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려서] 여중생, 판사가 되기까지… ‘미스 함무라비’ 고아라의 성장기
기사입력 2018-06-12 11:01 작게 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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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고아라의 성장(사진=KBS, tvN, JTBC)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손예지 기자] 어린 나이에 데뷔한 배우의 필모그래피는 곧 그의 성장 비디오와도 같다. 14살에 데뷔한 배우 고아라도 마찬가지다. 그는 KBS ‘성장 드라마 반올림#(이하 반올림, 2003)’으로 연기를 시작했다. 자신과 비슷한 나이의 주인공 이옥림을 맡았다. 인형 같은 얼굴로 엉뚱하고 발랄한 캐릭터를 능청스럽게 연기하는 중학생 배우는 당시 청소년 시청자들 사이에 큰 인기를 얻었다. 고아라가 ‘반올림’ 시즌2까지 출연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덕분에 고아라와 옥림은 약 3년간 함께 나이 먹으며 성장했다. 그렇게, ‘반올림’은 고아라의 데뷔작이자 대표작이 됐다.

무명 시절 없이 출발한 고아라는 이후 출연하는 드라마와 영화마다 주연을 꿰찼다. 그러나 데뷔작의 인상이 워낙 강렬했던 탓일까? 좀처럼 ‘반올림’과 옥림이라는 벽을 넘지 못했다. 작품 자체의 성적이 저조했던 탓도 있지만, 고아라가 선택했거나 선택받은 캐릭터가 대부분 비슷한 이미지에 머물렀다는 점도 아쉬움을 남겼다. 스캔들의 여왕으로 불리는 신인배우(SBS ‘눈꽃’ 유다미 役) 당차고 자유분방한 성격의 천재 발레리나(영화 ‘스바루’ 리즈 박 役) 열정으로 가득 찬 초보 축구 에이전트(MBC ‘맨땅의 헤딩’ 강혜빈 役) 등이다. 이 같은 캐릭터들은 고아라에게서 예쁜 외모 이상의 것을 끌어내지 못했다.
최근 JTBC ‘아는 형님’에 출연한 고아라는 당시에 대해 “소속사에서 ‘인형처럼 살라’고 했다”고 떠올렸다. 신비주의를 지키며 작품으로만 대중과 소통하자는 전략이었던 모양인데, 고아라의 ‘인형’ 혹은 ‘요정’ 이미지만 굳어졌다. 외적인 요소가 주목받으면서 연기력에 대한 대중의 기대치는 자연스레 낮아졌다.

이런 가운데 고아라에게 돌파구가 되어 준 작품이 2013년 방송한 tvN ‘응답하라 1994’다. 캐스팅 발표 당시 기대보다 우려가 컸다. 전작인 ‘응답하라 1997’이 에이핑크 정은지(성시원 역)의 소탈한 연기로 시청자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며 호응 얻은 데 비해, ‘예쁜 배우’라는 고아라의 기존 이미지가 선입견으로 작용한 것.

고아라 표 성나정이 시청자들에게 더욱 극적인 반응을 얻은 이유다. ‘응답하라 1994’에서 고아라는 전혀 인형 같지 않았다. 성나정은 극 중 성동일(성동일)의 ‘개딸’이라 불릴 만큼 망나니 성격을 자랑하는 인물. 이를 위해 고아라는 주먹만 한 얼굴에 볼살을 찌우고 걸진 사투리를 구사하며, 몸 사리지 않는 열연을 보여줬다. 그제야 고아라가 배우 아닌, 캐릭터로 보이기 시작했다. 비로소 옥림이의 그늘에서 벗어나게 됐다. ‘반올림’ 이후 꼬박 10년 만의 성과였다.

