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대법원. [연합]
[헤럴드경제=안대용 기자] 대법원이 인터넷 기사 댓글에 ‘기레기’라는 표현을 써 1·2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네티즌에 대해 재판을 다시 하라고 판결했다. 모욕 표현에 해당하지만 형사처벌까지 해선 안 된다는 것인데 법조계에서도 이를 두고 갑론을박이 나온다.
28일 법원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25일 모욕 혐의로 기소된 이모씨의 상고심에서 벌금 3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구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특정 사안에 대한 의견을 공유하는 인터넷 게시판 등의 공간에서 작성된 글에 모욕적 표현이 포함돼 있어도 그 글이 동조하는 다른 의견들과 연속적·전체적 측면에서 봐야 한다고 했다. 이어 내용이 객관적으로 타당성이 있는 사정에 기초해 자신의 판단 내지 피해자의 태도 등이 합당한가 하는 데 대한 자신의 의견을 강조하거나 압축해 표현한 것이라 평가할 수 있고, 표현도 지나치게 악의적이지 않다면 위법성이 사라진다고 전제했다.
재판부는 이씨가 쓴 댓글에 적은 ‘기레기’는 ‘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로 자극적 제목이나 내용 등으로 홍보성 기사를 작성하는 행위 등을 하는 기자나 행태를 비하한 용어라고 했다. 기자인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모욕적 표현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의 댓글 작성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아 형법에 의해 위법성이 사라진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해당 기사와 관련해, 기사를 읽은 상당수 독자들은 한 기업의 기술 시스템을 홍보하는 듯한 제목과 내용 및 기자의 행위 등을 비판하는 의견이 담긴 댓글을 달았다며 “그렇다면 이러한 의견은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타당성 있는 사정에 기초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레기라는 표현을 두고서는 기사 및 기자의 행태를 비판하는 글에서 비교적 폭넓게 사용되는 단어라며 “이 사건 기사에 대한 다른 댓글들의 논조 및 내용과 비교해 볼 때 이씨 댓글의 표현이 지나치게 악의적이라고 하기도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이 1·2심과 달리 무죄 취지로 사건을 돌려보낸 것을 두고 형법 전문가들은 ‘당연한 판결이고 처벌하려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의견과 ‘엄연히 모욕죄 규정이 존재하는데다 다른 처벌 사례들과 비교해 형평을 맞춰야 한다는 점에서 아쉬운 판결’이라는 의견으로 나뉘었다.
형사 사건 전문가인 한 변호사는 “단순히 기레기란 표현을 썼다고 모욕죄 처벌하는 건 과하지 않느냐”며 “무조건 형사처벌로 해결하려는 건 안 좋은 거 같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대법원이 사회상규를 들어 무죄 취지로 결론낸 것을 두고 “형법해석에 따른 원론적 입장으로 보인다”며 “다만 터무니없이 기레기라고 했으면 사회상규에 저촉됐을 것이고, 특정인이 특정기자를 상대로 지속적으로 기레기라고 했으면 모욕죄도 성립할 듯하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변호사는 “쓰레기에 비유해서 모욕감을 주는 표현이어서 판례 기준상 모욕적 표현에 해당하긴 한다”면서 “모욕죄로 처벌할 것이냐 하는 점은 다른 문제고, 사회상규를 들어 판결한 건 자연스러워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엄연하게 모욕죄 규정이 존재하는데다가 다른 사안들에 비춰 형평을 고려했어야 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일선의 한 부장검사는 “사회상규가 추상적인 기준이긴 하지만 언제부터 법원이 인정한 사회상규가 이렇게까지 내려 왔느냐”며 “다른 사람한테 쓰레기라고 하는 걸 모욕죄로 처벌하지 않으면 뭘 모욕죄로 보느냐”고 말했다. 또 다른 검사는 “형법에 규정이 엄연히 존재하고, 덜한 표현들도 모욕죄가 인정된다”며 “모욕죄나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처럼 규정의 존재가 논란이 되는 죄들은 입법적으로 해결한다면 몰라도 법에 따라 처리했어야 하지 않나 싶다”고 했다.
대법원은 2016년 인터넷 게시판에서 ‘무뇌아’라는 표현을 쓴 네티즌에 대해 모욕죄 유죄를 확정했다. 지난해에는 경쟁사 직원에 대해 인터넷에서 ‘사기꾼, 이중인격자’라고 쓴 네티즌에게 명예훼손죄와 모욕죄 유죄가 확정됐다. 하급심에선 연예인에게 ‘극혐(극도로 혐오)’이란 표현을 쓴 네티즌이 유죄를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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