내디딘 청년층이나 신혼부부들은 소득의 상당 부분을 주거비로 내놓아야 해 ‘생돈 뜯기는’ 심정이다. 월세는 집이 있는 사람에 비해 결혼 가능성이 65%가량 낮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정부는 전세난 대책으로 월세 세액공제·공공임대 확대와 같은 ‘전가의 보도’를 꺼내 들 참이지만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공공임대 확대(2025년까지 240만가구)는 가야 할 방향이지만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고 비용도 만만치 않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온라인수업과 재택근무가 늘면서 ‘좋은 집’에 대한 욕구는 점점 커지고 있다. 공공임대가 이런 수요까지 감당하기 어렵다.

좋든 싫든 임대주택 대부분을 민간이 공급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다주택 또는 법인 임대사업자의 순기능은 살리고 집값 단기 급등과 같은 역기능을 최소화하는 데 역점을 둬야 한다. 엉뚱한 곳에 꼽힌 침은 뽑고 ‘혈자리’를 찾아 제대로 침을 놓아야 주택시장의 기혈 흐름이 정상화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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