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일반
엘살바도르 국민 90% “비트코인 몰라”…지구촌 첫 법정화폐 정착 가시밭길 예고
뉴스종합| 2021-09-03 11:35
엘살바도르 수도 산살바도르의 한 매장에 ‘비트코인 결제 가능’이라는 종이가 붙어있다. 엘살바도르는 오는 7일부터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인정할 예정이다. [AFP]

중남미 국가 엘살바도르가 오는 7일부터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도입하기로 한 가운데 반대 여론이 들끓고 있다.

나입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이 지난 6월 5일 “국가와 투자 경제 발전을 위해 비트코인을 법정통화로 지정하겠다”고 발표한 뒤 단 3일만에 관련 법안이 의회를 통과하는 등 ‘졸속 처리’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대다수의 엘살바도르 국민은 비트코인에 회의적이다. 센트랄아메리칸대학(UCA)에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1281명의 국민 중 67.9%가 비트코인을 법정통화로 수용하는 데 반대한다고 응답했다.

응답자 10명 중 9명은 ‘비트코인에 대해 잘 모른다’고 답했으며, 10명 중 8명은 ‘비트코인을 쓰는 데 자신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부켈레 대통령은 비트코인을 공식화폐로 도입하는 것이 “외국 투자 유치는 물론 국민에게 더 저렴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한다”며 “송금 비용을 낮추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 국내총생산(GDP) 105위인 엘살바도르에서는 송금액이 GDP의 20%를 차지할 만큼 의존도가 높다. 지난해는 거의 60억달러(한화 약 6조9500억원)에 달하는 송금액이 발생하기도 했다.

오는 7일 시행을 앞두고 있는 법안에 따르면 모든 기업을 포함한 경제 주체는 비트코인을 결제수단으로 제공해야 한다. 엘살바도르 국민은 비트코인으로 세금 납부와 은행 대출까지 할 수 있다. 미국 달러와 비트코인을 자유롭게 교환하는 것도 가능하다.

시민은 정부가 제공하는 전자지갑 ‘치보’를 통해 비트코인을 이용해야 한다. 엘살바도르 정부는 전자지갑에 가입하는 국민 1인당 30달러(한화 약 3만4000원)를 지급하겠다며 총예산을 7500만달러(한화 약 869억2500만원)로 잡았다.

엘살바도르 정부는 비트코인 거래에 파격적인 혜택까지 얹었다. 거래 양도소득세는 면제되고 12만달러에 달하는 비트코인 3개(한화 약 1억3900만원)를 투자하는 외국인에게는 영주권을 준다.

하지만 부켈레 대통령이 정확한 지식과 충분한 논의 없이 중대한 결정을 했다며 대다수의 경제기관과 전문가는 비관적으로 바라봤다. 국제통화기금(IMF)는 공식 블로그를 통해 “시장에서 변동성이 높은 비트코인을 공식 화폐로 지정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며 “가계와 기업은 경제활동보다 돈을 저축하는 데 더 집중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국내 물가가 불안정해지는 지름길”이라고 경고했다.

리카르도 카스타녜다 엘살바도르 경제학자는 “대통령은 국가를 탈세나 불법 자금 조달과 같은 ‘돈세탁의 성지’로 만들려고 한다”며 “대통령 본인도 비트코인의 위험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비판이 이어지자 최근 엘살바도르의 중앙은행은 자금 세탁과 비트코인을 활용한 불법 활동 방지책을 포함한 금융 규정을 발표했다.

그러나 대다수의 국민이 회의적이라, 비트코인이 법정통화로 정착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유혜정 기자

yoohj@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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