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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승의 골프 타임리프] 가장 위대한 현역 골프선수는 누구인가?
뉴스| 2017-11-22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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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갑의 나이에 골프기량을 꽃피우고 있는 베른하르트 랑거.


현역으로 활동하는 골프선수 중에서 가장 위대한 선수에게 투표한다면 누구를 고를 것인가? 더스틴 존슨, 조던 스피스, 저스틴 토머스, 로리 맥길로이 등 PGA의 스타플레이어들이 많지만 필자는 주저 없이 세계랭킹 1,552위에 랭크된 베른하르트 랑거(독일)에게 한 표를 던질 것이다.

만 60세(1957년 8월 생)가 넘은 선수를 가장 위대한 현역선수로 선택하는 이유는 너무나 많다. 그의 스토리를 살펴보면서 프로선수이든, 혹은 중년을 넘긴 아마추어 골퍼이든 자기 골프의 경기력 향상에 영감을 얻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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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째 미PGA 시니어투어를 석권하고 있는 베른하르트 랑거(독일).


세월은 랑거를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인가?

2017년 PGA 챔피언스 투어가 끝났다. 만 50세부터 참가할 수 있는 시니어 PGA투어는 ‘PGA투어 챔피언스’다(보통은 줄여서 ‘챔피언스투어’로 불린다). 2017년 60세의 랑거는 메이저 3승을 포함해, 7승을 거두며 상금왕에 올랐다. 놀라운 것은 최근 10년 사이 9번째 상금왕이라는 점이다. 10년 동안 206개의 대회에 출전해 ‘톱3’ 이상의 성적이 무려 85회나 된다. 챔피언스투어에는 매년 50세를 막 넘어서는 ‘젊은 선수’들이 새로 들어온다. 비제이 싱, 콜린 몽고메리, 프레드 커플스 등 대선수들의 도전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랑거는 10년 장기집권을 공공히 한 것이다.

챔피언스투어에서 랑거의 메이저 우승은 10회로 통산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우승횟수는 36회로 1위 헤일 어윈의 45승을 추격하고 있다. 2017년 총상금(360만 달러)은 PGA투어로 가더라도 18위에 해당된다. 금년까지 6년 연속 최저 평균타수의 1위를 지켰고, 토탈 드라이빙, 토탈 볼 스트라이킹, 홀당 평균퍼트, 평균 버디 숫자 등 중요한 통계에서 모두 선두를 차지하고 있다.

놀라운 것은 이런 통계 숫자들이 전성기 때보다 더 좋다는 사실이다. 랑거는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 랑거 스스로 “지금이 내 평생 중에서 가장 강한 골퍼”라고 말한다. 그는 테크닉을 끊임없이 개선해 왔고 노력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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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거의 젊은 시절 모습(1985년).


랑거의 골프 경력

1957년 독일 바이에른 주의 시골마을에서 태어난 랑거는 9살 때 캐디를 하며 골프를 배웠고, 15세에 프로골퍼가 되었다. 아마추어 시절은 없었던 셈이다. 18세에 처음으로 독일오픈에서 우승한 후, 23세에 유러피안투어 첫 우승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유러피안투어 우승횟수는 총 42승으로 1위 세베 발레스테로스(스페인, 50승) 다음이다. 특히 1985년, 1993년 마스터스 대회에서 우승하며 유럽골프의 부흥을 선도했다. 1957년 생 동갑내기들인 랑거, 발레스테로스, 닉 팔도는 유럽골프를 이끄는 ‘삼두마차’였고, 라이더 컵에서 유럽이 미국을 제압하기 시작하는 결정적인 동력이었다.

1986년 처음으로 공식 발표된 골프세계랭킹에서 초대 세계랭킹 1위는 랑거였다. 그 이후 세베 바레스테로스, 닉 팔도, 이안 우스남 등의 유럽선수들이 세계랭킹 1위에 오르며 미국의 독주에 제동을 걸었다.

이런 랑거는 50세가 된 2007년 8월부터 챔피언스 투어에서 활동했다. 그리고 젊어서의 전성기보다 더 나아진 기량을 선보이며 시니어 골프계를 완전히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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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랑거가 그린재킷(마스터스 우승)을 입고 있는 장면.


