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대피 시간 충분했는데…숨진 간호사, 끝까지 투석환자 챙겼다
뉴스종합| 2022-08-06 09:35

5일 경기도 이천시 관고동 병원 건물에서 화재가 발생, 내부에 있던 병원 관계자들이 환자 대피를 위해 소방대원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나은정 기자] 경기도 이천시 관고동 학산빌딩 화재의 사망자 5명이 모두 건물 꼭대기층 병원에서 나온 가운데, 의료진 중 유일하게 숨진 고(故) 현은경(50) 간호사의 ‘살신성인’이 주변을 먹먹하게 하고 있다.

이번 불은 지난 5일 오전 10시 17분쯤 학산빌딩 3층 스크린골프장에서 발생했으나 연기가 위층으로 유입되면서 4층 투석 전문 병원(열린의원)에 있던 환자 4명과 간호사 1명이 미처 대피하지 못하고 숨졌다.

불은 1시간 10여분 만인 오전 11시 29분쯤 꺼졌고, 비교적 불길이 빠르게 잡혔음에도 인명피해가 컸던 이유로 소방당국은 투석 전문병원에 빠른 대피가 어려운 환자들이 많았기 때문으로 보고있다.

소방당국은 특히 현 간호사의 사망 관련, 현 간호사가 불이 났을 당시 대피할 시간이 충분했음에도 환자들을 먼저 대피시키기 위한 조치를 하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소방대원들이 현장에 진입했을 당시 간호사들은 환자들 팔목에 연결된 투석기 관을 가위로 자른 뒤 대피시키고 있었는데, 환자 팔에 연결된 투석기 관은 작동 도중 빠지지 않는 데다가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도 많아 대피 시간이 더 소요됐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장재구 이천소방서장은 “대피할 시간은 충분했던 상황으로 보여 숨진 간호사는 끝까지 환자들 옆에 남아있다가 돌아가신 것으로 보인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화재 당시 4층 내부 폐쇄회로(CC)TV 영상에도 현 간호사가 마지막까지 남아 환자들을 돌보는 장면이 찍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5일 오후 환자와 간호사 등 5명이 사망한 경기도 이천시 관고동 병원 화재 현장 모습. [연합]

현 간호사는 해당 병원에서 10년 넘게 근무해 온 고참 간호사로, 아버지 팔순을 하루 앞두고 이같은 변을 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현 간호사의 남편은 “아내는 ‘막노동’으로 불릴 정도로 고된 투석 병원 일도 오랜 기간 성실히 해내던 사람”이라며 “병원에서도 ‘고참 간호사’로 통해 나름의 사명감을 갖고 일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평소 환자를 살뜰히 챙기던 성격상 불이 났을 때도 어르신들을 챙기느라 제때 대피하지 못했을 것 같다”면서 딸과 군복 입은 아들을 다독이며 연신 울먹였다.

현 간호사의 아들은 군복무 중 전날 휴가를 받고 친구 집에서 시간을 보낸 뒤 이날 본가로 오다가 비보를 전해들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대한간호사협회(간협)는 환자를 지키다 숨진 현 간호사를 위해 5일부터 추모위원회를 구성하고 온라인 추모관을 운영하고 있다.

온라인 추모관에는 “마지막까지 환자를 위해 자리를 지켜낸 직업의식 너무나 존경스럽다” “환자를 살리고자 한 숭고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당신은 진정한 백의의 천사이십니다” 등 후배 간호사와 시민들의 애도가 잇따르고 있다.

betterj@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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