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혁의 현장에서] 구멍난 출연연 감사 시스템
2021-04-07 11:36


“수년 동안 막대한 금액을 빼돌렸는데 해당 기관에서 전혀 몰랐다는 사실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국민혈세로 운영되는 과학기술 정부 출연연구기관(출연연)에서 67억원에 달하는 횡령 사건이 발생했다. 연구·개발(R&D) 특허를 담당하는 직원들이 거금을 빼돌린 것을 두고 출연연 관계자들은 한탄을 쏟아내고 있다. 한국기계연구원 직원 2명은 특허사무소와 공모해 지난 2014년부터 6년간 200여 차례에 걸쳐 특허비용 67억원을 횡령해 검찰조사를 받고 있다.

문제는 이같이 장기간에 걸쳐 비위행위가 일어났지만 해당 기관 감사조직에서는 이를 전혀 인지하지 못하다가 내부 제보를 통해 뒤늦게 대응했다는 것이다. 출연연을 관리·감독하는 국가과학기술연구회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특허 관련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허점을 드러냈다.

이 같은 과학기술계의 비위행위는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지난 2012년 A출연연에서는 C기관장이 직원들로부터 대외활동 및 연구원 지원비 명목으로 1500만원 상당의 금품을 받았다. 이들에게 790만원 상당의 외상술값을 대신 결제하도록 지시한 혐의로 기소됐다. C원장은 감사원 공직기강 감사에서 해당 비위 사실이 적발돼 같은 해 9월 해임됐다.

또 2012년 B출연연에서는 주요 보직자가 가족 명의의 업체를 차린 뒤 실험기자재를 독점으로 제공하는 방법으로 기관에 큰 손해를 끼친 바 있다. 또 출연연 연구자들의 해외 부실 학회 참석 사태가 벌어졌을 때에도 출연연 감사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 특히 예산과 인사, 감사에 관한 권한은 출연연에 그대로 둬 연구윤리 위반이나 비위행위를 제 대로 관리·감독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계속 따르고 있다.

그동안 출연연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현행법에 따라 기관 내 자체 감사 한 명을 두고 연구원의 업무 및 회계를 감사해왔다. 그동안 출연연 상임감사직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낙하산 인사들이 임명되는 경우가 많았다. 상임감사는 억대 고액 연봉과 기관장에 버금가는 권한에 비해 전문성과 역량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에 일선 연구 현장에서는 전문성 없는 감사로 연구에 몰입하기 어렵다는 목소리를 내왔고, 정치권에서도 온정주의 감사를 탈피하기 위한 감사제도 개선을 요구해왔다.

이 같은 점에서 연구기관이 개별적으로 실시했던 감사를 국가과학기술연구회로 이관해 일원화하는 통합 감사 출범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통합 감사는 이사장 직속으로 외부 개방형 직위 감사단장을 중심으로 25명의 감사 전문인력으로 구성, 출연연의 일상·복무감사를 수행해나갈 계획이다.

감사 일원화를 통해 일명 ‘봐주기식 감사’는 크게 줄고 엄정하고 전문성 있는 감사, 감사인력 부족 문제 해소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출연연 통합 감사는 이르면 오는 6월부터 본격 활동에 들어갈 예정이다. 통합 감사가 출연연의 고질적 병폐를 해결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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