입스를 극복한 퍼팅 스타일

랑거는 19세 때 처음으로 퍼팅 입스가 왔다고 회상했다. 포르투갈의 대회에 참가했을 때 독일 그린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그린을 경험하며 퍼팅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고, 자기의 의지와 관계없이 스트로크 때에 손목이 꺾이는 입스가 찾아온 것이다.

입스는 지금까지도 원인과 치료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손목이 꺾이는 것을 막기 위해서 그립이 왼손 팔뚝에 닿도록 내려 잡고 오른 손으로 왼쪽 팔뚝과 그립을 함께 잡는 방법을 개발하여 마스터스에서 우승했다.

이후 1997년 랑거는 영국의 샘 토랜스로부터 롱 퍼터의 사용법을 배워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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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거의 초창기 퍼팅그립.


퍼팅의 달인


골프선수의 전성기가 끝나면서 가장 먼저 찾아오는 현상은 퍼트가 안 되는 것이다. 퍼팅은 특별한 테크닉이 없고, 선수의 집중력과 자신감 그리고 시력 등에 의해서 좌우 된다. 전성기가 끝날 때쯤 퍼팅의 능력이 확연하게 떨어진다는 것이 골프이론의 정설이다. 그래서 시니어 선수들은 젊은 선수들의 퍼팅 능력을 절대로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이론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랑거가 증명해냈다.

PGA에서 통계를 관리하기 시작한 이후 홀 당 평균 퍼트의 숫자 1.70타는 마의 벽이라고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아래의 통계를 보자.

* 역대 주요 평균 퍼트

- 타이거 우즈(24세) 2000년 1.717타
- 조던 스피스(22세) 2015년 1.699타(최초 1.7타 돌파)
- 저스틴 토머스(24세) 2017년 1.694타
- 베른하드 랑거(60세) 2017년 1.683타(2위 1.716타)

20대 전성기 선수들의 통계는 모두 PGA의 당시 최고기록들이다. 그런데 60세 랑거의 기록도 그의 생애 최고이자, 골프 역사상 최고다. 그렇다면 이제 전성기가 끝나서, 혹은 나이가 먹어서 퍼팅을 못한다는 말은 할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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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퍼팅입스를 극복한 랑거의 퍼팅 자세.


롱퍼터

2016년부터 골프 룰에는 앵커링 금지 조항이 추가됐다.

룰 14-1b : 플레이어는 스트로크 하는 동안 클럽을 ‘직접적’이거나 ‘고정점’을 사용하여 몸에 붙여 고정해서는 안 된다. (주 2 : 고정점은 플레이어가 의도적으로 팔뚝을 몸의 어느 한 부분에 붙여서 클럽을 잡은 손이 안정점이 되고 다른 손이 스윙하도록 할 때 생긴 것이다.)

새로운 룰은 랑거의 퍼팅방법을 금지시켰다. 그의 왼쪽 팔뚝이 가슴에 고정되어 있었으므로 랑거는 롱퍼터를 사용할 수 없게 됐고, 이에 그가 어떤 새로운 퍼팅 방법을 개발하는지에 관심이 쏠렸다. 하지만 2016년에도 랑거는 롱퍼터를 사용했고, 그립과 자세도 변함이 없어서 룰 위반인 것처럼 보였다. 랑거는 스트로크 하는 동안에 왼쪽 팔뚝을 가슴에서 분리하는 자세를 취해 룰 위반을 피했다.

2017년 랑거가 7승을 올리며 역대 최저의 평균 퍼트를 달성하자, 동료 선수들과 미디어는 랑거가 룰을 위반하는 것이 아닌지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왼쪽 팔뚝을 가슴에 대는지 안 대는지 육안으로는 식별이 어렵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였다. 랑거는 “양심과 명예를 걸고 룰 위반이 없다”고 해명했지만 결국 USGA가 나서서 그의 퍼팅스트로크를 테스트했다.

