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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타타라타] 평창 올림픽의 사과(謝過) 기승전결
뉴스| 2018-02-21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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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유태인학살기념비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하는 빌리 브란트 수상.


# 세기의 사과
빌리 브란트(1913~1992)가 1969년 서독 총리가 됐을 때만 해도 전범국가 독일의 이미지는 전 세계적으로 좋지 않았다. 브란트는 1970년 폴란드 바르샤바를 방문해 유태인학살 기념비를 찾아 무릎을 꿇고 나치의 만행에 대해 사죄했다. 눈물과 함게 제법 오랫동안 참회의 묵념을 해 그 진정성을 인정받았다. 1971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브란트는 서독총리로는 처음으로 이스라엘을 방문해 역시 솔직하고, 정중하게 사죄하고 용서를 구했다. 이에 이스라엘 총리 골다 메이어는 “우리는 용서한다. 그러나 잊지는 않을 것이다”라는 명언으로 화답했다. 진정한 사과는 이런 것이다. 침략전쟁에 대해 일왕부터 ‘통석의 염’(1990년)이라는 애매한 표현으로 포장하는 ‘일본식 사과 시늉’과는 비교할 수 없다.

# 평창의 사과1
지난 15일 IOC 선수위원이라는 자(애덤 팽길리)가 평창 올림픽 현장에서 보완요원에게 행패를 부렸다. 자기가 위반을 했으면서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힘없는 보안요원을 넘어뜨리고 폭언을 한 것이다. 이 자가 제대로 사과하지 않고, 한국을 떠난 것은 유감이다(나중에 서면으로 공식사과). 하지만 토마스 바흐 IOC위원장의 사과는 적절했다. 다음날인 16일 오전 “IOC 선수위원의 불미스러운 일과 관련해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국민, 그리고 평창조직위에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당사자를 즉각 윤리위원회에 회부하고, 한국에서 내쫓는 조치도 취했다. 이어 바흐 위원장은 16일 오후 해당 보안요원을 찾아가 정중하게 사과했다. 부모님을 초청하라며 폐회식 입장권까지 전달했다.

# 평창의 사과2
공교롭게도 같은 날(15일), 이기흥 회장을 비롯한 대한체육회 임원 3명은 크로스컨트리 경기장을 찾아 ‘갑질’, ‘막말’ 파문을 일으켰다(익히 잘 알려졌기에 자세한 내용은 생략). 공식사과는 이틀 뒤인 17일에 나왔다. 보도자료를 통해 ‘이기흥 회장이 크로스컨트리 경기장을 직접 찾아 자원봉사자들을 만났으며, 사과의 뜻을 전하고 대화를 통해 오해를 풀었다’라고. 그런데 이마저도 ‘셀프사과’로 빈축을 샀다. 이날 정작 피해 당사자는 휴무라 만나지 못했고, 20대 초반의 그는 보여주기식 사과에 다음날 불쾌감을 표시한 것이다. 사과가 시기적으로도 늦었고, 진정성도 결여됐다. 그리고 진짜 막말을 한 대한체육회 임원 A씨는 아직까지도 사과는커녕, 머리카락 보일까봐 이기흥 회장 뒤에 꽁꽁 숨어 있다. 회장도 회장이고, 그를 보좌하는 사람들 참 못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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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그 장면. 박영선 의원(왼쪽 두 번째)이 '현장'에서 윤성빈의 금메달을 축하하고 있다. [사진=osen]


# 평창의 사과3
국회의원 박영선은 평창의 사과를 ‘개그’로 승화했다. 서울시장을 하겠다고 나선 그는 보다 많은 국민들에게 얼굴을 알리려는 성실함에 설날(16일)도 잊고, 스켈레톤 경기장의 통제구역으로 들어갔다. 일면식도 없는 윤성빈의 금메달을 자기 일처럼 축하했고, 얼굴비추기 목표를 달성함과 동시에 정말이지 많은 국민들에게 진정성 넘치는 욕을 먹었다. 처음엔 SNS에 자랑했지만,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이내 설익은 사과를 했다. 동시에 ‘특혜응원’이 아니라 펠리아니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 회장의 초청이었다는 평창조직위원회의 보도자료가 나오면서 사건은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런데 개그의 절정은 19일 폭발했다. 펠리아니 회장이 한 방송을 통해 “그런 적이 없다. 박영선 의원이 누구인지도 모른다”고 말한 것이다. 조직위의 해명자료까지 특혜로 의심 받았고, 박영선 의원의 사과는 웃음거리가 됐다. 여기에 부록으로 팀 코리아 롱패딩을 입은 것까지 문제가 됐으니, 정말이지 어려운 일을 해냈다.

# 평창의 사과4
거짓이 거짓을 낳는다고, 평창의 그릇된 사과는 진화했다. 이번엔 주변인이 아니라 선수와 지도자가 주연으로 등장했다. 19일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경기에서 한국선수들(김보름 박지우 노선영)은 ‘팀 스피릿’을 제대로 부정했다. 3명 중 가장 늦은 선수의 기록을 측정하는 이 경기에서 김보름과 박지우는 노선영을 멀찌감치 따돌리는 진기한 장면을 연출했다. 이것도 충격인데, 경기 직후 ‘왕따’ 분위기를 풍기는 인터뷰 장면을 보여줬다. 이런 것까지 청와대 청원을 하는 광기도 마땅치 않지만, 어쨌든 큰 공분을 샀다. 그리고 20일에는 빙상게임이 아닌 진실게임까지 선보였다. 오전에 백철기 감독과 김보름이 기자회견을 열고 사과인양 해명을 했는데, 오후에 노선영이 방송인터뷰를 통해 사실과 다르다며 반박한 것이다. 일부러 웃기려고 하는 예능프로 같다.

# 뱀발
따지고보면 한국에서 이런 사과들은 당연할 수도 있다. 비슷한 시기 ‘미투 운동’과 관련해 연극계 대부가 기자회견을 열고 사과를 했는데, 사과를 받는 피해자들이 “더 화가 난다”며 분개하고 있지 않은가?이러니 평창의 사과들은 어쩌면 한국사회의 정확한 현주소인지도 모른다. 끝으로 박영선 의원에게 이 참에 공개질문 하나 던진다. 당신의 학력에는 큰 관심이 없지만, 당신의 스포츠 사랑을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될 듯해서이다. 박영선 의원은 학창시절 배구를 했다는 소문이 나자, 이를 부정한 적이 있다. 이건 믿겠다. 그리고 경희대 지리학과를 졸업한 것도 확인된 사실이다. 그런데 혹시 입학은 체육학과로 하지 않았는지? 배구특기자가 아니라, 예체능계열로 당당히 시험을 쳐서 말이다. 체육계에서 소문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부디 정치부 기자가 아니라 ‘체육’기자의 질문이라고 무시하지 마시길. 정말 궁금해서 물을 뿐이다. 입학자료를 공개하면 쉽게 의혹이 해소될 문제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유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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