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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화영이 만난 골프人] ‘양싸부’ 양찬국 프로 (하)
뉴스| 2017-10-18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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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찬국 프로가 지난 13일 애제자 이미향의 KEB하나은행챔피언십 경기를 따라다니던 중에 포즈를 취했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남화영 기자] 18일부터 제주도 오라컨트리클럽에서는 한국시니어오픈이 20일까지 3일간 열린다. 여기에 칠순을 바라보는 양찬국 스카이72골프리조트 헤드프로도 도전장을 냈다. 그보다 스무살 가까이 젊은 투어 프로 출신의 베테랑들이 넘치는 속에서도 그는 꿀리지 않고 출전한다.

양 프로는 2년 전부터 11월이면 중국 하이난 미션힐스 리조트에서 열리는 ‘철인 마라톤 골프’에 출전하고 있다. 첫째날 36홀을 시작으로 2, 3일에 54홀씩 하고 마지막날에 36홀을 돌아 4일간 180홀을 완주하는 살인적인 일정도 거뜬히 소화했다. 올해도 출전 계획을 세워놓았으니 젊은이도 하기 힘든 철인 골프에 3년째 도전하고 있다.

2001년 지천명의 나이를 넘겨 고국에 돌아온 다음부터의 그의 인생은 골프교습가이면서 골프용품 개발자이자 동시에 시니어 투어 프로인 1인3역의 삶을 살고 있다. 내기골퍼에서 시작했지만 정규 자격증을 따고 프로들을 가르치고 실제 시니어투어에도 출전하는 삶의 역정은 여러 편의 드라마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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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양프로는 제자 이미향의 초청으로 에비앙챔피언십을 참관했다.


LPGA 2승 이미향의 코치
지난주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KEB하나은행챔피언십이 열린 영종도 스카이72 바다코스에서 만난 그는 애제자 이미향의 경기를 살피며 따라 돌고 있었다. 바람이 제법 세게 부는 날에도 이미향은 거침없이 그린을 향해 샷을 했다.

“미향이가 체구는 아담해도 거리에서 뒤지지 않는다. 그건 다 외나무 다리에서 연습하면서 균형잡고 스윙하는 연습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양프로는 예전 이미향이 드림골프레인지에서 연습하던 자세를 보여준다. 타석 위의 직선에 난간처럼 서서 스윙을 하는 것을 양 프로가 지켜보고 있는 사진이었다.

양프로는 스카이72 헤드프로로 있으면서 드림골프레인지를 오가다가 숱한 아마추어와 주니어가 크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중에 친구(이영구)의 딸이 초등학생으로 영종도 드림레인지에서 골프를 하는 것을 지켜보고 종종 레슨을 해주었다. 그 선수가 LPGA에서 2승을 올린 이미향이다. 물론 미국 투어를 뛸 때는 현지에서 새로운 스윙코치를 만났지만, 이미향에게 옛 스승은 정신적 지주와 같은 존재다.

이미향은 지난해 에비앙챔피언십에 출전하면서 스승을 초청했다. 당시 한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회를 앞두고 불안한 게 많았는데 사부님이 오셔서 ‘기본을 잘 지켜라. 그리고 너를 믿어라. 너는 준비가 됐고 우승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라는 말을 해주셨다. 사소했던 몇 가지를 지적해주셨다. 알고 있는 내용이었지만 잊고 있던 것들이다. 사부님의 말을 듣고 다시 기본을 생각하게 됐고, 그렇게 경기하다보니 좋은 성적으로 이어졌다.”

골프장 헤드프로
스페인월드컵이 열리던 1998년 여름 티칭 프로의 대회인 월드티처스컵이 스페인 발렌시아가에서 열렸다. 당시 한국 대표로 출전한 이상은 씨를 만났다. 그는 KBS에 근무하면서 짬을 내 프로 자격을 딴 사람이었다. 그렇게 사귀게 되어 이씨의 추천으로 골프방송 해설가가 되기 위해 2001년에 귀국했다. USGTF 교육 감독관 자격이었다.

