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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훈의 빌드업] (23) 세한대 이정태, ‘지방대 서러움 딛고 오늘도 달린다’
뉴스| 2017-07-25 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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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한대 이정태가 선문대와의 경기에서 전반을 채 뛰지 못했지만 귀중한 1골을 기록했다. [사진=정종훈]


[헤럴드경제 스포츠팀(태백)=정종훈 기자]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SNS 뉴스피드의 스크롤을 내리며 하루를 마감하던 중 세한대 김주원 감독의 호소문을 우연히 접했다. 간략한 내용은 이렇다. 4년째 지도하고 있는 제자 이정태(22)가 지방에 있는 학교를 다니다 보니 알아보는 사람이 적다며 제자가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그가 어떤 선수인지 궁금한 마음에 수소문했다. 영상도 찾아봤고, 기록지도 샅샅이 뒤져봤다. 이정태는 세한대가 속한 U리그 9권역에서 10경기 11골을 뽑아내며 권역리그 개인득점순위에서 단독 1위를 질주하고 있었다. 기록지를 살펴보니 1경기를 제외한 9경기에서 모두 골 맛을 봤다. 영상으로 접한 그는 빠르고 슈팅 임팩트가 강한 선수였다. 이런 그를 직접 보기 위해 지난 18일 제48회 전국추계대학축구연맹전이 열리고 있는 태백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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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한대 김주원 감독의 호소문.


세한대는 조별 예선전을 선문대와의 첫 경기로 시작했다. 세한대가 U리그 9권역 2위를 달리고 있지만, 지역별 실력 차이를 고려하면 객관적인 전력에서 선문대가 앞선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선문대는 2014년 추계연맹전에서 트로피를 들어 올린 기억도 있었다.

하지만 세한대가 예상을 뒤집고 선문대에 2-1로 승리를 챙겼다. 그 과정에는 에이스 이정태가 있었는데, 그는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이날 오른쪽 측면 윙어로 출전하며 귀중한 1골을 챙겼지만, 부상으로 전반 45분을 채 소화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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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한대 이정태가 골을 넣은 뒤 부상으로 벤치에 교체 사인을 보내고 있다. [사진=정종훈]


짧은 시간이지만, 임팩트는 강했다. 선문대가 볼을 점유하는 시간이 더 길었고, 세한대는 빠른 역습을 통해 선문대의 골문을 위협했다. 이정태는 반 박자 빠르고 강한 임팩트의 슈팅으로 선문대 골키퍼를 흔들었다. 결국, 전반 39분 스스로 기회를 얻어냈다. 페널티 에어리어 내에서 선문대 수비수에게 걸려 넘어지면서 페널티킥을 얻어낸 것. 그것을 실수 없이 성공시키며 세한대의 귀중한 첫 골을 선사했다. 그는 세레머니 후 곧바로 교체 신호를 보내며 결국 그라운드 밖으로 빠져나왔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이정태는 “20분 만에 햄스트링을 다쳤는데, 비기고 있는 상황인지라 하나쯤은 해놓고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선문대가) 쉽지 않겠지만, 저희는 무조건 이긴다고 생각하고 다 같이 왔고, 결과를 좋게 얻어가서 좋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페널티킥을 얻는 과정도 매우 영리했다. 볼을 잡고 곧바로 슈팅을 때릴 수 있었지만, 수비수를 유인했다. 이에 대해서는 “처음에는 세컨드 볼이 왠지 거기에 떨어질 것 같아서 한 박자 기다리고 있었다. 원래는 바로 때릴 생각이었는데 수비가 바짝 따라서 오길래 ‘옆으로 살짝 비키면 수비수에게 걸려 PK가 나오겠다’라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수비수가 그것을 물었다”며 웃음 지었다.

김주원 감독은 제자 이정태를 극찬했다. “1학년 때는 스피드만 좋았는데, 지금은 볼 간수 능력, 득점력, 프리킥 등 다재다능하다. 몸 형태가 아직 부족하지만, 축구 능력은 천재다. (이정태를) 가르쳐보면 정말 천재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의 말대로 짧은 시간 동안 지켜봤지만, 이정태는 충분히 프로 무대에 비벼볼 만한 능력치를 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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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한대 김주원 감독의 제자를 향한 진심은 인터뷰 내내 전해졌다. [사진=정종훈]


이어진 설명에는 제자를 향한 진심이 더 묻어났다. 김 감독은 “제가 처음 고등학교 때 스카우트를 해서 4년을 가르친 선수가 우리 학교에 있기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을 했다. (이 선수에 대해) 잘 알아주지 않더라. 선수를 살려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호소문의 비화를 밝혔다.

제자도 자신의 스승이 SNS에 올린 호소문을 봤을까? 이정태는 웃음부터 지으며 “(글을) 봤다. (감독님께서) 많이 신경 써주고 있는 것 같아서 거기에 제가 더 잘해서 보답해야겠다는 생각뿐이다”라고 말했다. 다소 쑥스러운 듯 머쓱했지만, 스승의 배려에 감사함을 표했다.

김 감독의 호소문처럼 수도권 대학보다 지방 대학은 주목을 받지 못한다. 현장 분위기만 살펴도 수도권 대학의 경기 때 구름 관중이 몰린다. 이정태도 이런 점이 아쉬울 터. “(서러움이) 약간 있긴 하다. 확실히 위에 친구들이 있는데 리그 때도 보러 오는 이야기가 있는데, 저희는 없어서 좀 아쉽다. 제가 더 잘하면 좋은 기회가 오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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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태(10번)는 부상으로 피치를 떠났지만, 동료들과 함께 했다. [사진=정종훈]


스승과 제자의 진심이 통했는지 프로 구단들이 최근 이정태를 주목하고 있다. 강원FC 유스(Youth)인 강릉제일고를 졸업했기 때문에 가장 입단 유력한 구단은 강원이다. R리그도 다녀오며 기량을 검증받았다. 특히 이날은 강원 스카우터가 직접 이정태의 활약상을 지켜봤다. 이뿐 만 아니라 타 구단의 R리그에도 불렸다.

이정태는 “체격이 왜소하지만, 힘에서 밀리진 않았다. 중·고등학교 때 열심히 맨몸운동을 해놓은 것이 지금까지 유지되는 것 같다”며 “R리그에서 뛰고 돌아오면 여유도 생기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간절함도 생겼다”고 돌아봤다.

현장에 있던 한 관계자의 말을 빌리면, 오히려 수도권 대학보다 지방대 있는 선수들이 색깔이 더 뚜렷한 경향이 있다. 실제로 봐도 그렇다. 팀플레이에 초점을 두는 수도권 대학보다 자세히 살펴보면 지방 대학에 오히려 더 톡톡 튀는 선수들이 더러 있다. 이정태도 그렇다. 그는 4년간의 지방 대학의 서러움을 딛고 자신만의 색깔로 한 단계씩 성장해나가고 있다.

■ 이정태 동영상


편집=한동균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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