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레져
들마루 앉아 옥수수 먹으며 TV 보던, 그 여름밤을 소환하다
라이프| 2021-07-22 11:01
모기장 안에서 스크린으로 영상과 음악을 감상한 화엄사 ‘모기장 음악회’ 모습. [헤럴드DB]

“코로나19로 지친 국민과 불자 여러분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위로해 드리고, 자연과 더불어 천년고찰 화엄사에서 좋은 영화음악을 감상하시면서 코로나를 이겨내시는 힐링의 시간이 됐으면 합니다.”

이색 ‘모기장 영화음악회’를 기획한 구례 화엄사(華嚴寺) 주지 덕문(德門) 스님은 “여름밤 들마루에 모기장을 치고 둘러 앉아 옥수수를 먹으며 TV를 보던 기억, 그 풋풋한 추억을 떠올리며 여름 밤의 시간 여행을 준비했다”며 “코로나 19로 심신이 지쳐있는 사람들을 위해 산사의 자연속에서 힐링의 시간이 됐으면 한다”고 소개했다.

지난 17일 저녁 화엄사 템플스테이 수련원 앞마당에서 진행된 ‘모기장 영화 음악회’는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방역수칙을 지켜가면서 60여 명의 다문화가족과 템플스테이 참가자, 가족 단위 관객들이 개별 모기장 속에서 옥수수를 먹으며 음악 감상 시간을 가졌다.

음악평론가 조희창 씨의 해설로 ‘달빛 소나타, 별빛 로망스’라는 주제로 열린 음악회는 클래식 음악이 빛났던 영화 속 잊지 못할 명장면을 스크린에 띄운 가운데 음악과 영화의 고전이 만나는 시간, 바이올린과 기타의 아날로그 선율이 산사의 밤을 평온하게 적셨다.

밤 공기를 맞으며 영화사에 빼놓을 수 없는 불멸의 작품과 음악을 듣다 보면 달빛 아래 모기장은 어느새 영화 속 세계와 하나가 된다. 오는 8월 7일에도 같은 장소에서 한 차례 더 영화 음악회가 열릴 예정이다.

이날 서울에서 템플스테이 참가차 내려왔다는 곽보선 씨는 “KTX 구례구역에서 내려 화엄사를 찾고 있는데 올 때마다 힐링과 명상, 마음을 챙길 수 있어 멀어도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내려오는 편”이라고 말했다.

화엄사 주지로 부임한지 4년 째인 덕문 스님은 사찰을 개방해 국민 속으로 다다가는 노력을 부단히 하고 있어 군민과 불자의 호평을 받고 있다.

지난 2017년 5월 주지스님에 부임된 덕문스님은 취임식을 생략하고 성보문화재 학술행사로 대체하는 파격 행보로 불교 개혁에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말사(末寺)인 천은사(泉隱寺) 입장료 폐지를 결단한 것은 지금도 국민들에 강한 인상을 심어줬다. 사찰 수입은 줄었지만, 탐방객들이 부담 갖지 않고 사찰에 자주 들르는 계기가 된 것은 분명했다.

덕문스님은 “우리 조계종 소유 땅에 군사정부 때 우리 허락 없이 정부에서 도로를 내고 포장하고 지방 도로로 편입해 버려 한마디 사과도 받지 못해 우리도 할 말은 많다. 하지만, 국민들이 도로에서 입장료를 받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니 대승적 차원에서 폐지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스님들이 돈 갖고 사는 사람은 아니기에 재정수입은 줄어도 좀 가난하게 살면 되지 않느냐는 생각에 결단을 내렸다”고 회고했다.

이 사찰과 인연을 맺고 있는 성기홍 불자는 “덕문스님은 화엄사가 살아야 구례·곡성이 산다는 철칙을 갖고 불교의 큰 지도자로서 군민과 국민들에 다가가려고 노력하고 있다”면서 “탈(脫)종교화로 종교가 위기인 시기에 내가 찾아가서 편히 쉴 수 있는 곳, 지나치게 엄숙하지 않고 편안하게 쉬어가는 화엄사를 만들어 가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덕문스님은 불교가 더 이상 산속에 머물러서는 안되고 대중 속으로 더욱 다가가는 종교가 돼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다.

이를 위해 광주 광산구에 ‘화엄사 빛고을광주포교당’을 오는 9월 준공을 목표로 건축 중이며, 이곳에서는 앞으로 도시민을 위한 사찰 프로그램을 준비해 국민불교로 정립한다는 구상이다.

덕문스님은 우리나라에 유일무이한 ‘화엄석경(華嚴石經·보물 1040호)’ 재조명에도 많은 공력을 쏟고 있다.

그는 “중국의 방산석경(房山石經)은 화엄석경에 비해 글씨체도 조잡할 정도임에도 불구하고 돌에 새긴 경전이 없다보니 국보 1호로 아끼는데 반해서 우리는 유일한 석경이 화엄사에 남아 있는데 그동안 가치를 몰랐다”고 안타까워 했다.

화엄석경은 화엄경을 엷은 청색의 돌에 새긴 것으로, 통일신라시대 문무왕 17년(677)에 의상대사가 왕명을 받아 화엄사에 각황전을 세우고 이곳에 화엄석경을 보관했다.

임진왜란과 6.25 때 석경이 파손됐고 색깔도 회갈색으로 변했지만, 신라 후기의 불교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돼 파본 상태여도 보물로 지정돼 있다.

화엄사에는 3만여 점의 석경이 보존돼 있는데 덕문 스님은 돌판에 새겨진 글씨를 볼 때 마다 새삼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나무에 새긴 목각은 많으나 돌에다 새긴 경전(經典)은 흔치 않은 보물입니다. 1400년 전 돌에다 아름다운 글씨를 새기는 기술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간단한 작업은 아니지만 파편 조각을 일일이 맞춰가며 화엄석경을 본격적으로 연구할 예정입니다”

이를 위해 화엄사 측에서는 ‘화엄석경보존각(閣)’을 지어 우리나라에 유일본 화엄사석경을 본격 연구하겠다는 복안도 갖고 있다.

덕문스님은 종열스님을 은사로 출가, 범어사 자운 스님을 계사로 모셨으며 그동안 화엄사 재정국장, 제13~15대 중앙종회의원, 총무원 호법부장, 불교중앙박물관장, 대구동화사 주지 등을 역임했다.

지리산 자락에 자리한 화엄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로, 전남 동부권(구례·곡성·광양·순천·여수) 지역 사찰을 관장한다. 행정으로 치면 ‘도청 격’ 사찰로 천은사와 향일암, 흥국사 등 58개 말사를 둔 조계종단 대표종찰이다.

신라 때, 의상(義相)이 당(唐)에 가서 지장사 지엄(智儼)에게 ‘화엄경(華嚴經)’을 배우고 돌아와 창건한 10개의 절 가운데 하나인 남도(南道)의 ‘화엄십찰(華嚴十刹)’로 꼽힌다.

구례(전남)=박대성 기자

parkd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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