양프로가 귀국한 다른 이유는 이혼 이후의 새 인생을 고국에서 제대로 개척하고 싶은 각오가 컸다. 그렇게 작정하니 어디든 강의가 잡히는 대로 나갔다. 서일대, 호서대, 건국대, 한양대 등에 골프 강의를 나갔다. 그때 세운 강의 원칙이 있다. ‘5분 전에 시작하고 5분 더하자’였다. 타고난 언변에 20여 년 미국에서의 다양한 경험, 그리고 골프에만 집중하겠다는 그의 노력이 빛을 발했다. 저녁에는 각종 교습서와 동영상을 구해서 연구했다. 그러면서도 그만의 특성을 살린 교습 프로그램을 만들어나갔다.

J골프(현재 JTBC골프)에서 시니어 골퍼를 대상으로 한 레슨 프로그램 ‘양찬국의 노장 불패’는 시청률 1위까지 올랐다. 갓 쓰고 두루마기 입고 도포 쓴 조선시대 양반 복장을 하고 12주 분량을 찍었다. 정해진 대본이 없었고, 배정된 전담 코디나 분장도 없이 그가 모든 걸 진행했다. 하지만 프로그램이 인기가 있어 8회나 더 연장 방송했고, 나중에는 <양찬국의 노장불패> DVD로도 나왔다.

‘퍼블릭 골프장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고 표방하면서 영종도에 스카이72골프클럽이 들어설 무렵에는 골프장 자문을 했다. 김영재 스카이72 대표는 그의 골프에 대한 열정과 풍부한 식견을 높이 여겨 골프장을 개장하면서 헤드 프로 직을 맡겼다.

스카이72는 골프장이 네 곳이 모여 있고, 연습장인 드림골프레인지는 400야드 300타석에 각종 숏게임장이 모여 있다. 연습장 규모가 커서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였다. 그런 만큼 김 대표에게 연줄을 대면서 헤드 프로를 청탁한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김 대표는 말했다. ‘양 프로는 골프장 조성 때부터 컨설팅을 해왔다. 수없이 많은 사람을 썼고 계약을 했다. 하지만 그는 지금까지 나한테 단 한 번도 청탁을 한 적이 없다.’

사람을 한번 믿으면 전부 맡기는 오너의 스타일에 감동한 양프로는 이후로는 김 대표를 ‘보스’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둘은 약속했다. ‘무슨 일이 있건 보스가 부르면 무조건 달려간다. 벽에 똥칠할 때까지 스카이72 헤드 프로를 하고 골프도 맘껏 한다.’ 그리고 그는 아예 숙소를 영종도로 옮겼고, 매일 새벽에 일어나 캐디 교육 라운드를 하고 있다.

대학에서, 방송에서, 골프장에서 그리고 각종 모임과 강연에서 그는 기회가 날 때마다 열심히 강의했고, 그렇게 가르친 제자의 연락처를 꼬박꼬박 다 적어두었다. 핸드폰에 적힌 제자와 골프 관련 인사만 무려 3577명에 이른다. 제자층은 남자 중학교 1학년부터 1945년생 할머니까지, 남녀노소 불문한다.

누군가가 불현 듯 메시지로 스윙에 대해 물어오면 언제든 바로바로 답을 준다. “한번 가르친 제자들은 나를 ‘싸부님’이라고 부른다. 그에 대한 보답으로 나는 레슨과 관련해서는 평생 애프터서비스를 해준다.” 그는 24시간 도움을 구하는 제자의 전화에 답을 했고, 문자가 오면 또 화면을 눈에 대고 들여다보면서 답글을 달았다.

2009년 7월2일은 환갑이 되는 날이었다. 귀국한 뒤 9년 동안 가르친 제자도 어림잡아 2000명이 넘었다. 그래서 색다른 이벤트를 열기로 했다. 사비(私備) 2000여 만원을 들여 144명의 제자를 스카이72 클래식 코스에 초청한 이른바 ‘양사부 환갑기념 전국 제자 골프대회’를 연 것이다. 티칭 프로 한 명을 위한 환갑 골프 잔치에 수많은 제자가 참여했다. 교육 라운드를 통해 캐디 업무를 배운 스카이72 하늘 코스 캐디 60명은 로스트 볼에 생일 축하 메시지를 담은 액자를 선물했다. 바다 코스 캐디들은 그날 무료 서비스를 해주겠다고 자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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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찬국 프로가 미션힐스 180홀을 완주하고 인증패를 받고 있다. 올해로 3번째 도전한다.


