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라이프칼럼] 풀과의 전쟁과 공생
뉴스종합| 2021-07-20 11:29

농부라면 해마다 봄부터 가을까지 피할 수 없는 통과의례가 있으니 바로 ‘풀과의 전쟁’이다. 이 과정에서 검정 비닐 등을 땅에 덮어 씌우는 것이 거의 일상화됐다. 반복되는 전쟁에 지치다 보면 한방에 끝낼 수 있는 제초제의 유혹에 쉽게 빠진다. 아예 밭을 갈 때 흙 속에 제초제를 넣어 씨를 말리기도 한다.

요즘은 제초제를 너무나 빨리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필자 동네의 한 원주민은 “아이들을 생각해서도 집 주변 밭에는 절대 제초제를 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그의 맹세는 딱 그해 봄에만 지켜졌을 뿐이다. 귀농·귀촌인도 별반 다르지 않다. 심지어 텃밭 수준의 농사인데도 금방 제초제에 의존하는 것을 주변에서 종종 보게 된다.

물론 제초제는 저비용·고효율을 꾀하는 생력화 농업의 유용한 수단이다. 땀 흘려 농사지어 높은 소득을 올리고 싶은 농민들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제초제가 인체에 매우 해롭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농가 밀집 마을이나 학교 주변 농지 등엔 금지하는 게 맞다. 농업·농촌의 공익적 가치를 인정해 농민에게 주는 직불금과 농민 수당의 취지를 봐도 그렇다.

요즘 필자는 힘겨운 풀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11년째 작물용 화학농약·비료는 물론 제초제도 절대 쓰지 않는다. 오직 낫과 예초기만 가지고 폭우와 폭염 속에서 풀과 일대 격전을 벌인다. 풀과의 여름전쟁은 그래서 처절하기까지 하다.

이 전쟁에서 필자의 전략은 승리가 아니다. 사실 장마 기간 빗물을 먹고 나면 금방 ‘나무’로 자라 ‘밀림’을 이루는 풀숲을 보고 있으면 전투 의지가 팍 꺾인다. 실제 전투에서도 풀들의 공세에 밀려 방어하기에 급급하다. 그래서 이기려 들지 않고 무승부 전략으로 임한다. 풀이 작물을 해하지 않고 공생할 수 있는 정도만 대처한다.

필자에게 풀 제거작업은 육체적으로 가장 고된 농사일에 속한다. 해마다 풀을 깎는 데만 보름 이상 걸린다. 장시간 제초작업으로 열사병 증세와 피부병에 걸리기도 했고, 허리가 고장 나는 바람에 며칠간 반신불수 상태로 누워 지낸 적도 있다. 그래도 제초제를 써야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인체에 해로운 독한 제초제를 쓴다는 것은 풀을 오로지 처치해야 할 적으로만 여기기 때문이다. 실제로 풀은 때론 우군이 되기도 한다. 요즘처럼 폭우가 잦은 때에는 풀이 빗물에 의한 토양 유실을 막아준다. 베어낸 풀은 그 자체가 흙을 비옥하게 만들어주는 유기물이자 퇴비다. 작물 개량을 위한 유전자 자원 활용 측면에서도 풀의 가치는 매우 크다. 그 불굴의 생명력을 지켜보고 있으면 경이로움과 함께 정신적인 교훈까지 얻는다.

요즘 농촌에서도 코로나19 사태의 파장은 자못 심각하다. 의료 전문가가 아닌 필자로서 이 전염병에 대해 왈가왈부할 자격은 없을 것이다. 다만 4단계 방역 조치 이후 한편에서 제기되고 있는 ‘코로나와의 공존(With Corona)’에 대해선 공감하는 바 크다. 결국 코로나19는 풍토병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코로나 백신에 대해서도 인체에 유해 한 제초제처럼 부작용이 크기 때문에 꼭 정답이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풍토병으로 남은 다른 감염병처럼 지속적으로 조심하면서 개인위생 등에 더 노력하며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젠 코로나와의 전쟁만이 아닌 ‘공생의 출구 전략’을 마련할 때가 된 게 아닐까 싶다.

박인호 전원칼럼니스트

think@heraldcorp.com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