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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다영의 읽다가] 인간의 숙명, 그 상실의 깊이
문화|2018-01-11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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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문다영 기자] ‘김주혁 사망’. 지난해 故 김주혁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기 1시간여 전. 휴대전화에 뜬 그 문장에 헛웃음을 쳤다. 그럴 리 없다는 생각이 터뜨린 황당함이었다. 그 메시지를 보낸 다른 부서 선배에게 “헛소리 하지 말라”며 면박을 주기까지 했다. 그로부터 몇십 분 후 그가 불의의 사고로 생을 떠났다는 경찰의 공식 입장이 발표됐다.

김주혁을 인터뷰한 적은 있지만 딱히 팬이었던 적은 없었다. 그저 작품 속 캐릭터에 공감하고 빠져들었을 뿐. 그렇기에 그의 부고 후 며칠 간 느껴진 상실감은 이상할 정도였다. 가까운 사람을 잃은 양 허망한 기분에서 헤어나올 수가 없었다. 동료, 선배, 지인들도 하나같은 반응이었다.

그로부터 한달 반 정도 지났을까. 故 종현이 생을 떠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젊은 스타의 죽음은 가슴에 더 큰 구멍을 뚫었다. 종현은 아이돌에 관심이 없었던 내겐 김주혁보다도 거리감이 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을까’ ‘왜 이렇게 사람의 생은 덧없을까’ 안타까웠고 우울에 빠져들었다. 역시 그로부터 며칠 동안 가라앉은 마음은 추스를 길이 없었다. 가족도, 지인도 아닌 한낱 대중의 하나임에도 상실감은 마음을 좀먹었다.

이는 인간이기에 느끼는 숙명인지도 모른다. 히라노 게이치로는 그 숙명을 지그시 들여다본다. 그의 신작 소설집 ‘투명한 미궁’은 우리가 삶에서 예기치 못하게 마주치는 갈등과 상실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한다. 살아가는 이들은 계속 살아가야 하지만 그 상처는 결코 아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치유를 위한 위로도 아닌, 상처를 헤집는 적나라함도 아닌 그 한 중간에서 히라노 게이치로는 환상을 뒤섞어 끝없는 미궁을 헤매는 인간 군상을 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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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투명한 미궁' 책표지)


‘투명한 미궁’에는 남의 필체를 똑같이 흉내낼 수 있는 우편배달부, 자신과 똑같은 사람을 찾으라는 의뢰를 받은 남자, 부다페스트의 저택에서 지울 수 없는 경험을 한 남녀, 아버지의 유품에서 뜻밖의 물건을 발견한 자매, 타오르는 불꽃에서만 성적 매력을 느끼는 젊은이, 교통사고로 연인을 잃은 후 기묘한 병에 걸린 극작가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각기 다른 처지, 다른 상황에 놓인 이들이지만 이들의 가슴엔 구멍이 뚫려 있다. 가족을 잃었고, 인생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자신이라는 주체성을 잃어버린 이들. 모두가 어떠한 상실의 과정을 겪어내면서 보이지 않는 미궁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이들은 고통 속에서 끊임없이 소통을 시도하지만 개인적이고 일상적인 영역인 고독과 상실감 안에서 허우적댈 뿐이다. 특히 소설의 배경에 등장하는 동일본 대지진은 작가가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인간의 상실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수록작들 모두 2013년에서 2014년 사이 쓰였는데 작가는 이 수록작들을 통해 빈번하게 인생을 관통하는 순간들을 말한다. 짧은 찰나,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살아나는 순간을 통해 인간에 적용되는 시간이 과연 공통적 시간인가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지는 작가의 시선은 상실 후 인간의 변화에 도착한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현실에서 일그러진 환상과도 같은 변화를 겪지만 결국 나름의 방식으로 희망과 재생에 다다른다. 깊고 깊은 상처 안에서 결국은 살아갈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인간이라 말하고 싶은 것처럼.

히라노 게이치로는 교토 대학 법학부에 재학 중이던 시절 ‘일식’으로 제120회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하며 단번에 일본 문단의 기대주로 떠오른 작가다. 그의 두 번째 작품인 ‘달’은 탐미주의적 환상을 그려내며 독자들에게 몽롱한 만족감을 전하지만 ‘투명한 미궁’은 마찬가지로 탐미적이고 환상적이면서도 조금 더 현실로 빠져나온 느낌이다.

책은 가볍고 작다. 6편의 이야기가 나눠져 있는 데다 262페이지로 부담도 없다. 오묘하고 기묘한 분위기는 은근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무엇보다 맺고 끊어지는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씁쓸함을 전하는 무게감을 품고도 간결한 문체와 특유의 상상력, 흡인력 넘치는 필력 덕에 술술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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