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내외가 지난달 20일 미 의회 의사당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하며 군 의장대의 사열을 받고 있다.[AP]
[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전임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와는 다른 국제적 다자주의를 표방한 가운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미국에 ‘다자주의’를 요구하고 나서자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이를 사실상 거부하며 중국을 미국의 ‘적’으로 간주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내세운 다자주의와 중국이 미국에 요구하는 다자주의에 커다란 간극이 있는 셈이다.
미국의 다자주의는 세계 최강국 미국의 패권 하 질서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면, 중국의 다자주의는 도전자로서의 중국이 미국의 패권을 흔들고자 하는 야심을 기반에 깔고 있다. 이런 미중 양국의 인식 차이는 두 나라의 충돌로 이어져 향후 세계에 신냉전체제가 다시 강화될 것이란 우려가 국내외에서 커지고 있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는 국내 한 심포지엄 기조연설에서 “바이든 행정부의 기조는 트럼프가 강조하던 미국 우선주의에서 벗어나 세계와 더불어 가는 다자주의”라면서 한국은 미국과 가까운 영국·독일·프랑스·호주·캐나다 등과 협력해 신냉전 시대가 고착화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에서도 신냉전에 대한 우려가 연일 제기되고 있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다자주의를 역설한 다보스 어젠다 화상 연설에 대해 전하면서 중국이 미국과 유럽에 냉전을 재점화하지 말라고 경고했으며, 이는 미국과 유럽이 대중 공동압박을 모색 중인 가운데 나온 시 주석의 선제 조치라고 평가했다.
시 주석은 이 연설에서 “국제 무대에서 몇몇 나라가 협력해 신냉전을 시작하고, 다른 세력에 공급을 제한하거나 경제 제재를 가해 고립시키는 것은 세계를 분열시키고 대립하게 만들 뿐”이라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국제사회는 한 나라나 몇몇 나라가 설정한 규정이 아니라 모든 나라가 합의한 규정에 따라 다스려져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를 거스르는 포괄적인 다자적 접근법을 국제 현안의 해결책으로 제시한 것이다.
시 주석이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 후 첫 공개 연설에서 이런 ‘예외 없는 다자주의’를 천명한 것은 트럼프 정부에서 최악으로 치달은 미·중 관계를 바로잡기 위해 미국 새 지도부의 태도 변화를 촉구한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등 중국 매체는 시 주석의 연설을 미국을 겨냥한 경고라고 풀이했다. 달리 말해 미국의 패권에 2인자 중국이 도전하는 모양새를 취한 것이다.
미국은 중국의 이 같은 태도를 즉각 ‘중대한 도전’으로 평가하고, 중국을 ‘전략적 적’이자 전 세계에 대한 ‘위협’으로 규정하는 한편, 중국에 대한 강력한 응징 의지를 분명히 했다. 미국의 다자주의는 미국이 트럼프 정부 때 소홀히 했던 세계 중심으로서의 역할에 복귀하겠다는 의미라면, 중국판 다자주의는 미국에 대한 도발이라는 것이다.
젠 사키 미국 백악관 대변인은 시 주석 연설 관련, “우리는 중국과 심각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면서 “중국은 지금 우리의 안보와 번영, 가치에 중대한 방식으로 도전하고 있고, 이는 미국의 새로운 접근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시진핑, 미국에 “몇몇 나라 설정한 규정 안 돼”…미 “중국, 중대한 도전”=린다 토머스-그린필드 미국 유엔대사 역시 ‘중국을 유엔에서 밀어내겠다’며 노골적인 대중 강경 입장을 드러냈다.
그는 “중국은 유엔의 설립 가치와 미국의 가치를 거스르고 있다. 중국은 전략적 적”이라며 “그들의 행동은 우리의 안보와 가치, 삶의 방식을 위협하며 이웃과 전 세계에도 위협”이라고 규정했다. 또 “그들(중국)의 성공은 우리(미국)의 계속된 후퇴에 따른 것”이라며 “임기 중 최우선순위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밀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스’ 2020년 3·4월호에 기고한 ‘미국은 왜 다시 세계를 이끌어야 하나?’는 제목의 글에서 대통령에 취임하면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의 정상회의를 개최하겠다며 미국이 세계를 이끌기 위한 즉각적인 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공언했다. 민주주의 국가가 아닌 중국은 세계를 주도할 국가 그룹에 낄 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이러한 바이든 대통령의 복안을 사실상 무시하고, 대담하게 미국의 변화를 촉구한 셈이다.
