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커스] ‘부동산 죽비’의 실종
2021-05-28 11:26


여당 의총에서 공개된 4·7 보궐선거 이후 정치 지형 변화에 관한 보고서 내용이 여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선거 패배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이 현 정부의 부동산 실정과 LH 투기 사태 그리고 여권 인사들의 부동산 논란 등 부동산정책 실패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집권여당은 여전히 자중지란에 빠져 있는 모습이다. 부동산 민심을 수용해 그동안의 잘못된 정책의 수정과 보완에 착수하겠다며 부동산특위를 띄우고 각종 규제를 완화해줄 것 같은 분위기를 조장하더니 당내 강경파와 당원의 반발에 ‘기존 부동산정책 기조를 유지하겠다’며 도로 아미타불이 되는 모양새다. 심지어 스스로 부추긴 집값폭등과 정책혼선의 원인을 전 정부 탓, 야당 탓, 심지어 국민의 도덕성 탓으로 돌리는 전형적인 ‘남 탓 발언’까지 이어지고 있다. 죽비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 만한 심판을 받았다고 하면서도 두 달이 다 돼가도록 가시적 성과 하나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 틈새를 야당이 재빨리 파고들었다. 주초에 제1야당은 무주택 서민의 내 집 마련 기회를 늘리고 실거주자의 세 부담을 줄이기 위한 대책을 취사선택해 발표했다. 새로운 정책이라기보다는 그동안 야당에서 지속해서 주장해온 여러 정책의 방향과 대책들의 연장 성격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국민의 시선을 사로잡은 대목은, 여당에서도 추진할 것처럼 보였으나 당내 강경파 등의 반대로 지지부진한 대책들을 야당이 선점했다는 점이다. 1주택세대 종합부동산세 과세 공시가격 기준을 현행 9억원에서 12억원으로 높이는 것에 한 발 더 나아가 1주택 재산세 감액 특례 기준을 여당 안(공시가격 9억원 이하)보다 전향적인 12억원으로 높여 1주택자의 보유세 부담을 실질적으로 줄여주겠다는 것이다. 이에 더해 청년과 신혼부부 그리고 무주택 서민의 취득세 감면 대상을 확대하고 대출 규제도 낮추겠다는 내용은, 비슷한 대응책들의 시행 여부를 두고 논의가 한없이 길어지고 있는 여당 진영을 당황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물론 정책의 실행력에서는 비교될 수 없는 집권여당과 힘 없는(!) 야당의 정치 지형이다. 하지만 국민이 부동산정책에 관한 양 진영의 수정·보완 논의에서 어느 쪽 손을 들어줄지는 분명해 보인다. 보궐선거 결과뿐 아니라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그리고 이번 여당의 자체 보고서에서조차) 현 정부의 정책 실패가 팩트가 된 마당에 국민이 지탄하는 정책의 수정과 보완에 주춤거리는 여당의 모습이 못내 아쉽다. 부동산 실정으로 고통받는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친문-비문 간 노선투쟁, 이념의 선명성 논쟁만 일삼는 실망스러운 모습으로 비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국민은 여전히 ‘민심 실패로 규정한 부동산정책 모두를 전면 재검토하겠다’던 신임 여당 대표와 지나치게 높아진 국민의 부동산세 부담을 완화하겠다는 여당 부동산특위위원장의 약속에 일말의 기대를 걸고 있다. 부동산시장은 투기장이며 부동산 소득은 불로소득이라는 이념적 잣대를 거두지 않는 한 주택 문제의 해결은 요원해질 것이다.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를 눈앞에 두고 있는 마당에 득표를 위해서라도 부동산 민심을 거스르지 않아야 할 것이다.

이종인 여의도연구원 수석연구위원·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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