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난생 처음 청약받은 집에 11월 입주를 앞두고 절망적인 상황이 벌어졌다. 정부에서 대출규제를 강하게 추진하면서 은행지점에서 ‘보금자리론’이 가능하다는 답을 받은 지 하루만에 담당은행 본점에서 대출을 중지하라고 해 막혀버렸다. 우리 아파트 입주예정자 카페에는 절망스런 탄식과 정부에 대한 분노의 댓글이 매일매일 올라온다.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야만의 정책이다. 옛말에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라는 말이 있는데 그게 바로 지금의 상황이다.”(청와대 국민청원을 올린 50대)
2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금융당국이 은행권에 가계대출 총량 관리를 주문하면서 시중은행들은 대출 한도를 대폭 축소하고 나섰다. 내 집 마련을 위해선 대출이 필수불가결한 무주택자들은 절망감을 표출하고 있다.
서울 시민들이 주거로 인해 고통받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사진=연합]
위 국민청원을 올린 50대 가장은 “무주택으로 50년을 살고 2년전 남양주에서 공공분양으로 청약(24평 아파트)에 당첨됐다”면서 “‘생애최초 특별공급’으로 지원했고 높은 경쟁률을 뚫고 당첨돼 아내와 기뻐하며 지난 2년간 아파트가 한층한층 올라가는걸 지켜봤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입주를 앞두고 정부기금대출인 보금자리대출이 막혔고 남은 방법인 집단대출도 은행이 확답을 주지 않아 1600가구가 가슴졸이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호소했다.
또다른 국민청원인은 2년전 신혼부부 특별공급으로 당첨된 30대 후반 남성인데, 이 사람은 “2년전 청약에 당첨됐는데 현재 시점에 와서 대출규제를 적용받게 돼 그간의 계획이 무너졌다”고 밝혔다.
그는 “보금자리론을 담당하는 은행이 정부규제로 인한 본사의 지침으로 대출을 중단해버렸다”면서 “전매제한이 있는 아파트라 바로 팔지도 못하고 무주택자 아니면 청약당첨도 안됐었는데 제발 들어가 살게만 해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1주택이 목표인 저는 정부가 부동산 가격을 잡든 말든 상관없다”면서 “다만 2년전 계약한 서민 실거주자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대출규제를 꼭 구분해달라”고 덧붙였다.
청약으로 1주택자가 될 기회가 생긴 무주택 실수요자들의 민심이 날로 험악해지는 가운데, 정부는 100% 실수요인 전세대출마저 건드릴 것으로 보인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이 전세대출이 갭투자에 악용돼 왔다면서 거듭 규제 가능성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고 위원장은 지난달 27일 경제·금융시장 전문가 간담회 직후 “전세대출의 여러 조건이 좋고 하다 보니까 많이 늘어나는 측면도 있다”면서 “이런 면을 종합적으로 보도록 하겠다”고 말해 전세대출 규제를 검토하고 있음을 밝혔다.
전세대출이 급증한 배경엔 전셋값 상승 외에도 투기수요가 있다는 것이 현재 금융당국의 인식이다. 저금리로 빌릴 수 있다 보니 여윳돈이 있어도 전세대출을 받아 ‘갭투자’에 나서는 사람이 많다고 보는 것이다.
업계에선 곧 시중은행이 전세대출 우대금리를 축소하거나 금액 한도를 줄이고, 전세대출에도 ‘자금계획서’를 도입하는 수순으로 현실화 될 수 있다고 본다.
서울 강서구의 아파트단지 모습[헤럴드경제DB]
하지만 정부의 인식처럼 차주들이 전세대출을 받아 그 돈으로 다른 주택을 구매하는데 썼다는 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5대 시중은행의 전세자금 대출 98%는 실제 전세 계약과 관련된 실수요 대출로 확인됐다. 집주인 통장으로 곧바로 대출금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다른 투자 등에 활용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전세보증금 담보 생활안정자금 대출 비중은 2%에도 못 미치고, 더구나 이 대출의 상당 부분도 실제 생활고와 관련이 있다는 게 은행권의 설명이다.
또, 부동산 업계에선 ‘갭투자’는 가계대출 증가와 직접적 연관이 없다고도 말한다. 갭투자라는 것이 기존의 전세계약을 승계하든, 새롭게 전세 세입자를 구하든 간에 매수자는 본인 소유의 현금으로만 주택을 취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갭투자를 없애서 집값을 잡겠다는 말은 전세제도를 없애겠다는 말과 사실상 똑같다”면서 “갭투자하려는 사람은 현금을 들고오는데 이를 막을 방법이 없고, 전세제도가 존재하는 한 ‘무이자 레버리지’를 활용하는 사람도 함께 생겨날 수 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현직 공인중개사도 최근의 ‘갭투자’는 투기 성격과 거리가 멀다고 설명한다.
강서구의 A공인 대표는 “요즘 ‘갭투자’자는 시가 17억원짜리 아파트를 7억원짜리 전세를 끼고 자기 돈 현금 10억을 들고와서 매수계약한다”면서 “이건 미리 전세낀 집을 사두는 개념이지 단타 수익을 노리는 수법이 전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취득세 중과는 물론이고 1년~2년 보유후 매도할 때 양도세가 얼마나 세게 부과되는데 요즘 누가 갭투자를 하겠느냐”면서 “아파트 매물이 적으니 세 낀 집의 거래가 늘어난 것일 뿐이고, 이런 거래에도 죄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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