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몰카의 늪] ②파파라치·휴대폰 촬영·탐사보도 VS 몰카… 어디까지 문제일까?
뉴스| 2018-06-14 11:49
“몰카는 여성의 삶을 파괴하는 악질 범죄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14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이같이 말했다. 당시 문 대통령은 당시 몰카 범죄를 중대한 위법으로 다루도록 수사기관들의 인식 전환을 촉구했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났다. 그 사이 음원차트 1위를 달리던 남성 가수가 몰카 범죄 혐의로 처벌받은 전력이 뒤늦게 드러나고,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한다는 ‘엄마 몰카’ ‘선생님 몰카’ 등이 논란이 되며 충격을 안겼다. 나의 무방비한 모습이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촬영되고 있을지 모른다는 공포가, 오늘도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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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MBC)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손예지 기자] 지난해 9월 26일 정부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 방지 종합대책’을 발표하며 “‘몰카’ 대신 ‘불법촬영’이란 용어를 사용해 달라”고 말했다. 몰카라는 단어가 범죄의식을 약화한다는 이유에서다.

‘몰카’는 몰래카메라를 줄인 말로, 실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4조(카메라 등 이용 촬영죄)에서 말하는 불법촬영 외에도 돌발 상황극으로 상대를 놀라게 하는 이벤트 등 유희적 의미로 두루 쓰인다.

후자의 경우 1990년대 초 방송한 MBC ‘이경규의 몰래카메라’가 대표적인 예다. ‘이경규의 몰래카메라’는 연예인이 예상치 못한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담는 프로그램으로 방영 당시 큰 인기를 끌었다. 이후 현재까지도 이 같은 포맷이 방송의 주요 콘텐츠나 소재로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상대의 모습을 동의 없이 몰래 촬영하는 행위로 인한 범죄 피해가 심각한 이때, 이를 다루는 대중문화계의 태도도 더욱 진지하고 세심해질 필요가 있다. 이에 최근 미디어에서 ‘몰카’가 그려진 방식과 이로 인한 논란들을 짚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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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KBS2)


■ 경호원이 경호대상 몰래 촬영… 기자에 판매까지?

지난 4일 방송한 KBS2 월화드라마 ‘너도 인간이니?’ 1회의 한 장면이다. 경호원 강소봉(공승연)은 경호대상이자 재벌 3세 남신(서강준)의 사생활을 몰래 촬영해 기자에게 판매하는 것으로 부수입을 얻었다. 이를 알아차린 남신은 그 자리에서 강소봉의 얼굴을 가격하고 시계 모양의 소형 카메라를 부쉈다.

몰카는 물론, 재벌의 부하직원 폭행 등 최근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문제들이 단순히 주인공들의 관계 설정을 위해 소비됐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겠다. 다만,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이 장면은 극 중 남신이 소봉을 해고함으로써 몰카가 잘못된 행위임을 분명히 했다”며 이를 미화하려는 의도는 없다고 분석했다.

오히려 소봉처럼 연예인이나 유명인의 사진을 몰래 찍어 판매하는 ‘파파라치’가 심각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정덕현 평론가는 “해외에서는 파파라치를 불법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언론들이 ‘대중의 알 권리’를 주장하며 파파라치 행위에 앞장서니 소 제기를 못하는 것”이라며 “진짜 대중이 알기를 원하는 사안인지 판단해야 한다. 굳이 알지 않아도 될 유명인의 사생활을 몰래 촬영해 보도하는 것은 언론의 도의적인 책임에 어긋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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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KBS2)



■ 짝사랑 몰래 찍다 걸렸는데… “지우기 싫어!”


지난 3월 24일 방송한 KBS2 주말드라마 ‘같이 살래요’ 3회의 한 장면이다. 연다연(박세완)은 고교 시절부터 짝사랑했던 박재형(여회현)의 모습을 휴대전화 동영상으로 몰래 촬영했다. 그러나 재형은 동창인 다연을 못 알아보는 상황. 재형이 영상을 삭제하라고 요구하자 다연은 “못 지운다”며 도망쳤다. 결국, 다연을 붙잡아 영상을 확인한 재형은 화면 속 자신의 뒤로 상사가 부하직원을 폭행하는 장면이 담긴 것을 확인했다. 재형은 다연이 폭행 사건의 증거 영상을 촬영했다고 생각해 되레 사과했다.

다연이 재형의 특정 신체 부위나 성적 수치심을 유발할 만한 모습을 촬영한 것은 아니지만, ‘짝사랑’을 이유로 동의 없이 촬영을 감행하고 삭제를 거부한 점은 찝찝함을 남긴다. 아울러 화면에 우연히 폭행 사건의 정황이 함께 포착되며 순식간에 ‘고발 영상’으로 둔갑하는 것도 미화 논란의 소지가 충분하다.

정덕현 평론가는 “현대 사회는 언제 어디서나 휴대전화로 사진 혹은 영상을 촬영하는 것에 익숙하다. 몰카에 대한 감수성이 둔감해진 상태다. 이런 가운데 방송들이 몰카 설정을 쉽게 내보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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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MBC)


■ “동의 없는 촬영은 몰카” VS “공익을 위한 탐사보도”

지난달 13일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자신의 SNS에 “시민·당원·지지자들의 말과 의견은 존중받아야 할 자유이지만, 공적인 인물이 지켜야 할 선은 다르다. 가족 간 분쟁 다툼 중 일방이 몰래 녹음해 편집한 파일을 왜 듣는가. 몰카 찍은 범인 비판해야지, 왜 찍힌 피해자를 욕하냐”는 내용의 글을 올려 논란에 휩싸였다. 당시 이재명 경기도지사 후보가 과거 친형 및 형수와 통화한 녹음 파일이 온라인에 공개된 데 대해 이를 ‘몰카’라고 표현한 것.

이에 앞서 지난 4월에는 대한불교조계종이 총무원장 설정 스님의 3대 의혹을 다룬 MBC ‘PD수첩’의 취재방식을 ‘몰카’로 규정하고 공개 비판한 일이 있었다. 당시 조계종 기획실장 금산스님은 “‘PD수첩’이 종교계 최고 수장인 총무원장 스님에 대해 언론으로서 최소한의 예의도 갖추지 않고, 연락 없이 찾아와 몰래카메라 형식의 촬영을 진행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PD수첩’ 제작진은 “설정스님이 취재진을 만나주지 않아 직접 찾아간 것”이라고 반박했다.

‘몰카’와 ‘탐사 보도’를 구분하는 기준은 ‘공익’이다. 그러나 ‘공익’에 대한 입장의 차이가 발생하며 위와 같은 논란이 일기도 한다. 이에 대해 한 탐사보도 프로그램 관계자는 “접근이 차단된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 위장 및 잡입 취재 등의 방식이 필요할 때가 있다. 다만 이 과정에서 ‘공익 목적’으로도 용인될 수 없을 만큼 무리한 방식을 강행해선 안 된다. 제작진과 취재진도 인지하는 부분이며, 이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주의를 기울이려고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cultu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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