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그늘집에서] 무엇이 아리야 주타누간을 강하게 만들었나?
뉴스| 2016-08-30 00:30
이미지중앙

불행을 딛고 세계 여자골프 강호로 우뚝 선 아리야 주타누간. [사진=AP뉴시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이강래 기자] 태국의 아리야 주타누간이 또 우승했다. ‘불운의 아이콘’으로 측은함을 샀던 게 엊그제 같은데 불과 몇 달 사이 완전히 다른 선수가 됐다. 29일 끝난 캐나디언 퍼시픽 오픈에선 우승에 대한 심리적 압박감을 전혀 느끼지 않는 모습이었다. 김세영과 전인지라는 만만찮은 선수들이 추격전을 펼쳤으나 2타차 선두로 시작한 최종라운드를 4타차 우승으로 마무리했다.

주타누간은 지난 3월 시즌 첫 메이저 대회인 ANA 인스퍼레이션에서 마지막 날 3홀을 남겨두고 2타차 선두를 달렸다. LPGA투어 첫 승을 메이저 우승으로 장식하는 듯했다. 하지만 16~18번홀에서 3연속 보기를 범해 리디아 고에게 역전패했다. 2013년엔 태국 홈에서 열린 혼다 LPGA 타일랜드에선 2타차 선두로 마지막 18번홀을 맞았으나 트리플 보기를 범해 박인비에게 역전패했다.

뼈아픈 역전패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많은 전문가들이 주타누간의 앞날에 먹구름이 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런 시련은 상처가 아닌 예방주사 역할을 했다. 주타누간은 지난 5월 요코하마 클래식과 킹스밀 챔피언십, 볼빅 챔피언십에서 3연승을 거뒀다. 첫 우승 이후 3연승은 LPGA투어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3연승 역시 2013년 박인비 이후 3년 만의 사건(?)이었다.

불행을 행복으로 바꿔준 이는 스윙 코치 게리 길크리스트였다. 남아공 국가대표 출신인 길크리스트는 청야니, 펑샨샨을 지도 중이며 미셸 위의 초창기 코치이기도 했다. 김송이와 김인경도 그의 지도를 받았으며, 최근엔 폴라 크리머도 가르쳤다. 주타누간은 올시즌 개막을 앞두고 길크리스트와 손을 잡았다.

길크리스트는 주타누간의 문제를 ‘멘탈’로 보고 ‘스마일’이란 처방을 내놨다. 주타누간은 웃으면 몸의 긴장이 풀리는 특이체질이다. 길크리스트는 “경기 중 긴장되면 웃으라”고 지시했다. 주타누간의 프리 샷 루틴을 유심히 살펴 보면 일단 깊게 호흡을 한 뒤 미소를 지은 후 어드레스에 들어간다. 이런 처방은 5월부터 위력을 발휘했고 올해 LPGA 선수중 가장 많은 5승을 수확하는 밑거름이 됐다.

주타누간은 방콕의 로즈가든 골프코스에서 프로숍을 운영하는 부모를 뒀다. 부친 솜분은 주타누간이 5살 때 골프채를 쥐어줬다. 바로 위 언니인 모리야 주타누간과 함께 였다. 4명의 이복 형제가 있었으나 부모는 두 딸의 골프에 ‘올인’했다. 일찌감치 미국으로 골프 유학을 보냈고 막내 딸은 주니어 무대에서 강호로 착실하게 성장했다.

2011년과 2012년 2년 연속 롤렉스 주니어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으며 2012년 AJGA 올해의 여자선수상을 받았다. 2011년엔 최고 권위의 대회인 US걸스주니어챔피언십에서 우승했으며, 2012년 엔 캐나디언 우먼스 아마추어를 제패했다, 그리고 2011~2012년 주니어 PGA챔피언십을 2연패했다. 길크리시트가 주타누간에 대해 “기술적인 면에선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진단했던 이유는 주니어 시절부터 갈고 닦은 탄탄한 기본기 때문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주타누간이 요코하마 타이어 클래식과 킹스밀 챔피언십에선 1타차의 불안한 우승을 거뒀으나 볼빅 챔피언십에선 최종일 버디 9개를 잡아내며 5타차 완승을 거뒀다는 점이다. 주타누간은 한달전 열린 브리티시여자오픈에선 3타차로 우승했고 이번 캐나디언 퍼시픽 오픈은 4타차로 정상에 올랐다. 우승하는 법을 터득하며 ‘압도적 골프’를 시작한 것이다.

주타누간은 루키 시즌이던 지난해 10개 대회 연속 예선탈락이란 깊은 슬럼프에 빠진 적이 있다. 당시 상황에 대해 "경기하기가 두렵기 시작했다. 또 컷오프될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무서웠다"고 털어놨다. 2013년엔 웨그먼스 LPGA챔피언십 연습라운드 도중 언니인 모리야 주타누간과 장난치다 미끄러져 어깨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시련은 사람을 성장시킨다’는 말은 주타누간을 통해 다시 한 번 각인되고 있다. 부상과 역전패로 상처 투성이였던 어린 영혼이 어느덧 세계 여자골프 일인자 자리를 다투는 거물(巨物)로 성장했으니 말이다.



sports@heraldcorp.com
랭킹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