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정류장 이동요청도 없었다”…총체적 부실 드러나는 ‘광주 참사’
2021-06-11 10:25

[헤럴드경제=강승연 기자] 광주 재개발 건물 붕괴 사고가 예견된 참사였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면서 유족과 시민들의 슬픔과 고통은 더욱 커져 가고 있다. 철거 작업이 진행되던 곳의 버스정류장을 다른 곳으로 옮겼으면 참사를 피할 수 있지 않았겠냐는 뒤늦은 한탄도 나온다.

철거업체는 허가를 받을 때 낸 해체계획서와 달리 저층부에서 철거를 하고, 무너질 확률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획과 다른 벽면에서 작업을 시작한 것으로 파악됐다. 반복되는 인재에도 제대로 된 관리·감독이 없었다는 데 시민들은 더욱 분노하고 있다.

예견된 참사였나…철거계획서와 달라지고, 버스정류장도 안 옮겨

11일 강은미 정의당 의원이 확보한 사고 건물의 해체허가신청서·해체계획서에 따르면, 당초 철거 계획은 건물 5층 최상층에 옥탑 구조물이 있어 5층부터 3층까지 순차적으로 철거한 다음 1~2층에서 작업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공개된 공사 현장 사진을 보면, 계획과 달리 건물 중간 층부터 철거 작업이 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 외벽 강도가 가장 낮게 나온 건물 좌측 벽부터 철거해야 하는데도, 후면에서 작업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철거계획서는 철거 순서를 지키지 않을 경우 다른 벽면의 무너짐이 발생할 확률이 있다고 적시하고 있다.


지난 9일 9명의 사망자를 내며 붕괴된 광주 동구 재개발구역 내 건물의 지난 1일 모습. 철거업체가 해체계획서와 다르게 건물 저층부터 철거하는 모습이 촬영됐다. [연합]

그밖에 분진 발생을 최소화하기 물 뿌리기를 병행하는 압쇄기 공법을 썼는데 살수량이 매뉴얼보다 많았다는 의혹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당시 철거업체는 최상층에 크러셔(철거 장비)가 닿을 수 있도록 토산을 쌓고 장비를 그 위에 올려 작업하는 방식을 썼는데, 과도한 살수량으로 인해 토산이 무너져 내렸다는 것이다.

진작부터 인근 주민들 사이에서 공사 현장에 대한 우려가 나오면서 국민권익위원회에 제보가 들어가고, 광주 동구청에도 추가로 민원이 들어갔지만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는 불만도 나온다. 사고가 발생한 버스정류장이 철거 현장 바로 앞에 있었던 터라, 미리 다른 곳으로 옮겼더라면 참사로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란 아쉬움의 목소리도 크다.


지난 10일 오후 광주 학동 사고 현장에서 100m 떨어진 지점에 설치된 임시 버스정류장의 모습. 시내버스 업체 직원들이 돌아가며 달라진 정차 지점을 안내하고 있다. 강승연 기자/spa@heraldcorp.com

광주 동구청 관계자는 “공사를 한다고 인근 버스정류장을 옮기는 절차는 없다”며 “철거업체가 위험성 판단하면 정류장 옮겨 달라고 협조 공문을 보낼 수 있는데, 이번 경우에는 그런 요청이 없었다”고 말했다.

인근 주민 박모(62) 씨는 “철거 건물 주변을 통제할 때 인도만 통제하고 대로는 통제 안 했다”며 “관리·감독하는 사람들이 왜 없었나 어처구니가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빈소·합동분향소 곳곳 오열·탄식…“상상 초월하는 아픔”

이날 오전 사고 사망자 9명 중 4명의 빈소가 차려진 광주 동구 조선대병원 장례식장에는 적막한 분위기 속 침통함이 감돌았다.

사고로 외아들 김모(18) 군을 잃은 어머니 A씨는 “최근에 찍은 아들 사진이 4~5장밖에 없는데, 코로나 때문에 그것마저도 다 마스크를 찍은 사진들이다. 그 사진만 가지고 어떻게 평생을 그리워하며 사느냐”며 “아들이 아빠만큼 키가 크면 가족사진을 찍기로 했는데 찍지 않은 게 너무 후회된다”고 했다.

이어 “세월호 사건을 보며 제3자라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는데, 상상을 초월하는 아픔인 걸 알게 됐다”며 “몇 년 전에도 비슷한 사고가 있었는데 또 일어났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나라가 아니냐”고 가슴을 쳤다.

곰탕집 문을 닫고 돌아오는 퇴근길에 참변을 당한 곽모(64) 씨의 유가족들도 비탄에 빠져 있었다. 곽씨는 당일 출근 전 큰아들의 미역국을 차려놓고 꼭 챙겨 먹으라고 전화하던 엄마였다. 둘째 아들 조일현(38) 씨는 빈소에서 만난 기자에게 “엊그제 어머니와 통화했을 때 늘 하시던 것처럼 ‘밥 먹고 가라’고 당부하셨는데, 그게 마지막 말이 될 줄 몰랐다”고 비통해했다.

전날 오후 광주 동구청 앞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는 조문을 하러 온 시민들의 발길이 내내 이어졌다.

이날 오전 학원에 가기 전 분향소를 찾았다는 박지혜(21) 씨는 “평범한 하루에 그런 일이 일어난 게 믿기지 않아서 왔다. 54번 버스를 자주 타는데, 2021년에 이런 사고가 난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며 눈시울을 붉히다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김군 친구의 어머니 B씨는 전날 밤 비 오는 분향소를 찾아 우산을 들고 한자리에 서서 영정 사진을 한참을 바라봤다. B씨는 “아줌마가 더 따뜻하게 못해 준 것 같아 미안하다”며 “기사 하나하나 볼 때마다 울컥하며 눈물이 쏟아지는데도 보게 된다.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생활을 하다가 가버린 게 너무 슬프다”고 말했다.

sp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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