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데스크칼럼] ‘동학개미’ 이제는 놓아주자
뉴스종합| 2021-07-19 11:25

지난해 강력한 상승장을 거친 한국 증시를 설명하는 키워드로 ‘동학개미운동’이 빠지지 않는다. 아직 국어사전에 정식 등재되지 않았지만 경제용어사전에서는 ‘2020년 초 들어 코로나19 사태로 외국인 투자자가 삼성전자를 필두로 한국 주식을 팔며 급락세가 이어지자 이에 맞서 개인투자자들이 적극 매수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른바 신조어다. 동학개미에 이어 해외주식 투자에 나서는 개인을 두고는 서학개미, 더 나아가 중학개미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해가 바뀌어 2021년도 절반이 넘게 지났다. 서글프게도 코로나19 사태는 여전하다. 증시 또한 코로나19의 확산세에 출렁임을 거듭한다. 4차 대유행을 거치며 올해 상반기 리오프닝(경기재개) 기대감에 랠리를 벌이던 여행·유통·항공주들은 재차 하락세로 방향을 잡았다. 다만 그사이 하나 변한 게 있다면 거침없는 상승랠리를 이끌던 동학개미들의 증시영향력이다. 여전히 증시를 설명하는 각종 보도에서 동학개미가 빠지지 않지만 지난해 느껴졌던 거침없던 기세를 찾아보기 힘들다. 이들이 사들인 종목 대부분이 시장수익률보다 부진한 흐름을 보인다는 소식이 심심찮게 전해질 뿐이다.

동학개미라는 단어가 일상처럼 쓰일 당시 이런 의문이 있었다. 다양한 이해관계와 욕망을 지닌 개인투자자들을 동학개미의 한 단어로 묶는 게 합당할까라는 의구심이었다.

지난 15일 이뤄졌던 이른바 한국판 게임스톱 운동인 ‘K-스톱 운동’은 동학개미의 일반화가 가진 위험성을 적나라하게 노출했다. 동학개미들에게 공매도는 반드시 타도해야 할 악의 상징이다. 이에 미국의 게임스톱 사례처럼 주가를 급등시켜 공매도 투자자에게 대규모 손실을 입히겠다는 목적에서 이 운동이 기획됐다. 앞서 올 초 미국 개인투자자들은 공매도 타깃이 된 게임스톱과 AMC엔터테인먼트 등을 집중 매수해 주가를 1000%씩 급등시켰다. 이에 이들 종목의 공매도 투자자들은 막대한 손실을 봤다.

하지만 이런 기대감에 출발한 K-스톱 운동의 결과는 처참했다. 개인투자자 커뮤니티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한투연)이 이날 오후 3시부터 에이치엘비를 집중 매수키로 예고했지만 정작 약속시간인 3시가 되자 매물이 쏟아졌다. 오후 3시 전까지 20%가 넘게 오르던 에이치엘비 주가는 결국 5.54% 상승하며 마감했다. 결과적으로 이 운동을 믿고 3시에 매수에 나선 투자자는 고스란히 10%가 넘는 손실을 보게 됐다.

투자의 세계에서 익명의 다수가 하나의 일관된 세력으로 규합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특히나 주식시장에 참여한 이들의 목적은 이익을 내기 위함이다. 나라를 구한다거나 종교적 신념을 구현하는 동학운동과 비교하는 것은 결코 합리적이지 않다.

더욱 위험한 것은 동학개미운동은 적과 아군이라는 피아의 개념을 바탕으로 한다는 데 있다. 이는 시장 전반에 깔린 기관과 외국인 투자자에 대한 적대적 인식의 씨앗이 되고 있다. 이는 음모론으로 진화하게 되고, 투자는 비합리적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지수가 고점을 넘어서고 있지만 수익을 내기 힘든 시장이 이어지고 있다. 시장이 변했으면 투자자도 변해야 한다. 이제는 동학개미를 놓아줄 때다. 집단이 아닌 각자 투자의 주체로 거듭나야 한다.

sun@heraldcorp.com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