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베이비박스 아이들, 출생신고 늦추는 어른들의 핑계들 [유령아이 리포트]
뉴스종합| 2021-05-14 17:32
〈3부〉 아이들이 있어야 할 곳 ④ 베이비박스 아이의 ‘기록될 권리’는?
서울 관악구 주사랑공동체 상담사가 베이비박스에 들어온 아이의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박현구 기자/phko@heraldcorp.com]

국내에서 아동이 유기되는 주요한 통로는 단연 베이비박스다. 동시에 아이들이 온전히 기록되지 못하는 ‘유령아이’(미등록 아동)가 발생하는 주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헤럴드경제와 보편적출생신고네트워크(UBR Network)가 지난 3월 초 시작한 출생미등록 아동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베이비박스의 ‘존재감’은 숫자로 확연히 드러난다.

우선 전국 229개 지자체(세종특별자치시·제주·서귀포시 포함)를 대상으로 출생 미등록 아동에 관한 정보공개청구를 진행한 결과 지자체와 지역 아동보호전문기관(아보전) 등이 인지한 미등록 아동은 353명이었다. 이 가운데 260명(73.6%)이 베이비박스에서 발견된 아이였다.

전국 251개 아동복지시설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 결과도 비슷하다. 출생신고가 되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된 146명의 아이 가운데 110명(75.3%)이 베이비박스에 맡겨졌다.

[그래픽=권해원 디자이너]
베이비박스 논란…10년 넘게 이어져

국내 베이비박스는 3곳이다. 대부분 종교단체가 운영한다. 서울 관악구 베이비박스(주사랑공동체)가 가장 잘 알려졌고 경기도 군포(새가나안교회)와 부산 금정구(홍법사)에 한 곳씩 있다. 종교시설이 설치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사실 국내에 베이비박스를 둘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없다. 엄밀히 말하면 법 외 시설이다. 그렇다고 시설을 없애진 못한다. 오히려 꾸준히 언론 보도로 소개되면서 아동보호의 상징적 공간으로 인식됐다. 규모도 커지고 운영 시스템도 자리잡은 상태다. 정치인들은 이따금 이곳을 찾는다. 지난 어린이날(5일)엔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다녀갔다.

2009년 말 관악구에 베이비박스가 처음 등장한 뒤부터 존폐 논란은 이어지고 있다. 특히 2012년 8월 개정된 입양특례법이 시행된 직후 공방이 치열했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한국 정부에 베이비박스 폐쇄를 권고했다. 아동이 부모를 알고 부모에게 양육받을 권리 등을 침해한다는 이유에서다.

베이비박스를 둘러싼 옹호, 반대 주장을 간추리면 이렇다.

〈옹호 입장〉
1. 위기임신 상황에서 출산한 아이의 생명권을 지키려면 베이비박스가 필요하다.
2. 출생사실이 알려지지 않을 생모의 권리도 존중받아야 한다.
〈반대 입장〉
1. 쉽게 아동을 두고 사라질 수 있어서 ‘유기’를 조장한다.
2. 낳아준 엄마의 인적사항이 관리되지 않아, 아동이 자신의 뿌리를 알지 못한다.

이런 양측의 논리는 2021년 현재도 고스란히 유지되고 있다.

존폐를 논하기 전에

앞서 베이비박스를 둘러싼 찬반 의견은 모두 ‘어른’들의 것이다. 어쨌든 베이비박스가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에서, 당장 아이들 입장에서 절실한 대목들은 오히려 소홀히 다뤄진다. 특히 빠르게 출생등록될 권리는 뒷전으로 밀린다.

베이비박스에 들어온 아이는 이후 몇 가지 과정을 거친다. 일단 경찰과 관할 지자체에 유기아동으로 신고되고 동시에 어린이병원에서 건강검사를 받는다. 이후 아동일시보호소로 옮겨지는데, 여기서 길면 6개월까지 머무른다.

통상 일시보호소로 가서 진로가 나뉜다. ▷원가정 보호(복귀) ▷입양 ▷연고자 대리양육 ▷가정위탁(대리양육위탁·친인척위탁·일반위탁·입양 전 위탁) ▷아동복지시설(보육원·일시보호시설) 등이다.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는 주사랑공동체가 파악한 통계 [권해원 디자이너]

현행 아동복지법은 아동의 진로에 관해서 ‘국가와 지자체는 아동이 태어난 가정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그럴 수 없을 때엔 가정과 유사한 환경(입양·가정위탁)에서 자라도록 조치해야 한다’는 원칙을 분명히 한다.

이 원칙이 실현되려면 신속한 출생신고가 필요하다. 이 때문에 가족관계등록법(52조 3항)은 부모를 알 수 없는 기아(기아)가 발생하면 시·읍·면의 장이 아동의 성과 본을 창설하도록 하고 있다. 성본창설과 가족관계등록부 작성에 이르는 ‘출생등록’ 절차를 빨리 마칠수록 입양되거나 위탁가정을 만날 가능성이 커진다. 하지만 현실에선 이 규정이 지자체마다 제멋대로 적용된다.

지난해와 올해 3월 10일까지 서울 관악구청이 접수한 베이비박스 아동은 모두 112명. 지자체장은 이들에 대한 성본창설을 하지 않았다. 관악구청 노인청소년과 관계자는 “보건복지부 지침에 따라 성본창설은 아동을 보호시설이 위치한 관할구청에서 한다. 보호조치를 해서 아이를 일시보호소로 인계하는 게 저희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반면에 같은 기간 또다른 베이비박스 소재지인 군포시의 대응은 달랐다. 군포시장은 11명의 유기아동에 대한 성본창설 절차를 모두 마쳤다. 같은 베이비박스지만 지역에 따라 지자체의 대응이 달라진다.

관악구 베이비박스. [박준규 기자]

김희진 국제아동인권센터 사무국장은 “부모가 누군지 몰라서 성본창설이 필요한 경우 지자체 단위에서 빠르게 절차가 이뤄지면 위탁, 입양이 수월한데도 현실적으론 어렵다”고 했다.

정부는 이런 문제를 인지하고 있다. 관악구청이 언급한 ‘복지부 지침’이란 아동보호서비스 업무매뉴얼을 의미한다. 이 문건의 ’유기아동의 성·본 창설을 위한 절차’에는 ‘아동을 보호하고 있는 시설 등의 관할 지자체 담당자는 보호조치 후 즉시 성본 창설을 위한 법원 허가절차를 진행하여야 한다’고 적혀 있다.

여기서 ‘아동을 보호하고 있는 시설’을 어떻게 볼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해석하기에 따라 베이비박스 아동에 대한 출생등록 대응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아동복지정책과 관계자는 “유기아동에 대한 성본창설은 공공에서 해야 하는 업무는 맞다”면서도 “하지만 관련법에 제한적으로 기술돼 있어서 어떻게 하는 게 정확히 맞다고 말씀드리긴 어렵다”고 말했다.

nyang@heraldcorp.com

dodo@heraldcorp.com

헤럴드 디지털콘텐츠국 기획취재팀

기획·취재=박준규·박로명 기자

일러스트·그래픽=권해원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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