트럼프 정부 시절 미중 무역전쟁으로 위기에 몰린 중국은 해외 수출 부진을 만회하고자 내수 시장 활성화를 통한 경제 회생을 기대하며 이른바 ‘쌍순환’(대외 수출·대내 내수 활성화 및 유기적 연계) 전략을 추진하는 등 대책 마련에 부심했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사태로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이 크게 늘고,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은 대폭 축소돼 세계 1·2위 경제 대국인 두 나라의 경제 격차는 상당히 좁혀졌지만, 여전히 중국은 미국의 관대함을 내심 바라는 분위기다.
진찬룽(金燦榮) 중국 인민대학 국제관계학원 부원장은 바이든 정부 출범에 맞춰 “중국은 양국 관계를 개선할 가능성이 1%만 있어도 100%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미국은 향후 코로나19 최초 발병지 조사, 화웨이 등 중국기업 제재, 중국의 지적재산권 도용 문제, 남중국해 문제, 대만과 홍콩 문제, 신장 위구르족 집단 학살 문제 등 대부분의 사안에서 중국을 전방위적으로 강하게 압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와의 전화 통화에서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FOIP)을 위한 협력, 미·일 안보조약 5조의 센카쿠 열도 적용, 미국·일본·호주·인도 4개국이 함께 하는 이른바 ‘쿼드(Quad)’의 협력 증진 등 중국 견제를 위한 3가지 사항 준수를 재확인했다.
또한 앞서 바이든 대통령은 42년 만에 처음으로 주미 대만대표를 미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 중국의 ‘하나의 중국’ 원칙 무력화에 나섰다. 아울러 미국은 중국이 최근 폭격기와 전투기로 대만 방공식별구역(ADIZ)을 여러 차례 무단 진입하고, 영유권 분쟁 중인 남중국해에 군대를 보내 무력시위를 이어가자 이곳에 미 항공모함과 정찰 자산 등을 출동시켜 무력시위 맞대응에 나선 형국이다.
미국은 또한 중국의 홍콩보안법 제정 등에 반발한 홍콩 내 반중 인사에 대한 지지 의사를 재확인하고 이런 기조를 이어나갈 전망이다. 아울러 중국 당국의 신장 지역 위구르족 집단학살 논란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도 트럼프 정부의 대중 강경 기조를 상당 부분 계승할 전망이다.
미 해군 항공모함에서 F/A-18 슈퍼호넷이 이륙하는 장면.[AP]
▶바이든, 트럼프와 달리 대러 강경책 시사=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와는 비교적 무난한 관계를 유지했던 트럼프 정부와 달리 대러 관계에서도 강경책을 구사할 전망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첫 통화와 함께 미러 핵무기 통제 조약인 신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의 5년 연장에 합의하는 등 대러 외교를 순조롭게 출발했다.
하지만, ‘제2의 냉전’ 시기로 불리는 버락 오바마 정부에서 일했던 인사들이 이번 미 외교·안보라인에 대거 포진, 바이든 재임 중 미러 관계에는 지뢰밭이 산재해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오바마 정부 시절인 2009년 미국은 대러 관계 개선을 위한 ‘리셋(Reset)’ 정책을 추진했으나 먹혀들지 않자 양국 관계가 악화일로에 접어들었다. 2014년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인 크림반도를 병합하고 미국과 서방이 러시아에 제재를 가하며 미·러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 들어 미국은 러시아 관련 민감한 사안에 적극 나서지 않으면서 관계 개선을 추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임기 시작과 함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영토 크림반도 병합, 미 연방기관 해킹,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 살해 사주, 미국 대통령 선거 개입,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 독살 시도 등 트럼프 전 대통령이 소극적으로 대응했던 사안에 대한 우려를 본격적으로 제기하고 나섰다.
또한 바이든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과의 통화 전 유럽 동맹국 정상들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무총장과 통화하며 미국의 대러 집단방위 의지를 재확인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바이든 정부의 대외정책 방향에 대해 “미국 우월주의 노선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면서 “중국과 러시아 억제가 (미국) 대외정책의 현안으로 남아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콘스탄틴 코사체프 러시아 상원 국제문제위원회 위원장은 바이든 취임 직후 “바이든이 트럼프보다 러시아에 더 불편한 반대자가 될 것”이라며 우려를 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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