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경의 현장에서] 관행이 된 전세퇴거 위로금
2021-06-17 11:17


“이제 곧 전세계약 2년이 다 돼가는데 임대인 측에서 ‘1000만원 합의금’을 제시하며 매매가 잘될 수 있도록 미리 나가 달라고 하네요. 합의금 1000만원이면 너무 적은 금액인 것 같습니다. 요즘 얼마 정도 받으면 전세계약갱신청구권 안 쓰나요?”

“5세대짜리 빌라를 갖고 있는 집주인입니다. 만기가 돼 세입자들과 재계약하려는데, 한 집이 문제네요. 6년 동안 보증금 인상을 안 해서 현 시세 대비 9000만원 싸게 살고 있는 분입니다. 월세로 15만원 더 달라고 했더니 그러면 전세보증금 1억5000만원을 빼 달라며 월세 내는 것으로 알겠다고 합니다. 너무 괘씸합니다.”

“집주인이 실거주 들어오겠다고 해서 2년밖에 못 살고 나왔습니다. 아이 학교 때문에 떠나지 못해 전세 가격이 2배 가까이 오른 이 동네에서 ‘영끌’해서 다시 전셋집을 구했어요. 그런데 두 달이 지났는데도 집주인이 빈집으로 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허탈하네요.”

요즘 부동산시장 주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이야기다. 지난해 7월 말 개정 임대차보호법이 시행된 이후 약 1년여 만에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는 이 같은 새로운 주거문화(?)가 정착됐다.

계약갱신청구권 때문에 내 집을 팔기 위해 ‘합의금’을 줘야 하고, 그 금액은 ‘이사비+중개수수료’를 뛰어넘는 게 예사다.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의왕 아파트를 매각하면서 갱신권을 사용하겠다는 세입자에게 법적 근거가 없는 ‘퇴거 지원금’을 지급한 사례를 전 국민이 일찍이 접했다.

또 임대차보호법에 따른 ‘전·월세 5% 인상 제한’이 시행되면서 세입자의 목소리는 더 커졌고, 그동안 사정을 봐줬던 집주인은 이를 ‘괘씸하다’고 표현한다. 그런가 하면 집주인이 실거주를 들어오겠다고 해서 급하게 이사했는데 그 집이 빈집 상태임을 알고 허탈해하는 세입자도 속출한다. 적어도 누군가는 바뀐 정책으로 개선된 점을 체감해야 하는데, 승자는 없고 패자만 넘친다.

운 좋게 재계약에 성공한 세입자도 마찬가지다. 2년 뒤에 돌려받는 보증금으로는 같은 동네의 같은 면적 아파트 전세를 구할 수 없을 공산이 크다. 2년 동안 열심히 소득을 늘릴 수도 있지만 급등하는 자산가격을 소득증가 속도가 따라잡기는 역부족이다.

전세 매물이 시장에 다량 출회되면 이 같은 모습은 어느 정도 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정부 정책은 전세를 실종시키는 방향으로만 펼쳐지고 있다.

실거주 요건이 강화되면서 대단지 아파트 입주장 때 벌어지는 일대 전세 가격 하락도 이제 옛일이 됐다.

주변 시세에 비해 싼값에 공급되는 재건축 아파트 전세 매물도 급격히 줄었다. 정부는 6·17 대책으로 보유만 하고 실거주하지 않은 집주인에게는 조합원 분양을 못 받게 하겠다고 예고했다. 갱신이 안 되는 세입자는 같은 동네에서 배로 오른 보증금을 내고 새 전셋집을 구하고 있다.

집주인도 세입자도 모두 불만이다. 집권 이후 4년 내내 ‘부동산시장 안정’을 외쳐온 문재인 정부의 ‘웃픈’ 현실이자 ‘민낯’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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