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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잇 수다] '김비서가 왜 그럴까', 전복된 신데렐라 로맨스가 선사하는 유쾌함
뉴스| 2018-07-12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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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tvN '김비서가 왜그럴까' 포스터)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노윤정 기자] “로맨스가 진행되면서 두 사람의 위치가 변하는 과정을 보는 재미가 있을 것”

tvN ‘김비서가 왜 그럴까’의 연출을 맡은 박준화 PD가 제작발표회에서 말한 이 작품의 관전 포인트다. 그 말처럼 ‘김비서가 왜 그럴까’는 뻔한 신데렐라 스토리 속 두 주인공의 관계를 반전시키며 색다른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김비서가 왜 그럴까’는 재벌인 남성과 서민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전형적인 신데렐라 로맨스다. 이영준(박서준)은 한 그룹의 부회장으로 재력과 사회적 명성은 물론 잘생긴 외모와 똑똑한 머리까지 갖춘 완벽한 캐릭터다. 이영준의 비서 김미소(박민영)는 경제적으로 풍족하진 않지만 밝고 당찬 성격을 가지고 있고 주어진 일에 성실하다. 까칠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다정한 재벌 남성과 어려운 상황에서도 씩씩하게 살아가는 캔디형 여성은 익숙하다 못해 식상하게 느껴지는 설정이다.

하지만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구도를 뒤집어놓는 전개가 색다른 유쾌함을 준다. 이영준과 김미소는 공적으로 부회장과 비서의 관계다. 이 설정은 극 안에 단순한 신데렐라 스토리 이상의 기울어진 권력 관계를 형성한다. 이영준과 김미소의 사이는 사내 직책에 따른 상하관계가 확실하고, 권력 관계가 명확하다. 여기까지만 보면 ‘김비서가 왜 그럴까’ 역시 여타 수많은 로맨틱코미디에서 보여줬던 전개를 답습할 듯하다. 하지만 극은 김미소가 이영준에게 사직서를 제출하면서 시작된다. 처음부터 두 사람 사이에 명확했던 ‘갑’과 ‘을’의 관계가 흔들리는 것이다.

김미소는 집안의 빚을 모두 갚은 뒤 ‘김비서’가 아닌 ‘김미소’로 살기 위해 홀가분한 마음으로 회사를 떠나려 한다. 이에 이영준은 연봉 인상을 제시하고 자신이 직접 연애를 해주겠다는 얼토당토않은 말까지 해가며 김미소를 잡으려 한다. 하지만 이젠 평범한 사람을 만나서 평범하게 사랑하며 살 거라고 똑 부러지게 말하는 김미소를 잡기란 쉽지 않다. 보통 신데렐라 로맨스를 그린 드라마에서 여성은 남성과 그의 배경, 주변 상황에 휘둘리나 김미소는 다르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고 행동하기에 주체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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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tvN '김비서가 왜 그럴까')


이영준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처음 이영준을 밀어낼 때도 “부회장님, 내 스타일 아니다”고 분명하게 의사 표시를 하더니, 연인 관계가 된 후에는 “앞으로도 우린 행복할 거다. 계속 함께일 거니까”라고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며 상대에게 확신을 준다. 그렇다고 감정에만 휘둘리진 않는다. 오히려 이영준이 김미소를 위하기 위해 공과 사의 선을 지키지 못하자 “앞으로는 그러지 말라. 여기는 일하는 곳이고 지금은 업무 시간이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김미소는 이영준이나 그 주변에 휩쓸리지 않고 주체적으로 상대와 함께 관계를 발전시킨다.

자연스럽게 로맨스가 진전될수록 김미소와 이영준의 수직적 관계는 전복되고 수평적 관계로 나아간다. 이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건 바로 두 사람의 보폭이다. 9년 동안 김미소는 이영준의 뒤에서 그를 따랐다. 이영준의 빠른 걸음에 맞춘 건 언제나 김미소였고 이영준은 그 사실을 인지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동안 김미소가 맞춰왔던 두 사람의 보폭을 이젠 이영준도 함께 맞추기 위해 노력한다. 평생 누군가의 서포트를 받으며 살아온 이영준에게 있어선 큰 변화다. 이영준이 걸을 때 김미소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모습은 그래서 더 유의미하다.

물론 여전히 ‘김비서가 왜 그럴까’는 클리셰가 가득한 로맨틱코미디다. 그래도 발전했다고 느껴지는 건 여성 주인공이 능력적인 면에서 남성 주인공만큼 이상화 돼 있으며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선택하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지며 살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여성이 남성의 보호와 도움을 받아야 하는 존재처럼 그려지는 부분이 없다고 말할 순 없으나, 그래도 조금은 벗어난 모양새다.

‘김비서가 왜 그럴까’는 11일 방송분에서 8.7%(닐슨코리아 유료플랫폼 전국 가구 기준)로 자체 최고 시청률을 또 다시 경신했다. 비슷한 시간대 방영한 지상파 드라마 시청률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굿데이터코퍼레이션 TV 화제성 지수 기준 드라마 부문 1위 자리도 5주 연속 내주지 않고 있다. 진부한 재벌 2세, 신데렐라 스토리 속 ‘김비서가 왜 그럴까’만이 가진 특별함이 시청자들에게 제대로 통했다.

cultu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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