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통화정책 정상화 논의로 한때 약세를 보였던 채권시장이 다시 달아오르고 있다. 인플레이션 전망이 강화될 경우 할인율 저하로 채권은 상대적인 매력도가 떨어지게 되는데, 인플레이션이 일시적일 거란 연준의 입장을 시장이 사실상 신뢰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연준은 7일(현지시간) 지난달 15~16일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을 공개했다. 연준 위원 대다수는 아직 테이퍼링(자산매입 점진축소)을 실시할 여건이 무르익지 않았다는 의견이었지만, 여러(various) 참석자들은 테이퍼링 시행 여건이 예상보다 빠르게 충족될 수 있다고 했고, 테이퍼링 시행시 국채보다 주택저당증권(MBS)이 우선 대상애 돼야 한단 구체 언급도 나왔다.
김일혁 KB증권 연구원은 ‘여러’라는 표현이 의사록에 자주 쓰이지 않아 모호하지만, 과반 이상을 의미하는 ‘많은(many)’보단 적고 ‘대여섯(several)’과 비슷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처럼 연준은 지난 회의에서 테이퍼링에 대해 진지한 논의를 개시, 시장이 긴축의 시그널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여지가 있었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이에 대한 배경으론 최근 발표되는 경제지표들이 예상치를 하회하고 있단 점이 지목된다. 기대 수준의 성장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단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단 것이다. 성장이 더디면 인플레이션 우려도 완화되고, 연준이 긴축으로 조기 선회할 가능성이 낮아진다.
무엇보다 연준이 통화정책 정상화의 최우선 요건으로 삼고 있는 고용이 생각보다 빠르게 회복되지 않고 있다. 이날 발표된 5월 채용공고도 약 920만건으로 역대 최대치 수준을 이어갔다. 채용공고가 많다는 건 그만큼 고용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고 있단 뜻이다.
이에 경기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아 중앙은행의 돈풀기가 계속되는 이른바 ‘골디락스(Goldilocks)’ 국면이 다시 오고 있단 분석이 제기된다. 시장은 경제가 완연한 회복세에 접어들지 못한 상태에서 완화적 통화정책이 시행되는 골디락스 시기를 가장 선호한다.
국채 공급 부족과 정부 지출 확대도 수익률 급락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번주는 초단기물 제외한 국채 입찰이 부재한 가운데 정부의 일반회계(TGA) 잔고 감소가 국채 공급을 제한하는 효과를 주고 있다.
김상훈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미국 장기물 금리 수준이 미국 경기 대비 상당히 낮으며, 향후 출구전략 및 인플레이션에 대한 과도했던 우려가 되돌려지는 가운데 수급 호재가 겹치면서 큰 폭 하락을 견인했다”고 말했다.
지난달말 기준 미 정부 잔고는 8519억달러로 부채한도협상 종료일인 이달 말까지 잔고 규모를 4500억달러로 줄여야 한다. 이는 한달도 채 남지 않은 기간 중 4000억달러 가량의 현금을 방출해야 한단 뜻으로 이에 늘어날 유동성에도 시장이 반응했단 분석이다.
강승원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초단기 자금시장에서 현금은 그야말로 넘쳐나는 상황”이라며 “일부 현금이 점차 장기 영역으로 넘어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연준의 정책방식 변화에도 시장이 적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연준은 2013년 테이퍼 텐트럼(긴축발작) 경험에서 볼 수 있듯이 선제적 방식을 고수해 왔는데, 최근엔 후행적(outcome based) 방식으로 선회하는 모습이다. 권아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2013년에 연준이 시장이 기대를 앞질렀다면, 이번 테이퍼링은 시장의 기대와 속도를 맞춰갈 것”이라며 “시장과 보조를 맞추는 테이퍼링이라면 2013년과 같은 충격을 예상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서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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