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데스크칼럼] 아테네 여행의 추억
뉴스종합| 2021-01-13 11:37

서구 문명의 원류이자 고대 신화의 도시인 그리스 아테네를 찾은 것은 약 10년 전인 2012년 초봄이었다. 에게해에서 불어오는 미풍을 받아 긴 겨울잠에서 깨어날 신들의 세계를 돌아보고, 소크라테스에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프로타고라스 등 고대 현인과 철학자들의 발자취를 더듬어보고자 하는 열망이 컸다. 오늘날의 그리스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도 궁금했다.

하지만 기대는 처음부터 빗나갔다. 변덕스러운 봄 날씨로 아테네는 잔뜩 흐려 있었고, 간간이 차가운 비가 흩뿌렸다. 봄의 전령인 제피로스(서풍)를 시샘하는 듯 북부 올림포스산에서 내려오는 바람은 매섭기 그지없었다. 거리는 텅 비어 썰렁했고, 이따금 지나가는 사람들도 몸을 잔뜩 웅크린 채 발길을 재촉했다. 비바람을 막기 위해 우산을 펼쳤지만 건물 사이로 부는 돌풍에 뒤집히기 일쑤였다.

게다가 당시 그리스는 재정위기로 엉망진창이었다. 그리스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 조건인 재정긴축과 연금 삭감 등을 수용하면서 기업 도산이 잇따르고 실업률은 20%대로 치솟았다. 중심가를 벗어나면 두 집 건너 한 집꼴로 문을 닫은 상가가 매각·임대 안내문을 내걸었고, 박살 난 쇼윈도 유리창도 곳곳에 눈에 띄었다. 일부 건물엔 스프레이로 휘갈겨놓은 낙서가 흉물스러웠다.

아테네 시민들은 풀이 죽어 있었고, 관광객들도 침울한 분위기에 압도당해 있었다. 평소 같으면 흥성거릴 신타그마광장에선 연금 삭감에 반대하는 근로자들의 시위가 벌어지고 있었고, 2500년 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후학을 가르치던 아테네학당 인근에도 시위의 잔해가 나뒹굴었다.

그러다 귀인을 만났다. 호텔 입구에 있는 여행사에서 다음 행선지인 델피와 크레타섬에 대한 정보를 확인할 때였다. 여행사 사장과 그리스 경제 상황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경제위기로 사업하기가 어렵지 않느냐’고 질문했다. 그러자 그 사장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리스 사람들은 낙관적이에요. 언젠간 넘어갈 거예요. 이보다 더 심한 위기도 있었지만, 모두 지나갔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전과 같이 생활하고 있어요.” 그는 그러면서 모나스트라키광장 너머 아크로폴리스를 가리켰다.

순간 정신이 퍼뜩 들었다. 사실이 그러했다. 그리스는 화려했던 고대 문명을 뒤로하고 이후 2000여년 동안 숱한 전쟁과 전염병, 대기근, 터키의 식민지배 등 만고풍상을 겪었다. 한때 그것이 세상이 끝으로 보이기도 했지만 긴 역사의 물줄기에 비춰 보면 한순간의 풍랑이었던 것도 많았다. 아크로폴리스는 지금도 그것을 내려다보고 있다. 당장의 어려움에 짓눌려 절망하거나 좌절하기보다 낙관적 전망을 바탕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삶의 지혜가 거기에 있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위기가 심화하고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지나가지 않겠는가. 또 지나가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막연한 낙관론에 빠져 오늘의 과업을 방기하는 것도 경계해야 하지만 과도하게 비관에 빠지는 것이야말로 더 큰 위기를 재촉할 뿐이다. 코로나로 지인과의 만남조차 용이하지 않은 오늘, 10년 전 여행의 추억을 소환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삶은 계속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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