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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기자 Pick] '파랑새의 밤' 이 땅, 수컷들의 암울한 현실에 대하여
뉴스| 2017-08-11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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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야마 겐지 '파랑새의 밤'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문다영 기자] 괴짜작가로 알려진 마루야마 겐지가 14년만의 퇴고를 거쳐 ‘파랑새의 밤’을 내놨다. 작가 스스로 ‘한 남자가 자신의 운명과 대결하는 이야기’라 밝힌 이 작품은 200년도에 쓴 동명의 초고를 작가가 나이 먹어감에 따라 변해가는 개인적 소견과 주인공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못하고 재탄생 시켰다.

쉰다섯 살, 허름한 양복차림의 남자는 트렁크 맨 밑바닥에 현금으로 받은 퇴직금 뭉치를 깔고 고향땅을 찾는다. 그 이유도 남다르다. 지난 수십 년간 고의로라도 찾아오지 않았던 고향땅에 다시 걸음을 한 것은 다름 아닌 제대로 죽기 위해서였다. 이름 모를 괴한에게 무참히 살해된 여동생, 그 사건에 대한 복수심에 불 타 엉뚱한 타인을 실수로 죽이고 행방불명된 남동생, 연달아 일어난 비극을 못 이겨 극약을 먹고 자살한 어머니까지. 일찍이 출세라는 개인적 열망에 가족을 버리고 도시로 올라온 주인공은 극단적으로 엉켜버린 가족사로 인해 몸 바쳐 일한 회사에서 버림받고, 아내에게서도 이별을 통보받는다.

당뇨성 망막증으로 실명위기까지 닥친 그는 ‘그간 해보지 못했던 마음 내키는 대로의 삶’을 살아보다 완전히 실명에 이르면 미련 없이 목숨을 끊어보자는 계획을 세우고 고향을 찾는다. 그런 그에게 고향에서 만난 온갖 자연과 우연들, 그리고 이름 모를 ‘녀석’과의 반전들이 쏟아진다.

사회적으로 인정받아야 생존할 수 있는 남자의 삶, 그 거친 정글을 참고 견딘 결과 50대 중반의 주인공에게 다가온 건 권고사직과 질병선고, 가족의 해체였다. 작가는 강한 서사 속에 수많은 이 땅의 수컷들이 겪어야만 하는 암울한 현실을 조명하고 있다.

‘파랑새의 밤’은 수시로 등장하는 냉정함과 염세적 세계관의 묘사로 인해 독자들을 당황하게 한다.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절절한 행복과 건강한 생존을 갈망하는 주인공의 역설적 표현이기도 하다. 환상적이고도 특유의 점성을 띤 문체가 주인공이 변화되는 그때그때의 심리와 어우러져 독자들을 더없이 몰입하게 만든다. 특히 2014년 일본에서 출간된 ‘파랑새의 밤’은 당시 마루야마 겐지로부터 멀어졌던 많은 초기 소설팬들을 다시 돌아오게 만든 작품으로 더욱 그 가치가 높다.마루야마 겐지 지음 | 송태욱 옮김 | 바다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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