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금리·수급·경기 쏙 빼고…“서울 집값 오른 게 언론 탓”이라는 국토연… [부동산360]
2021-09-02 11:30


서울 송파구 일대 아파트 단지의 모습 [헤럴드경제DB]

[헤럴드경제=김은희 기자] 서울과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 아파트 가격이 오른 것은 언론 영향이 크다는 연구 결과를 정부 출연 연구기관이 발표했다. 거래량이나 거래가격, 최고가격 경신 자체보다도 이를 다룬 언론 보도가 향후 아파트값 상승을 예상하게 만들어 기존보다 높은 가격에 아파트를 사게끔 했다는 분석이다.

국토연구원이 지난 1일 발표한 ‘주택거래가격 결정에 대한 행동경제학적 이해’ 보고서를 들여다보면 꽤 그럴듯하다. 실거래 자료와 언론 보도 추이를 살펴보니 거래량과 평균가격, 최고가격, 최고가격 경신 언론 보도 건수가 사람들의 기대가격 형성과 거래 행태에 영향을 미쳤고, 그중에서 언론 보도 건수의 영향력이 가장 셌다는 것이다.


[자료=국토연구원]

어쩌면 복잡한 모형을 굳이 활용하지 않더라도 이해될 만한 내용이다. 가격 상승이 기대 가격을 증가시켜 전보다 비싼 값에 주택을 사는 이들이 늘었고 그래서 다시 가격이 올랐다는 얘기다.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러나 국토연은 드넓은 숲 속에서 나무만 봤다. 정책, 금리, 수급, 실물경기 등 부동산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수많은 요인 가운데 가격지표와 언론 보도만 살폈다. 그것도 다른 변수의 영향력을 통제하지도 않은 채 단순 비교했다.

조금 과장하자면 정확한 원인 분석없이 ‘가격이 오르니까 계속 가격이 오르죠’라고 말한 바와 다름없다. 가격이 오른 뒤 다시 오르는 사이에 원인이 된 과잉 유동성과 낮은 금리, 공급 부족과 정책 실패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애초에 가격이 왜 올랐는 지에 대한 이유도 찾지 않았다.


[자료=국토연구원]

언론 보도의 영향력에 대한 분석도 불충분하다. 물론 언론 보도는 사람들의 심리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국토연이 주목한 최고가격 경신 보도는 거래가 발생한 이후에 나왔다. 원인으로 단언하기에는 결과값에 가까운 후행 변수인 셈이다.

국토연의 분석대로 최고가격, 최고가격 경신 언론보도와 기대가격 상승이 유의미한 양(+)의 상관관계를 갖는다고 하더라도 이를 인과관계로 풀이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이번 연구 결과가 특히 논란이 되는 이유는 국토교통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에서 내놓은 분석이기 때문이다. 연구목적이 어찌 됐든 부동산 민심이 바닥을 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보고서 발표는 ‘내 탓이 아니오’를 외치는 꼴이 됐다. 정부가 부동산 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으로 비칠 뿐이다.

부동산 시장은 어렵다.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다 보니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울뿐더러 현 상황을 설명하기조차 쉽지 않다. 특히 부동산을 수십 년간 연구해온 전문가도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게 현재의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이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역대급 부동산 시장 ‘불장’이 정부만의 탓은 아니다. 그렇지만 가장 무거운 책임감을 가져야 할 주체는 단연 정부다. 정부가 누군가를 탓해선 안 된다. 시장을 정확하게 보지 못하면 해결책도 찾지 못하기 마련이다.




ehki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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