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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서 CPR로 2명 살린 고교생…“제발 살아라, 그 생각뿐”[이태원 참사]
뉴스종합| 2022-11-02 09:39
지난달 29일 밤 ‘이태원 참사’ 발생 직전의 사고 현장 인근 골목 모습. 당시 이곳에 있던 최민규 군이 찍었다. [최민규 군 제공]

[헤럴드경제=박혜원 기자] “제발 살아라. 그 생각뿐이었습니다.”

‘이태원 참사’ 발생 무렵인 지난달 29일 오후 10시께, 지인들과 인근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며 시간을 보내던 최민규(17) 군은 길거리에 짐을 모두 내버려 두고 사고 현장으로 뛰쳐나갔다. 바깥 상황이 심상치 않다며 먼저 나갔던 지인이 “빨리 사람들을 살려야 한다”며 황급하게 돌아오고 나서였다.

2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인근에서 헤럴드경제와 만난 서울 강동구 서울컨벤션고등학교 2학년 최군은 사고 당시 현장에서 시민 구조를 도왔던 경험을 어렵게 다시 꺼냈다.

최군이 도착한 이태원역 일대는 이미 ‘아비규환’이었다. 현장을 보고 놀라 비명을 지르는 시민, 미처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채 인근으로 몰려드는 시민이 뒤섞여 있었다. 핼러윈 코스프레로 경찰 제복이나 군복을 착용한 이들이 많았던 탓에 시민 통제도 수십분간 지체됐다.

현장에서 2명 살려…“CPR 방법 공부해둔 덕분”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CPR로 2명의 생명을 구한 최민규 군 [최민규 군 제공]

당시 최군은 심정지 상태의 시민 10여 명에게 심폐소생술(CPR)을 실시했다. 이 중 2명은 극적으로 호흡을 되찾았다. 최군은 “어떻게든 살려야 한다는 마음밖엔 없었다”고 전했다.

최군이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었던 건 평소 익혀두었던 구조 지식 덕분이 컸다. 최군은 “중학교에서 CPR 교육을 받긴 했지만 형식적인 수준이었다”며 “성별이나 체형에 따른 방법 차이를 따로 공부했던 게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강북삼성병원 응급의학과 연구에 따르면 여성의 경우 권장되는 CPR 압박 깊이가 남성보다 1㎝ 정도 낮은 5㎝다. 물론 체형이 크거나 체중이 많이 나간다면 그만큼 더 강한 자극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런 지식을 정확히 알고 있는 일반인은 드물다. 참사 이후, 일반인 대상 응급처치 교육이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최군 역시 “CPR을 도우려는 시민들도 많았지만, 심정지 환자의 혀를 에어웨이(기도확보 도구)가 아니라 손가락으로 들어올리는 등 위험한 상황이 많았다”며 “대부분 술에 취한 상태였는데 섣불리 나섰다가 사태를 악화시킬 수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실제로는 심정지 환자의 기도를 확보하려면 머리를 뒤로 젖히고 턱을 들어올려야 한다.

“더 살릴 수 있었다면”…응급구조사 자격증 취득 결심
지난 29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일대에 핼러윈을 맞아 인파가 몰려 대규모 인명사고가 발생, 현장이 통제되고 있다. [연합]

최군을 힘들게 하는 건 참혹한 현장을 직접 봤다는 괴로움이 아니다. “한 명이라도 더 살릴 수 있었다”는 아쉬움이다. 이에 최군은 응급구조사 자격증을 취득하기로 결심했다. 최군은 “일상을 살아가며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언제든 응급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경각심이 생겼다”고 털어놨다.

참사 후 2시간가량이 지나 자정을 넘긴 시각, 최군은 다리근육 손상을 입은 시민과 함께 구급차를 탔다. 의식이 불분명한 상태였던 환자를 경기 지역의 한 병원까지 인계한 뒤 최군은 다시 택시를 타고 이태원역으로 돌아왔다. 현장 수습이 얼추 마무리됐을 무렵, 최군이 다시 시계를 봤을 땐 다음날인 지난달 30일 오전 3시였다.

일상으로 돌아온 월요일이었던 지난달 31일, 덕분에 병원에 이송됐던 시민에게 ‘정말 감사하다’는 전화를 받았다고 최군은 겸연쩍게 웃기도 했다. 그는 “살아남은 이들이 힘든 기억을 잊고 살아가면 좋겠다”며 “유가족들에게도 상처가 되는 당시의 영상과 사진을 온라인에 함부로 공유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k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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