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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다영의 읽다가] 상대를 겨냥했지만 나에게 와서 박힌 그 말…'언어의 온도'
뉴스| 2017-09-15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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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남과 여' 스틸컷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문다영 기자] 사람을 그렇게 미워하게 될 줄 몰랐다. 한때 어떤 사람을 세상에서 가장 미워하게 됐다. 내가 알던 사람이 맞나 싶었다. 지금까지 몰랐던 그 사람의 민낯이, 시뻘건 속살이 세상의 종말처럼 다가왔다. 내겐 그랬다.

하늘을 원망하기도 했다. 왜 내게 이런 시련을 주느냐고. 사람에 대한 배신감이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제발 나 좀 살려 달라 빌어보기도 했다. 1초, 1분… 고통의 시간을 지나오다 보니 마음엔 굳은살이 박혀 무뎌졌다. 그리고 가시 돋친 혀가 남았다. 모진 말이 툭툭 튀어나왔다. 이 말을 하면 안된다는 생각과 동시에 이 말을 할 때 상대가 얼마나 상처를 받을지와 동시에 내 상처의 보상 수치를 계산했다.

묵묵부답인 현실에 저항하듯, 그 벽을 깨부수기라도 하듯 그렇게 모진 말과 비난의 행동들을 쏟아냈다. 그리고 남은 건 식상하게도, 그 가시가 고스란히 나에게 와서 박히는 것 뿐이었다. 내가 쏟아낸 그 뜨겁고 날카로운 말들은 상대를 뿐 아니라 나에게도 화상과 흉터를 남겼다. 그리고 다다른 결론은 모진 말이란 결국 어떤 계산 하에 내뱉어져도 틀린 수식이란 것이다. 스스로 내린 답이었다. 상대를 향한 독기서린 말과 행동이란 나를 사랑하지 않는 자해였다.

같은 맥락에서 ‘언어의 온도’ 이기주 작가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말이 어떤 온도차로 서로에게 다가서는지를 말한다. 용광로처럼 뜨거운 언어는 듣는 사람에게 정서적 화상을 입히고, 얼음장같이 차가운 표현은 상대의 마음을 돌려세우긴 커녕 꽁꽁 얼어붙게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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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온도'


이기주 작가는 말과 글, 행동까지 삶에 있어서의 ‘언어’들을 말한다. 무뚝뚝한 언어 속에 가둔 넘치는 부모의 사랑, 몸이 불편한 아들을 두고 떠나야 하는 시한부 어머니가 말 대신 함께 산책하는 것으로 홀로서기를 가르친 사연 등 자식을 향한 부모의 언어를 비롯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선 그 사람이 싫은 것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걸 평생을 걸쳐 얻은 할아버지의 이야기, 그저 상대와 발을 맞추는 것만으로도 애정이 묻어나는 노부부, 남녀의 사랑을 연출하는 리얼리티 쇼에 ‘감정은 비매품’이라 말하며 사랑을 논한다. 또 내 안의 분노는 상대에게서 빌려온 것이라 읊조린다. 다시 시작해야 하기에 살면서 내가 용서해야 하는 대상은 남이 아닌 나라 말한다. 작가가 길을 걷다가, 버스를 타서 엿듣고 바라본 사람들의 이야기는 언어가 지닌 소중함과 농밀함을 더욱 현실감 있게 전한다.

마음을 말이나 글로 옮긴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언어는 위험하다.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에서의 언어는 달콤하고 사랑스럽지만 관계를 이어가는 데 있어서의 언어는 말이든 행동이든 마치 수수께끼 같다. 그렇기에 작가는 언어의 온도를 말한다. 그 온도는 순간의 뜨거움이나 차가움이 아니다. 언어의 온도는 소멸되지 않는다. 나라는 사람의, 너라는 상대의 머리와 가슴에 새겨지는 온도다.

작가가 담아낸 무게와 달리 책은 작고 가볍다. 약간은 거친 종이의 질감이 ‘읽는 책’의 묘미를 살린다. 한 편 한 편의 에피소드이기에 이어질 이야기에 마음 졸이거나 작정하고 시간을 빼야 하는 책도 아니다. 오늘 하루, 내가 세상에 내뱉은 언어의 온도는 몇 도인지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말이, 글이 일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정도일까 되짚어 보면 작가의 이 말이 더욱 와닿을 것 같다.

“말 무덤에 묻어야 할 말을, 소중한 사람의 가슴에 묻으며 사는 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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