챔피언스투어 도전기
양프로는 성격상 자기 할 말을 다 하는 스타일이다. 눈꼴 시린 건 절대 그냥 보아 넘어가지 않는다. 2004년에는 TV 방송 ‘임성훈의 퀴즈가 좋다’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다. 사회자가 그 나이에 왜 출연했느냐고 묻자 그는 “골프 티칭 프로가 무식하지 않다는 걸 보이려고 나왔다”라고 답할 정도였다. 그런 거침없는 언행으로 적도 많이 생겼다.

USGTF 교육감독관으로 오랜 세월 레슨 경력을 쌓았지만, 국내에서 그걸 이해시키는 게 복잡하고 그도 서툴렀기 때문이다. 기존 한국PGA 회원의 견제와 텃새가 너무 심한 때문이기도 했다. USGTF 출신이라고 대놓고 무시하는 이들도 많았다. 그래서 그는 한국PGA 티칭 프로와 대립각을 세우는 한편, 2008년부터 매번 한국PGA 티칭 프로 자격 시험에 도전했다. 괘씸죄가 적용되었을까? 7번을 내리 떨어졌다. 한국PGA 티칭 프로들에게 공공의 적이기도 했다.

결국 2011년 9월8일 하반기에 62세로 최고령 한국PGA 티칭 프로 테스트에 합격했다. 7전8기로 합격한 것이 감격스러웠던지 그날은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가 그렇게 비판하던 곳이자, 괄시받던 한국PGA 안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하지만 12월 말 일주일간 한국PGA 티칭 프로 연수를 다녀온 뒤로는 국내 교습 체계에 대해 비판적으로 돌아섰다.

“나는 미국과 한국에서 티칭 교육을 다 받았다. 그런데 국내는 골프를 어떻게 가르칠까에 대한 내용이 터무니없이 부족하고 이론이나 교육 방법론도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제대로 된 커리큘럼을 가지고 교습가를 양성하는 미국의 PGCC(Professional Golfers Career College)같은 골프 전문 교육 기관이 국내엔 없다. 그래서 개방(?幇)골프를 만들었다.”

2012년 3월부터 그의 골프 철학과 교습 방식을 ‘개방 골프’라는 이름으로 전파하기 시작했다. 이름이 재미있다. 열려있는(Open) 골프 교습이란 의미도 있다. 그는 무협지에서 아이디어를 가져다 설명한다. ‘개방’이란 거지들로 구성된 문파로, 고식적인 서열 체계와 격식을 거부하는 집단을 일컫는다. “교습가는 자기 몸뚱아리 하나로 먹고 사는 직업인이다. 그런만큼 가르치는 방법을 서로 나누고 공유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그렇게 이름 지어 만들었다.” 개방 골프는 일반인은 받지 않고 티칭 프로들을 재교육하는 모임이었다.

“개방 골프는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방법론을 찾는 모임이다. 레슨은 교습가 중심이 아니라 학습자 중심이어야 한다. 이름난 셰프 에드워드 권을 레슨할 때의 사례를 들겠다. 클럽을 처음 잡아서인지 폼이 서툴렀다. 한 티칭 프로는 ‘엄지와 검지 사이에 두고…’하면서 이론적으로 가르치려 했다. 그때 내가 ‘요리할 때 칼은 어떻게 잡나? 그걸 내려치지 말고 옆으로 썬다 생각해보라’ 했더니 금방 그립의 개념을 파악했다. 그런 방법론을 교습가끼리 서로 나누는 것이다.”

개방 골프라는 이름으로 티칭 프로 재교육을 하는 한편, 챔피언스투어에도 도전했다. 2011년에 티칭 프로 자격을 딴 데 이어 이듬해 4월에는 50세 이상의 프로가 출전하는 챔피언스투어 시드전에서 77, 76타 합계 153타로 통과했다. 무려 63세에 챔피언스투어 시드권까지 딴 것이다. 한국PGA 티칭 프로가 되고 곧이어 투어 프로 자격까지 얻었으니, 그는 이왕 시작한 일 끝장을 보기로 작심했다.

투어 프로 시드전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교회 목사가 감사 예배까지 열어주었다. “그날 설교는 창세기를 인용한 내용이었다. 꿈꾸는 늙은 자와 꿈이 없는 청년 중에 어떤 자를 택할 것이냐. 인생은 결국에 도전하면서 배우는 것이라는 말씀이었다.”

