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정당
당신의 빨간날은 안녕하십니까 [이슈 플러스-대체 공휴일 확대 법제화]
뉴스종합| 2021-06-24 11:15

“광복절(8월15일), 개천절(10월3일)은 일요일, 한글날(10월9일), 성탄절(12월25일)은 토요일...”

올해 달력을 펼칠 때마다 직장인들을 우울하게 만들었던 ‘잃어버린 빨간 날’이 돌아온다. 명절(설, 추석)과 어린이날에만 적용되던 ‘대체공휴일’ 제도를 전체 공휴일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이 입법 첫 관문인 국회 상임위원회를 통과한 덕분이다. 직장인들의 피부에 직접 와닿는 건 대체휴일 확대지만 이 법안에는 단순히 대체휴일을 확대하는 의미 그 이상이 담겨있다. 지금까지 법으로 규정되지 않던 일반 노동자들의 공휴일이 처음으로 법제화된 것이기 때문이다. 공휴일 법안의 구체적인 내용과 신속한 통과 배경, 한계와 영향 등을 자세히 짚어봐야 할 이유다. 5인 미만 사업장 제외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휴식권 보장’이 한 걸음 더 전진한 만큼 ‘주4일제’가 내년 대선에서 주요 의제로 다뤄질지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대체휴일법 국회 상임위 전체회의 통과...“올해 나흘 더 쉰다”=현행 대체휴일 관련 제도는 명절(추석과 설), 어린이날에만 대체공휴일이 적용되고 있다. 일요일을 제외한 법정 공휴일은 15일이지만 대체공휴일 제도가 시행된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도 실질적인 공휴일 수는 10~14일로 연평균 12일 정도에 불과했다. 15일이 온전히 보장된 해가 한 해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달력을 미리 찾아보며 공휴일과 주말이 겹치는지 여부를 따져보지 않아도 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행안위)가 주말과 겹치는 모든 공휴일에 대체공휴일을 적용토록 하는 내용을 담은 ‘공휴일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23일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의 법안 체계·자구 심사와 이달 29일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어야 하는 등의 절차가 남아있지만, 과반 의석의 거대여당이 상임위 단독 처리를 강행했고 원내대표까지 나서 본회의 통과를 장담하고 있어 법안 통과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진다. 특히 정부가 법안 논의 과정에서 올해 대체공휴일 ‘핀셋 지정’까지 언급한 만큼, 설령 법안이 6월 국회서 통과되지 못한다 해도 다가오는 광복절 대체휴일은 사실상 확정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단, ‘5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비용부담과 생산 차질 등의 우려로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5인 이상~3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에도 대체휴일 확대가 올해는 적용되지 않고, 내년부터 적용된다.

법안엔 공휴일 자체를 늘리는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식목일(김성원·서영교 의원안), 근로자의날과 어버이날(정청래 의원안), 제헌절(강병원·김성원·박완수 의원안), 노인의날(하영제 의원안), 순국선열의 날(김성원 의원안) 등 관련 법안을 낸 의원들 상당수가 공휴일 추가 지정 내용을 담았지만 정부(인사혁신처)가 제출한 절충안에선 모두 빠졌다.

▶코로나19 위기 속 내수진작 위해...與 “국민 70% 이상 동의”=국회 본회의 문턱이 남아있고 야당과 노동계에서 ‘5인 미만’ 사업장 제외를 문제삼고 있지만 여당이 단독으로 상임위에서 속전속결 통과를 시킨 배경엔 역시 ‘코로나19로 침체된 내수 진작’ 이라는 명분이 자리한다.

실제로 민주당 의원들은 지난해 현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8.17 임시공휴일 지정의 경제적 파급 영향’ 보고서를 수차례 인용해왔다. 통상 경영계 입장이 더 많이 반영되는 민간 연구소 보고서임에도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국민의 사기 진작, 내수 활성화라는 정부 취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며 임시공휴일 지정을 환영했기 때문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광복절(8.15)이 토요일과 겹치면서 월요일(17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할 경우 이날 하루 소비지출액은 2조1000억원, 경제 전체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통한 생산 유발액은 4조2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됐다. 아울러 부가가치 유발액 1조6300억원, 취업 유발 인원 3만6000명 등을 일으킬 것으로도 전망됐다.

