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방통행 ‘규제’에 新보호무역주의...제조기업 해외로 떠난다
2021-08-23 11:19


한국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는 제조기업이 떠나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의 일방통행 규제와 반(反)기업 정서에 못 버텨 한국을 떠나는 ‘신(新)디아스포라(diaspora)’다.

국내 제조기업들의 ‘탈(脫)한국’ 속도는 매년 빨라지고 있다. 예전엔 중소·중견기업들을 중심으로 해외 이전이 이뤄졌다면 이제는 대기업들이 더 적극적으로 현지 투자를 검토하고 실행으로 옮기고 있다.

이와 관련 재계 관계자는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이 자국 중심의 신보호무역주의를 펼치는 사이, 국내에서는 정부 규제에 지친 제조기업들의 이탈이 가속화하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상황”이라고 지적한다.

신보호무역주의는 미국·유럽 등 최근 선진국이 주도하고 있는 보호무역 강화 기조를 말한다.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미국이 ‘탈중국 무역정책’을 강조하고, EU(유럽연합)에서는 환경보호를 앞세워 해외 기업들에 대한 ‘탄소 장벽’을 세우고 있다. 주요국들이 반도체·배터리 등 자국에 진출하는 기업들에게 막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도 이러한 흐름의 일부다.

국내 제조기업들의 투자 경향에서도 ‘탈한국’ 경향이 두드러진다.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이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수출입은행 자료를 분석한 결과 작년 기준 국내 제조업종별 연간 해외직접투자(ODI) 금액은 반도체(2조6000억원), 전기장비(2조3000억원), 자동차(2조2000억원) 순으로 조사됐다. 반면 같은 기간 외국 기업들의 국내 투자(FDI)는 반도체(400억원)·전기장비(900억원)·자동차(4400억원) 등에 그쳤다.

FDI에서 ODI를 뺀 ‘직접투자 순유출액’ 역시 지난 10년 동안 연 평균 7조5000억원에 달한다. 이를 일자리로 환산하면 매년 4만9000여명에 달하는 고용기회가 한국에서 사라진 셈이다.

올해는 한·미 정상회담을 전후로 4대 그룹이 천문학적인 현지 투자를 발표하면서 제조업 직접투자 순유출액이 사상 최대치를 경신할 것으로 관측된다. 삼성전자는 신규 파운드리 공장 구축에 총 170억달러(약 20조원) 투자 계획을 밝혔고, 현대차그룹도 미국 내 전기차 생산·충전인프라 확충 등에 총 74억달러(약 8조4000억원)를 투입할 예정이다.

최근에는 국내 제조기업과 현지 기업과의 합작사(JV) 설립이 두드러지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제너럴모터스(GM)와 ‘얼티엄셀스’를 설립하고 현재 미국 오하이주 공장에 35GWh(시간당 기가와트) 규모의 공장을 건설 중이다. 이어 미국 테네시주에 총 2조7000억원을 투자해 35GWh 규모의 배터리 공장 설립에 나섰다.

SK이노베이션도 포드와 협력해 각각 3조원씩, 6조원 규모를 투자해 합작법인 ‘블루오벌에스케이’를 세웠다. 합작사를 통해 포드에 공급하는 배터리는 연간 약 70GWh 규모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은 아예 인도네시아 현지에 전기차 배터리 셀 합작 공장을 세운다. 국내 완성차 업체와 배터리 기업이 해외에 합작회사를 설립한 첫 사례로, 인도네시아 정부도 공장 설비·부품의 관세 면제와 인센티브 제공 등 적극적인 유치전을 벌인 바 있다.

전문가들은 국내 제조업의 매력도를 높이기 위한 핵심 요소로 노동생산성 강화와 노동유연성 확보, 규제개혁 등을 급선무로 꼽는다.

제조업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정책 지원도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정만기 한국산업연합포럼(KIAF) 회장은 “주요 신산업에 대한 자율규제 도입 등 과감한 규제혁신을 단행하고 연구개발(R&D)과 시설투자에 대한 세제감면 및 첨단기술에 대한 인력양성 등 정부의 지원 노력이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대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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