챔피언스투어에서 뛰겠다는 건 애초부터 힘겨운 도전이었다. 62세에 출전했으나 당시 52세의 최광수가 우승하는 등 나이차가 컸다. 게다가 60세 이상 프로에게 출전권을 주는 그랜드시니어는 정규 투어프로 출신에게만 자격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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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꾸리 퍼터를 들고 포즈를 취한 양찬국 프로.





꺼꾸리 퍼터 개발자
개방 골프가 직업에서 이루는 꿈이라면, 챔피언스투어는 골퍼로서 일생의 꿈이다. 그런 한편으로 골프 클럽을 제조하는 건 취미를 사업과 연결시킨 대박의 꿈이기도 했다. 샤프트를 헤드 토우에 부착시킨 이형(異形) 퍼터를 개발해 ‘꺼꾸리 퍼터’(처음에는 양싸부 퍼터)라는 이름으로 출시했다.

“퍼팅 교습을 하던 중에 개발한 제품이다. 퍼팅이 너무 어렵다고 하소연하는 골퍼를 마주보고 설명하다가 퍼터를 그대로 받아 ‘단순하게 생각해라, 이렇게 퍼팅하면 된다’고 시연했다. 그런데 그게 내 평소 퍼팅보다 더 잘 된 것이다. 손목도 안 꺾였다. 그래서 착안해 나온 퍼터다. 3년간 구상했고 모델 세공도 6~7번 했다. 이걸 누군가는 ‘후배위 퍼터’라고도 부른다.”

장난스럽게 말하지만 이미 영국골프협회에서 승인받은 상태다. ‘꺼꾸리 퍼터’라는 모델 이름도 거저 나온 게 아니라 퍼팅 자세가 한 동작으로 ‘와이 y’자를 유지할 수 있다고 해서 이름 이니셜을 붙였다. 현재 꺼꾸리 퍼터는 제자 김재월 씨가 생산. 판매를 전담하고 있다고 한다. “실적이 미미한지 로얄티를 안 줍니다. 노후대책으로 알고 있으라네요”하고 웃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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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찬국 프로는 지난 1일 우즈벡의 명예 골프협회장이 됐다.


중앙아시아로 커지는 꿈
양프로는 골프와 관련해선 발 한 쪽이라도 걸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 골프 관련 직함도 수없이 많다. SGTF 교육감독관이자 스카이72 헤드 프로이고, 한국PGA 티칭 프로이면서, 챔피언스투어를 뛴 투어 선수였고, J골프 해설위원이자 SBS골프, KBS스카이골프 해설위원이고, 볼빅프로단 단장에, 골프다이제스트아카데미 원장을 지냈고, 이미향의 코치이기도 하다.

골프에만 몰두하고 골몰한 그의 인생을 스스로는 어떻게 평가내릴까. “나는 골프 때문에 가정을 내팽개치다시피 했다. 이혼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딸아이 결혼 땐 내가 도저히 나설 수 없었지만, 2011년 11월15일 아들이 미국에서 결혼식을 올렸을 땐 달랐다. 당시 신혼 부부 내외가 한국을 찾아 내 생활을 봤다. 한 눈 팔지 않고 골프만 열심히 몰두하며 사는 모습을 봤다. 골프로 한 길만 파는 나를 아들이 인정해줬다.”

그는 진정으로 인생을 골프와 맞바꾼 남자다. 처음부터 프로 골프로 진로를 잡아 그것으로 투어에 나가고, 그래서 결혼하고 자아성취도 하는 골퍼도 많다. 그의 삶이란 그것과는 정 반대였다. 골프 때문에 가족으로부터 내팽개쳐진 인생이었다.

양 프로는 최근 지난달 25일부터 이달 3일까지 9일간 우즈베키스탄에 머물면서 우즈벡 명예골프협회장으로 위촉되었다. 열흘도 안되는 기간에 우즈벡에 골프협회를 창설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프로 테스트를 거쳐 3명의 정규 투어까지 배출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년 3월 셋째주에는 우즈벡에서 골프 대회를 열기로 했다. 이미 양 100마리 협찬하겠다는 스폰서도 한 명이 들어왔다.

우즈벡에서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들아오는 공항에서는 카자흐스탄의 전권대사가 갑자기 찾아와 자기들에게도 그런 협회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카자흐스탄은 골프장이 이미 10곳이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정식 골프협회가 없고 프로도 없다. 그의 새로운 골프 교습에의 꿈이 이제는 중앙아시아로 펼쳐지고 있다. 칠십 골프 인생. 세상은 넓고 해야 할 일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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