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영화가 된 책]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삶의 공허함은 오롯이 내 몫일 뿐이다
뉴스| 2017-06-21 14:56
이미지중앙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스틸컷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문다영 기자] 이웃집에 사는 그녀가 어느 날 공허한 눈빛으로 내게 말했다.
“이대로 살아보려고요. 그러다 어느 날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같은 마법이 내게 펼쳐질 수도 있고 그렇지 않으면 그냥 이렇게 살다 죽는 거겠죠.”

고된 육아와 서로를 돌아보지 않게 된 부부관계에 여전히 자신은 사랑을 원한다고 눈시울을 붉히던 그녀가 마치 바람이 지나듯 드러낸 속내였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라…. 속된 말로는 여자의 외도일 테고 작품 팬들에겐 누구나 경험할 수는 없는 마법같은 사랑일 터다. 어릴 적 읽었던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다시 꺼내들었다. 결혼을 하고 육아와 직장만으로 사는 게 숨가쁜 내게 마치 꿈같은 이야기였고, ‘함께 있어 더욱 외로움을 느낀다’는 진실을 깨달아버린 어른들을 위한 동화였다.

“애매함으로 둘러싸인 이 우주에서, 이런 확실한 감정은 단 한번만 오는 거요. 몇 번을 다시 살더라도, 다시는 오지 않을 거요.”

동명의 영화와 뮤지컬로도 제작된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사진작가가 촬영을 위해 방문한 곳에서 우연처럼 만난 여인과 일생일대의 사랑을 하게 되는 내용을 그린 작품이다. 열정을 감춘 채 한 남자의 아내이자 두 아이의 어머니로 시골에 정착해 살아가는 프란체스카는 남편과 아이들이 짧은 여행을 떠난 사이 바람처럼 나타난 운명의 사랑 로버트 킨케이드를 만나게 된다. 로버트 킨케이드는 평생, 진실한 사랑을 해본 적 없는 남자지만 프란체스카를 보는 순간 심장이 말하는 사랑을 느낀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단 며칠 간의 사랑이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두 사람은 만나는 순간 서로를 알아본다. 그 사랑 앞에 시간은 중요하지 않다. 서로를 바라보는 순간 이미 온 우주엔 두 사람만 존재한다.

명백한 불륜이다. 프란체스카는 가족이 함께 하는 공간에서 그 무엇도 생각하지 않고 킨케이드와의 사랑에 집중한다. 이에 대해 작가는 작품 곳곳에 서로가 느끼던 삶에 대한 갈증이 두 사람을 끌어당긴 것이라고 애써 미화한다.

“오랫동안 내가 당신을 향해, 당신이 나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는 것은 이제 분명하오. 우리가 만나기 전에는 서로를 몰랐지만, 분명히 우리가 함께 되리라는 확신이 우리가 모르는 가운데도 저 가슴 밑바닥에서 쾌활하게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던 것이오. 하늘의 부름을 받아 광활한 초원을 나는 외로운 두 마리 새처럼, 그 모든 세월과 인생 동안 우리는 서로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던 거요.”

이미지중앙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책표지



두 사람을 위한 변명과 합리화 같은 이 장치는 있어도, 없어도 좋을 장치였다. 더 이상, 삶이 오롯이 자신의 것이 아닌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프란체스카와 킨케이드의 사랑은 일탈이 아닌 선물로 와 닿을 것이다. 누군가는 마법의 순간이라 표현할지 모르겠지만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진 건 일상이 행복하지 않아서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릴 적의 나라면 그저 ‘이 사랑은 운명이야’라고 감탄하는 데 그쳤을지 모른다. 그러나 십여 년을 더 살고 다시 펼친 책장 곳곳에 행복한 듯 살아왔던 두 사람의 공허함이 있었다. 프란체스카의 남편이 그저 착한 남편이 아니라 자기네 농장에 피어난 들꽃을 건네고 비좁은 부엌이든 어디서든 함께 춤출 줄 아는 남자였더라면 프란체스카에게 킨케이드는 그저 독특할 뿐인, 스쳐가는 남자였을지 모른다. 방랑자의 삶을 사랑하고 즐기는 킨케이드 역시 마음 한켠 자리한 떠나버린 아내의 부재와 개를 키우고 싶었던 안정된 삶에 대한 열망이 어느 시골집에서 안락하게 앉아 있는 미모의 프란체스카에게 이끌리게 했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분명 열정적인 사랑이다. 그러나 서로의 곁에 지금껏 없었던 존재였기에 더욱 마법같은 불꽃이 튀었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는 작품 발간 초기 일었던 불륜 미화 비판처럼 현실에서 이 같은 사랑을 하겠다는 부추김은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사랑에 대해 끄적이고 만 소설이기보다는 삶을 살아내느라 자신을 외면하고 살아온 이들에게 ‘너의 삶을 돌아보라’고 말하는 작품이다. 단순히 불륜을 미화한 작품이 아닌, 두 사람이 사랑을 느끼고 그 감정을 지켜가는 과정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으라고 끝없이 속삭인다. 프란체스카와 킨케이드에게 공허함이라는 공통된 구멍이 없었다면 세기적 사랑은 시작되지 않았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담담히 풀어간 두 사람의 이야기는 가슴이 쿵쾅거리는 설렘과 뜨거운 열정을 전한다. 그저 며칠 간의 사랑을 일생동안 품어낸 두 사람의 사랑이 경이로울 뿐이다. 사랑마저 소비의 일환으로 여겨지는 요즘 시대에 나 역시 죽을 것처럼 온 힘을 다해 사랑하던 때가 있었음을, 그 감정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씁쓸한 여운이 남을 뿐이다. 솔직하게 말해 일생에서 이런 사랑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은 행운이고 기적일 수밖에.

“신이라고 해도 좋고, 우주 자체라고 해도 좋소. 그 무엇이든 조화와 질서를 이루는 위대한 구조 아래에서는, 지상의 시간이 무슨 의미가 있겠소. 광대한 우주의 시간 속에서 보면 나흘이든 4억 광년이든 별 차이가 없을 거요. 그 점을 마음에 간직하고 살려고 애쓴다오. 하지만 결국, 나도 사람이오. 그리고 아무리 철학적인 이성을 끌어대도, 매일, 매 순간, 당신을 원하는 마음까지 막을 수는 없소. 자비심도 없이, 시간이, 당신과 함께 보낼 수 없는 시간의 통곡 소리가, 내 머릿속 깊은 곳으로 흘러들고 있소. 당신을 사랑하오. 깊이, 완벽하게”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