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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레마에 빠진 드라마 사전제작] ①그 많던 니즈(Needs)는 다 어디로 갔나?
뉴스| 2017-03-1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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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훈PD(왼쪽)와 배우 이순재. (사진=MBC)


기형적인 드라마 제작 환경을 개선하고 양질의 드라마를 추구한다는 취지로 도입된 사전 제작 시스템에 빨간불이 켜졌다. 최근 나오는 다수의 사전 제작 드라마들은 왜 ‘태양의 후예’가 되지 못했나. 중국 시장을 겨냥한 경제적 논리에 잠식된 ‘사전 제작’에서 ‘태양의 후예’급 신드롬을 기대하지 않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여러 맹점을 안고 있는 이 시스템은 현재도 꾸준히 진행 중이다. 결국 업계 관계자들은 이를 안고 가면서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대체 문제가 뭐야?” -편집자주-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장영준 기자] 10년 전 MBC 드라마 '이산'을 연출했던 이병훈 PD는 간담회 자리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이제 한국 드라마를 한국 사람들만 보는 시대는 지났다. 연출가와 연기자는 드라마를 잘 만들어야할 책임이 있는데 지난 30년간 우리나라에서는 사전 제작제가 정착되지 않아 항상 시간에 쫓기며 연출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얼마 전 '이산' 촬영 도중 비가 와 촬영을 접은 적이 있는데 이 장면은 비가 내리는 게 보이면 안됐던 신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마 드라마 방영 도중이었다면 시간에 쫓겨 그냥 찍었을 것이다."

올해로 연기 60주년을 맞은 배우 이순재 역시 꾸준히 사전제작의 필요성을 강조해 온 이들 중 하나다. 그는 "사전 제작제는 방송계에서 70년대에 이미 극복했어야 하는 문제다. 드라마가 많아 지고 방송사 수익에도 드라마가 큰 부분을 차지하면서 사전 제작제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며 "사전 제작을 통해 작품을 준비할 시간이 많아지면 연출가와 배우 및 작가가 더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세대에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는 불가능 할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다.

어느덧 10년이 지났고 이순재의 우려와 달리 현재 우리 방송계에서는 사전제작 드라마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 탄생 이면을 들여다보면 조금 씁쓸하다. 쪽대본과 스태프들의 열악한 처우 등을 개선하기 위해 도입이 절실했지만 지금의 사전 제작 시스템은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무엇보다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시스템이 아닌 중국 자본에 의해 반강제적으로 도입됐다는 점에서 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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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태양의 후예' 스틸. (사진=태양의후예문화산업전문회사, NEW)


지난 2016년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끌었던 KBS 드라마 '태양의 후예'는 100% 사전제작으로 만들어졌다. 130억이라는 제작비가 투입된 제법 큰 스케일을 자랑하는 이 드라마는 제작사인 NEW가 선판매와 PPL을 통해 제작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이는 중국과의 최초 동시 방송을 위한 것이었는데 그보다 먼저 중국 광전총국 심의를 통과해야했기에 사전제작은 필수였다.

물론 '태양의 후예' 이전에도 사전 제작 드라마가 없던 건 아니다. MBC '내 인생의 스페셜'(2006) SBS '비천무'(2008) MBC '로드넘버원'(2010) 등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미리 촬영을 마쳐놓고 편성을 잡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즉 어쩔 수 없는 사전제작이었던 셈. 결국 어렵게 편성을 확정해도 결과는 흥행 참패로 이어지면서 사전 제작은 더욱 힘들어졌다. 사전 제작을 위해서는 제작비 확보가 절실한데 국내에서는 드라마의 성공 여부를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섣불리 투자에 나서려는 이들을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사드 배치에 따른 잇단 보복조치로 당분간 중국 측의 과감한 투자는 다소 위축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사전 제작 역시 잠시 주춤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여기에 최근 몇몇 사전 제작 드라마들이 예상보다 저조한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시스템 정착 논의는 다소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기존 '실시간 촬영' 시스템과 사전 제작의 장점을 이용한 '반(半) 사전 제작'이 대안으로 대두되고 있다.

한 드라마 관계자는 "사전 제작이 드라마 제작의 정답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방송 한 달 전에 쪽대본이 나오는 것도 정답일 수는 없을 것"이라며 "일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퀄리티에 신경 쓰면서 일했으면 좋겠지만 중국에 수출해 동시 방송까지 하려면 그 마저도 쉽지 않다. 그래서 요즘 반 사전 제작이 많아지고 있다. 미리 촬영에 들어가는 것인데, 그것 역시 중요한 건 완성된 대본이 얼마나 빨리 나오느냐에 있다"고 말했다.
cultu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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