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씨네;리뷰] ‘델마’ 욕망과 증오를 대하는 소녀의 성장기
뉴스| 2018-08-16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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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델마' 스틸컷 (사진=그린나래미디어)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김동민 기자] 흔히 ‘간질’이라고 불리는 뇌전증은 미스터리한 병이다. 뇌전증 환자는 종종 알 수 없는 이유로 뇌가 통제를 벗어나 강렬한 뇌파를 뿜어내면서 발작을 일으킨다. 당사자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돌출행동과 심한 경련을 일으키는 뇌전증 증상은 일반인에게 있어 충격적이고 때론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뇌전증의 순우리말 ‘지랄병’에 담긴 속뜻도, 뇌전증을 악마에 빙의된 것이라고 여겼던 서양 문화도 일종의 ‘미지에 대한 공포’로 볼 수 있는 이유다.

영화 ‘델마’의 주인공인 20대 대학생 델마(에일리 하보)는 심인성 뇌전증 환자다. 그는 특별한 신체적 문제가 없는데도 정신적, 심리적 요인에 의해 뇌전증을 겪는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 온 그는 부모를 떠나 대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던 중 뇌전증이 재발한다. 이 와중 새 친구 야나(카야 윌킨스)를 사귀게 되고, 일탈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 온 그는 야나를 통해 점점 새로운 세상을 배워간다. 하지만 발작과 악몽에 시달리던 델마는 자신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현상들에 고통스러워하고, 야나까지 여기에 휘말리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위기를 맞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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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델마' 스틸컷 (사진=그린나래미디어)



‘델마’는 뇌전증을 소재로 주인공 델마의 정체성을 줄곧 희미하고도 섬뜩하게 그려 나간다. 조용하고 평범한 대학생 델마 앞에 미스터리한 현상들은 특유의 미장셴 덕택에 줄곧 차갑고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창밖에서 새떼가 날아들거나 뱀이 그의 몸을 휘감는 등의 장면들은 현실과 판타지의 모호한 경계 사이에서 무거운 긴장감을 선사한다. 푸르스름한 화면 톤과 거대한 풍경 속 작은 인물을 담아내는 롱 쇼트에서는 스웨덴 영화 ‘렛미인’(2008)과도 닮은 북유럽 특유의 한기가 느껴지고, 자신조차 알 수 없는 스스로의 능력을 두려워하는 델마에게서는 일견 ‘마녀’(2018) 속 김다미의 얼굴까지 비친다.

이러한 장치와 설정들을 관통하는 영화의 가장 섬뜩한 지점은 다름아닌 증오와 욕망이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외부와 단절된 삶을 살아 온 델마는 순종적인 한 가정의 딸이자 말 없는 대학생이지만, 야니와 가까워지면서 사회적 인간이 되어 간다. 영화는 이 과정을 델마의 뇌전증과 나란히 그려가면서 그가 타자를 욕망하고 또는 증오하는 지점들을 날카롭게 포착한다. 머리 속에서 고개를 든 델마의 일시적 욕망이 그대로 현실화되는 장면 장면들은 그에게 있어 일종의 ‘재앙’이 되고, 델마는 자신을 옥죄어 온 종교와 부모에게서 비로소 해방된다. 여기에는 술과 마약, 동성애로 대변되는 ‘비행’이 큰 줄기를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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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델마' 스틸컷 (사진=그린나래미디어)



결국 영화 ‘델마’는 그 자체로 소녀의 성장을 다룬 거대한 은유와 다름없는 작품이다. 여기에서 극 중 델마의 눈 앞에 펼쳐지는 기이한 현상들이 정말 그가 ‘일으킨 것’인가의 문제는 되레 중요하지 않다. 영화 후반부 드러나는 충격적 전말이 현실인지 또는 델마의 공상인지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욕망하는 대상을 취하고 증오하는 대상을 버림으로써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된 여성이 비로소 스스로 독립적 개인으로 우뚝 선 순간. 어쩌면 ‘델마’가 방점을 찍는 지점은 다만 이 순간일지 모른다.
cultu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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