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라이프칼럼] 귀농·귀촌과 ‘시골DNA’
뉴스종합| 2021-10-19 11:40

오래전에 한 중년 여성과 전화로 귀농·귀촌 상담을 한 적이 있다. 시골(전원)생활을 몹시 갈망해온 그는 즉시 귀촌을 실행에 옮기고 싶어 했다.

그런데 걸리는 것이 딱 하나 있다고 했다. “그게 뭐냐?”고 물으니 대답이 다소 황당했다. 그는 “귀촌하더라도 모기는 절대 없는 곳이어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헐!! 모기 없는 시골이라니....

시골생활 만 12년차에 접어든 필자는 최근 아찔한 뱀 소동을 겪었다. 집과 밭 사이 수돗가에 나타난 뱀을 미처 보지 못하고 하마터면 밟을 뻔한 것. 집과 농장 주변에는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맹독사인 까치살모사가 출몰하곤 한다. 심지어는 현관 덱과 평상까지 올라오기도 했다. 사실 미리 발견했더라면 살모사 정도는 그리 호들갑 떨 일도 아니다.

어디 뱀뿐인가. 뱀들의 먹이인 쥐는 훨씬 더 많다.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통 쥐는 말할 것도 없고, 농작물에 큰 피해를 주는 들쥐와 두더지처럼 땅을 파고 다니는 땃쥐도 많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집과 창고로 집요하게 침투를 시도하는 쥐와의 전쟁은 연례행사다. 이 밖에도 말벌과 나방, 각종 해충 등 ‘자연의 불청객’은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도시인 가운데는 저 푸른 전원에 그림 같은 집을 지어 여유 있게 살거나, 청정 오지에 파묻혀 안분지족하는 ‘자연인’의 일상을 보고는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고 부러워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시골(전원)생활이란 낭만이 아닌 엄연한 현실이다. 받아들여야 할 불편함과 극복해야 할 시련 또한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모기·뱀·쥐·말벌 등 불청객은 모두 자연의 일부요, 생태계의 한 모습이다. 시골(전원)생활을 하자면 이들과 비록 한 지붕 아래 동거할 순 없어도 공존은 인정해야 한다.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시골DNA’가 없거나 결핍돼 있다고 봐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귀농·귀촌을 결행하기 전에 시골DNA가 있는지 없는지 스스로 감별해볼 필요가 있다.

시골DNA 감별은 ‘농촌 살아보기’체험을 통해 가능하다. 지방자치단체마다 다양한 살아보기 체험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는데 저렴한 비용으로 직접 농사도 배우고 시골생활도 경험하면서 제대로 된 귀농·귀촌 준비를 할 수 있다. 가능하다면 이후에도 1~2년 정도 더 농지와 시골집을 빌려서 살아본 뒤에 귀농·귀촌 여부를 최종 결정하는 게 바람직하다.

필자가 아는 한 은퇴 부부는 지자체 살아보기 프로그램을 통해 8개월, 이어 작은 집과 텃밭을 빌려서 2년간 시골 살아보기를 체험했다. 그리고 최근에야 비로소 땅(농지)을 마련했다.

“남편이 텃밭농사 짓는 것을 너무나 즐거워하고 행복해한다”는 게 아내의 귀띔. 천천히 자신의 시골DNA를 확인하고 이를 발현해 시골의 일상에서 힐링과 행복을 얻으니 더 무엇을 바랄까.

지난해 귀농·귀촌 인구는 총 49만5000명으로, 3년 만에 다시 반등했다. 그러나 ‘지피지기(知彼知己)’가 결여된 즉흥적·낭만적인 귀농·귀촌은 결국 시행착오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귀농·귀촌의 관심 또는 준비 단계에서부터 자신의 시골DNA 유무를 점검해보고, 살아보기 체험을 통해 거듭 확인해 보시라.

그 결과, 아예 시골DNA가 없거나 있어도 그 정도가 매우 낮다고 판단되면 다른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현명하다.

박인호 전원칼럼니스트

thin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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