고아라는 20대 연기자 중 비교적 공백기가 길지 않은 배우다. ‘응답하라 1994’ 종영 후, 인기에 안주하지 않고 곧바로 차기작에 돌입했다. SBS ‘너희들은 포위됐다’(2014) KBS ‘화랑’(2016~2017) OCN ‘블랙’(2017)과 영화 ‘조선마술사’(2015)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2016) 등으로 안방극장과 스크린을 쉴 새 없이 넘나들었다. 크게 흥행한 작품은 없지만, 한번 이미지 변신에 성공한 것에 힘입은 듯 더 폭넓어진 캐릭터 소화력을 보여줘 호평을 들었다. 그 사이에 소속사를 옮기며 연기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기도 했다. 13년간 몸담은 SM엔터테인먼트와 전속계약 만료 후, 지난해 정우성과 이정재가 소속된 배우 전문 매니지먼트 아티스트컴퍼니로 영입된 것. 당시 아티스트컴퍼니는 “배우로서 더 나아가고자 하는 고아라의 열정과 열망에 힘을 보태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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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JTBC '미스 함무라비' 방송화면)


새로운 환경에서 초심을 다지며 출발한 지 약 1년, 고아라는 다시 한번 자신과 똑 닮은 캐릭터를 만났다. 현재 인기리에 방영 중인 JTBC ‘미스 함무라비’ 속 박차오름이다. 차오름은 서울중앙지법 민사 제44부 좌 배석 판사로, 초임이다. 부잣집 딸로 자라다가 아버지의 사업 부도로 위기를 맞았다. 가정환경이 변화하며 소심하고 내성적이었던 성격도 바뀌었다. 정의감이 끓어오르는 이상주의자가 된 것. 차오름은 지하철 성추행범의 급소를 가격하거나 여성 판사의 복장을 규제하는 법원에 미니스커트를 입고 출근하며 시청자들에게 통쾌함을 선사했다. 고아라 특유의 능청스러운 연기가 빛을 발한 지점이다. 또 약자의 말에 귀 기울이고 강자 앞에서 깨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차오름의 따뜻하고 단단한 속도 제대로 표현하고 있다.

무엇보다 차오름이 시청자들의 지지를 받는 이유는 따로 있다. 차오름의 정의가 언제나 완벽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선의의 행동이 때로는 실수를 낳고, 실패의 벽에 부딪히기도 한다. 지난 6회에서 그려진 전체 판사회의 에피소드가 대표적인 예다. 차오름은 동료 판사 홍지은(차수연)이 상사 성공충(차순배)의 과도한 업무 지시로 유산까지 한 데 분개했다. 이에 성공충을 공개 비판하고 업무 제도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전체 판사 회의를 열고자 분투했다. 그러나 정작 병원에 입원한 홍지은은 자신의 이야기가 법원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것에 대한 부담감을 토로했다. 차오름의 직속 상사 한세상(성동일) 부장도 “난리 치기 전에 성 부장과 이야기는 해 봤냐. 문제 제기하기 전에 부장인 나하고도 얘기 한 번 했다. 자네들이 저지른 일은 순서가 틀렸다”고 지적했다.

우여곡절 끝에 찾아온 전체 판사회의 당일, 차오름을 꾸짖었던 한세상이 동료 부장판사들을 데리고 나타났다. 차오름은 감격했지만, 결국 과반수가 참여하지 않아 회의는 열리지 못했다. 이때 차오름은 “존경하는 여성 대법관님이 있다. 언제나 약자들 편에 있던 분이다. 그분이 퇴임할 때 히말라야를 오른 어느 등산가의 얘기를 인용했다. ‘그는 자신과 싸워서 이겨낸 만큼만 나아갈 수 있었고, 이길 수 없을 땐 울면서 철수했다’ 숫자가 조금 모자라 회의는 열리지 못했지만, 우리는 웃으면서 철수할 수 있다. 이미 이렇게 많은 분이 함께 첫발을 내디뎠으니까”라며 웃음 지었다. 이렇듯 ‘미스 함무라비’는 이상과 현실의 딜레마에서 차오름이 성장하는 과정을 담는다.

실패를 거듭하고 때로는 현실과 타협하며 옳은 길을 찾아가는 차오름의 모습은 배우 고아라의 성장기와도 닮았다. 데뷔작부터 흥행에 성공하며 화려하게 출발했지만, 이후 많은 실패도 맛봤다. 그러나 꺾이지 않고 제 길을 걸어온 덕분에 새로운 대표작과 인생 캐릭터들을 만났고, 오늘날 그 속이 알찬 배우 고아라가 됐다. 올해 데뷔 15주년, 벌써 인생의 절반을 배우로 산 고아라의 미래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cultu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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