테스트 결과 왼쪽 팔뚝은 스트로크 하는 동안 가슴에서 떨어져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고 USGA는 룰 위반이 없다는 사실을 공표했다. 그 이후 랑거의 퍼팅 스트로크에 대한 이의 제기는 없어졌다.

스윙 테크닉

랑거 자신은 스윙이 ‘젊은 전성기’보다 지금이 더 간결하고 효율적이라고 말한다. 16세 때 만난 스윙 코치 윌리 호프만에게 아직도 배우고 있는 랑거는 한 명의 코치에게 머무른 것이 큰 성공요인이었다고 말했다. 지금도 일주일에 3회 이상 통화하고 1년에 한 번 이상 직접 만나서 스윙의 기본을 점검한다. 그는 새로운 스윙 테크닉들을 쫓아가지 않는다.

링크로 별첨한 동영상에서 랑거의 스윙 모습을 살펴보자. 젊은 선수들처럼 멋진 피니시 동작이 없고 샷마다 스윙 모습이 달라 보이며 때로는 이상하기도 하다. 철저히 임팩트 순간만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공을 친 후에는 어떤 모습이 나오던 개의치 않기 때문이다. 멀리 치는 것보다 원하는 곳으로 공을 보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전성기 시절 그의 드라이버 거리는 260야드에 불과했지만, 2017년 통계는 280야드이다. 30년 전보다 더 멀리 칠 수 있는 것은 장비와 볼의 발전이 가장 큰 이유이지만, 그가 젊은 시절의 효율적인 스윙을 지키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비결을 묻는 기자에게 랑거는 이렇게 대답했다. “기본에 충실하고 스윙을 간단하게 생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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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퍼트를 사용하고 있는 랑거의 퍼팅 모습.


긴 전성기를 누리는 비결

랑거는 30년 이상의 긴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비결은 무엇인가? 먼저 피트니스다. 랑거는 키 174cm, 체중 72kg인데, 골프선수 경력 내내 같은 체격을 유지하고 있다. 가장 존경하는 선수가 게리 플레이어인데 두 선수의 공통점은 ‘미스터 피트니스’라는 것이다. 라운드 전에는 꼭 피트니스 시설이 갖춰진 투어 밴을 방문하여 스트레치와 기본운동을 하고 나간다. 그는 하루에 두 번 이상 스트레치를 하고 유산소 운동도 거르지 않는다. 무거운 근육운동은 골프스윙에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해로울 뿐이라고 가르쳐준다.

식생활도 소식을 기본으로 하며 상식적으로 몸에 해로운 것들을 피한다. 먹는 것도 경쟁이라는 사실을 잊은 적이 없다. 그의 성격은 ‘꼼꼼하다’라는 표현이 딱 맞다. 골프를 위해 평소에 준비를 가장 잘하는 선수이다. 대회가 끝나면 4-5일은 골프를 치지 않으며 몸의 균형을 잡는다.

랑거가 말하는 비결은 추상적이다. “골프를 사랑하고, 스윙을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라.” 랑거의 사례는 중년 또는 노년 골퍼들만의 모범이 아니고 프로골퍼를 포함한 모든 골퍼들의 연구과제이다.


‘랑거의 파라독스’

“나이가 들수록 스윙이 좋아진다.” 또는 “나이가 들수록 퍼팅을 더 잘한다.” 기존 골프이론을 완전히 뒤엎은 이 현상을 필자는 ‘랑거의 파라독스(Langer’s Paradox)‘라고 부르기로 했다. 랑거의 파라독스가 모든 골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단어가 되기를 바란다.

* 박노승 씨는 골프대디였고 미국 PGA 클래스A의 어프렌티스 과정을 거쳤다. 2015년 R&A가 주관한 룰 테스트 레벨 3에 합격한 국제 심판으로서 현재 대한골프협회(KGA)의 경기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건국대 대학원의 골프산업학과에서 골프역사와 룰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다. 위대한 골퍼들의 스토리를 정리한 저서 “더멀리 더 가까이” (2013), “더 골퍼” (2016)를 발간한 골프역사가이기도 하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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