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다시 한번 대한민국이 달라졌다”…선수도 국민도 ‘ENJOY 올림픽’
엔터테인먼트| 2021-08-09 10:05
코로나19의 위협, 세계 각국 선수들과 경쟁, 자신과의 싸움마저도 이겨낸 2020도쿄올림픽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김연경, 안산, 김소영, 공희용, 김민정. 전웅태, 김지연, 김세희, 서채현, 신유빈. 신재환, 오진혁, 황선우, 우상혁, 우하람. 연합뉴스

[헤럴드경제=홍석희 기자] 올림픽이 달라졌다. 정확히는 국민들이 바뀌었다. 져도 이겨도 응원했다. 메달이 없어도 좋고, 있으면 더 좋았다. 약자에겐 격려가 강자에겐 축하가 이어졌다. 예전엔 달랐다. 은메달을 따고 ‘죄송하다’던 선수가 많았다. ‘체력이 국력’이던 시절을 지나, 스포츠로 ‘국위 선양’을 하던 시즌을 너머, 이제는 ‘인조이(ENJOY) 올림픽’의 시대가 왔다. 원인은 간명하다. 한국은 스포츠 외에도 내세울 요인이 이미 많은 국가다. 음악, 영화 등 문화상품은 물론이고 반도체·조선·디스플레이 등 공산품도 세계 1위다. 스포츠를 스포츠로만 볼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 37년래 최저 종합성적의 역설은 ‘올림픽 뉴노멀’ 시대의 시작을 알린다.

승자에겐 축하가 쏟아졌다. 최초의 올림픽 3관왕은 안산이 차지했다. ‘페미 논란’은 안산의 집중력을 흔들지 못했다. 방송사들의 섭외 1순위에 안산이 올랐다. 너도나도 안산을 홍보모델로 발탁하겠다고 했다. 양궁의 ‘뽜이팅 전사’ 김제덕은 소년 가장 소식이 전해졌다. 그가 딴 두개의 금메달만큼이나 그의 성장 스토리도 화제가 크게 됐다. 남자 펜싱 단체전에서도 금메달이 나왔다. 김정환은 3개 올림픽 연속 메달이란 대기록을 달성했다. 롤모델 양학선을 따랐던 신재환은 도마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여서정이 동메달을 따 사상 첫 올림픽 부녀 메달리스트 소식도 알려왔다. 근대5종 동메달리스트 전웅태의 눈물과 림프암을 극복한 태권도 인교돈의 스토리도 감동이었다.

메달이 없어도 응원은 계속됐다. 폐막식 당일 오전 열린 여자 배구 동메달 결정전에서 한국은 세르비아에 0-3 완패했다. 브라질(0-3) 패배에 이은 연전연패 상황이었다. 그러나 어느 메달보다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다. 일본과 터키를 상대로 한 역전승 때문만은 아니다. ‘학폭 자매’의 부재에서 거둔 준결승 진출이기 때문도 아니다. 여자배구팀에 국민들이 보낸 응원은 객관적인 실력의 열세가 자명했음에도 최선을 다해 노력한 팀에 보낸 찬사였다. 팀이 지고 있는 상황에서 껌을 질겅질겅 씹는 야구 경기 장면에 비난이 가해졌던 이유도 결과와는 무관하게 그의 태도에서 ‘노력’의 기미를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전패불구 축하받은 팀도 나왔다. 12팀 중 12위, 5전 5패의 결과에도 남성 7인 럭비팀을 향한 응원은 쏟아졌다. 한국 신기록을 세우며 역영을 펼쳤던 황선우와, 팔꿈치 신경이전 수술을 받고 올림픽에 출전한 속사권총 한대윤, 한국 다이빙의 역사를 다시쓴 우하람과 스포츠클라이밍의 서채현, 여자 역도 이선미 역시 메달이 없어도 큰 응원을 받기에 충분했다. 요트 불모지에서 일군 하지민의 올림픽 7위는 대단한 성과였고, 체급을 높여 출전해야만했던 역도 진윤성(109㎏)도 6위에 올랐다. 카약에 출전한 조광희는 준결승에 진출했다. 신유빈·전지희·최효주가 활약한 탁구 역시 메달 유무와는 관계 없이 많은 응원 속에 경기를 치를 수 있었다.

모두가 한국처럼 여유 넘치지는 않았다. 유럽의 마지막 독재국 벨라루스의 루카셴코 대통령은 ‘헝그리정신이 부족하다’며 선수들에게 금메달을 종용해 국제적 조롱을 받았고, 일부 선수는 올림픽 기간 중 망명을 택하기도 했다.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터키를 도와달라’는 SNS 해시태그를 자신에 대한 공격이라 해석하고 수사에 들어갔다. 중국은 체조에서의 석연찮은 판정에 흥분해 ‘동계 올림픽 때 보자’며 일본을 비난했고, 중국 여자 선수들이 마오쩌둥 배지를 달고 시상대에 선 것이 문제가돼 IOC의 조사가 진행중이다. 올림픽 기간중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1만5000명을 넘은 일본은 당분간 방역에 전념해야할 형편에 처했다.

한국은 2020 도쿄 올림픽에서 종합순위 16위(금6·은4·동10)를 기록했다. 지난 1984 올림픽 이후 37년만의 최저 성적이다. 그럼에도 한국의 국가 위상이 떨어졌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 지난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내 최고 수준이고, 한국영화 기생충은 미국 아카데미에서 감독상을 받았으며, 방탄소년단(BTS)의 신곡은 두달넘게 빌보드 1위다. 반도체와 조선업, 디스플레이 부문 역시 한국이 수년째 세계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

‘인조이 올림픽’이 가능해진 것은 역설적으로 높아진 국가 자부심 덕이다. 국민들은 스포츠에 부여됐던 ‘국위선양’이란 거대 기획을 제거했다. 큰 그림이 제거되자 개인의 이야기에 관심이 쏠리고, 개별 선수들이 흘린 눈물의 가치가 눈에 들어온다. 폐막식을 장식한 프랑스 올림픽 영상에는 파리 에펠탑에 축구장 크기만한 올림픽기가 걸렸다. 스포츠를 스포츠로만 볼 여유가 생긴 국민들이 있어 다음 올림픽은 더 큰 기대감으로 다가온다.

8일 도쿄 신주쿠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폐회식이 끝난 후 전광판에 ‘아리가또’ 일본어가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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