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연예기획사 설립기준 완화] ③‘대중문화산업법’ 생긴 지 5년, 앞으로 과제는?
뉴스| 2018-03-08 11:15
국내 연예인 연습생만 100만 명이 넘었다. TV엔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아이돌이 등장한다. 이중 스타가 되는 이는 손에 꼽힐 정도로 적다. 로또 당첨 확률과 맞먹는다. 그렇다고 스타가 되는 게 로또처럼 단편적 행위로 이룰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개인 능력뿐 아니라 타인의 깊숙한 개입을 필요로 한다. 연예기획사가 바로 이러한 역할을 한다. 소속사는 한 명의 스타를 탄생시키기 위해 세세한 부분부터 밀도 높게 관여한다. 여러 교육뿐 아니라 그들의 사생활과 법적인 부분까지 관리한다. 즉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거다. 그런데 최근 연예기획사 설립 문턱이 낮아졌다. 기존 4년 이상 종사 경력자에서 2년 이상으로 줄어든 것이다. 또한 업계 종사자가 아니어도 연예기획사를 차릴 수 있게 됐다. 이를 두고 벌써부터 연예기획사의 난립과 활성화에 대한 여론이 분분하다. 업계는 이 같은 변화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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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한수진 기자] 수년 전 연예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사건이 하나 있었다. 바로 ‘신인배우 고(故) 장자연의 죽음’이었다. 이 여배우가 생을 마감하기 전 남긴 편지에는 연예계의 추악한 민낯이 고스란히 기록됐다. 이 일로 연예계뿐 아니라 정계까지 흔들렸다. 이 사건으로 마련된 법안이 바로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이다.
2009년 3월 여배우 장자연의 죽음으로 연예계에 자정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에 정부와 정치권은 일정 요건 이상을 갖춘 연예기획사의 활동만을 허용하는 등록제를 추진했다. 물론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기존 연예기획사들의 기득권만 키울 것이라는 우려였다. 그럼에도 2014년 일명 ‘장자연 법’이라 불렸던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이 제정됐다.

‘이 법은 대중문화예술산업의 기반을 조성하고 관련 사업자, 대중문화예술인 등에 관한 사항을 정함으로써 건전한 대중문화를 확립하고 국민의 문화적 삶의 질 향상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 제1장 총칙 제1조(목적)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은 ‘종사 경력 4년 이상 등록’ 제한 마련을 비롯해 대중문화예술인(연예인)의 성폭력 등 인권 보호에 관한 조항과, 미성년 배우들의 학습권·휴식권·수면권을 보장하는 제도를 마련했다. 또한 표준계약서 보급, 정기적 산업 실태 조사 등에 관한 내용도 담았다. 현재 기준 2357개의 회사가 등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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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 두 차례 개정, 실효성 있나 보니…

2014년 제정된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은 두 차례 개정됐다. 지난해 5월 실행된 개정안은 대중문화예술기획업의 등록 이후 대중문화예술기획업자가 최초로 받는 교육의 이수시간을 연 10시간에서 연 6시간으로 변경하는 내용이었다. 대중문화예술기획업자의 업무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였다.

하지만 한 연예계 관계자는 해당 교육 이수를 대표가 아닌 직원이 하는 경우가 다반사일 뿐더러 출석율도 낮다고 설명했다. 당초 법 제정 당시 일부 행정지도가 실효성을 띨 수 있느냐는 지적이 한계로 드러난 부분이다.

더욱 충격적인 건 명의대여다. ‘종사 경력 4년’이 필수 조건인 탓에 명의를 대여해 회사를 설립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명의대여로 연예기획사를 설립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의 한계가 드러나는 지점”이라고 말했다.

최근 통과된 개정안은 이 같은 문제점을 일정 부분을 해소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특정교육만 받아도 연예기획사를 설립할 수 있게 됐으니 명의를 대여하는 일이 자연스레 줄어들 전망이다. 하지만 이 부분 역시 우려를 표하는 이들이 상당하다.

수년간 매니저 생활을 한 뒤 연예기획사를 차린 A씨는 “오래전부터 매니저 생활을 했다. 업계 순리를 알기에 나름 철저한 준비가 가능했다. 연예기획사는 자본만 있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한국연예매니지먼트협회(이하 연매협)가 창단된 이유도 우후죽순으로 쉽게 관련업에 접근하는 이들이 생겨 뜻을 모아 설립한 것”이라며 “해당 개정안이 잘만 정착되면 좋겠지만 진통이 있을 거다. 공부만으로 되는 사업은 아니다. 아마 업계 난립에 가까운 상황이 올 것 같지만 업계에서도 구체적인 대책이 나온 건 아니다. 연매협도 일단 지켜보자는 입장이다”고 밝혔다.

■ “내부 규제도 없는 마당에…” 지적 나선 관계자들

20년이 넘는 경력을 소유한 한 관계자는 이번 개정안에 개탄을 감추지 못했다. 현재 문체부에서 진행하는 교육조차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 않은 마당에 엉뚱한 부분에서 법적 완화가 이뤄졌다는 거다. 이 관계자는 “현재 문체부에서 진행하는 연예기획사 교육도 50% 출석률도 못 미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아무런 규제가 없다. 영업정지 등의 핸디캡을 주는 규제가 없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반복된다. 이미 실행하는 것들도 제대로 이행되지 않은 마당에 신입 창업자까지 받으면 업계 질서가 얼마나 혼란스러울지 우려스럽다”고 토로했다.

뿐만 아니다. 불법 영업자에 대한 신고 조치도 마땅히 이뤄질 곳이 없다고 한다. 관계자는 “규제와 관리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현재 2000개가 넘는 연예기획사가 운영 중인데 이중 실제 운영되는 회사는 1000개 정도에 불과하다. 대중문화에 대한 세계적 관심은 커지고 있는데 나라에서 지원해주는 부분은 거의 없다. 관련 부분에 대해서도 정부 측과 상의하려고 하면 계속해서 담당자가 바뀌어 결국 흐지부지 된다”고 설명했다.

관계자들은 하나 같이 실효성에 대해 지적했다.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의 시작은 한 연예인의 죽음에서 비롯됐다. 연예기획사 진입의 문턱을 높여 이 같은 사례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각성에서 나온 법안이다. 이후 관련법이 제정되고 사건은 잊혀졌다. 그러나 최근 불거진 ‘문화계 미투 운동’을 보고 있자니 그때의 악몽이 겹쳐진다. 약자인 여배우들은 마땅히 보호받지 못하고 성폭력으로부터 방치됐다. 이런 상황에서 신규 사업자까지 몰리게 생겼으니 기존 업계 종사자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 상태다.

업계의 정통한 관계자는 “연예계의 풍토를 바로잡는 게 시급하다. 개정안이 더 많은 이들을 업계에 끌어들일 것임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피해를 입는 친구들이 더 늘어날 수도 있는데 법적 제재도 해결책이 아닌 게 드러난 만큼 구성원들의 인식 전환이 가장 필요한 부분이다. 그렇기 위해선 정부의 폭넓은 지원이 필요하다. 체계적 교육과 전문가의 관리가 시급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cultu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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