중소기업중앙회 등 일부 경제단체들이 “공휴일법이 제정될 경우 대체휴일 확대에 따른 생산차질과 인건비 증가가 불가피해질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지만 ‘내수 진작’이란 명분에 힘을 쓰지 못한 이유다.

국민들 다수가 대체공휴일 확대를 원하는 여론도 여당에게 힘을 실었다. 서영교 행정안전위원장실이 티브릿지코퍼레이션에 의뢰해 지난 11~12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12명(응답률 2.0%)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 응답자의 72.5%가 대체공휴일 확대를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악의 ‘연휴 가뭄’을 맞은 올해 ‘국민 휴식권을 보장하라’는 여론의 목소리가 매우 높았던 것이다.

▶“대체휴일 확대 그 이상의 의미”...5인 미만 사업장 제외는 ‘숙제’=이번 공휴일 법안은 단순한 대체휴일 확대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간 공무원에 한해 규정된 ‘공휴일’을 일반 노동자들로 확대 적용해 법적으로 휴식권을 보장한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공무원 이외 일반 노동자들의 공휴일이 법제화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금까지 ‘공휴일’은 ‘공무원의 휴일’을 의미했고 이는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대통령령)’으로 법률이 아니었다. 즉, 민간기업에 다니는 일반 노동자들은 이 관공서 휴일 규정을 준용한 취업규칙, 단체협약 등의 약정을 통해서만 공휴일을 누렸던 것이다.

다만 30인 미만 사업장은 내년 1월1일 이후부터 공휴일 규정이 준용되고, 5인 미만 사업장은 아직 언제 적용될지 기약없는 상황이다. 이번 공휴일법도 당초에는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방안이 논의됐지만 근로기준법과의 충돌 문제가 발생한다는 정부 측 우려로 적용 범위를 ‘공무원법, 근로기준법 등 관계법령에 정하는 바’라고 규정했다. 근로기준법에서 공휴일을 보장받지 못하는 5인 미만 사업장이 이번 대체휴일 확대에서도 제외된 이유다.

국민의힘은 이 부분을 문제삼아 상임위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다. 정의당도 민주당을 강도높게 비판했다. 이동영 정의당 수석대변인은 “1등 시민 2등 시민 따로 있느냐”며 “누구는 쉬고 누구는 일하고 쉬는 날까지 차별과 배제가 있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5인 미만 사업장도 대체공휴일에 쉴 수 있도록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와 본회의 최종 처리 과정에서 대체공휴일법을 전면 재검토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놀토(土) 이어 놀금(金)으로”...이 기세로 ‘주4일제’까지?=‘5인 미만’ 사업장의 적용 제외라는 이번 공휴일법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공휴일 법제화는 국민 휴식권 보장이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으로 평가된다. 향후 ‘주4일제’ 논의가 주요 의제가 될 가능성이 높아진 이유다. 실제로 지난 2004년 주5일제의 단계적 도입 이후 17년이란 세월이 흐른 만큼, 이제는 주4일제 전환을 논의할 때가 됐다는 제안이 정치권에서 나오고 있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더불어민주당 대권 주자 양승조 충남지사는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주4일 근무제의 대선 의제화를 주장했던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과 협력해 주4일제를 정식 공약으로 들고나왔다. 양 지사는 “주4일제는 노동의 효율성, 친환경, 일자리 창출 등 일석3조의 효과가 있다”고 강조한다. 한국사회가 직면한 세계 최저 수준의 저출산과 OECD 최장 수준의 긴 노동시간을 해결할 단초가 된다는 것이다. 경영계에 미칠 부담에 대해서는 “기업규모 및 노동생산성에 따라 적용 범위를 단계적으로 확대해 나가면 가능하다”는 것이 양 지사의 생각이다.

조정훈 의원은 “양 지사를 출발점으로 여야 대선 주자들에게 주4일 근무제 토론을 요청한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주4일제 이야기는 문재인 대통령도 후보 시절 꺼낸 바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17년 1월 일자리 대책을 발표하며 “노동시간 단축은 결코 시기상조가 아니다”라며 “주5일제를 도입할 때 대기업과 보수 언론들은 나라 경제가 결딴날 것처럼 말했지만 1인당 연간 노동시간이 500시간 가까이 줄었는데도 우리 경제는 더 성장했고 국민의 삶은 더 윤택해졌다”고 언급한 바 있다.

배두헌 기자

badhoney@heraldcorp.com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