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시각] 한반도 평화시계, ‘힘차게’ 아닌 ‘정확히’ 돌아야
2021-11-01 11:31


유럽 순방에 나선 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가동을 위한 발걸음이 분주하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린 이탈리아 로마를 방문한 문 대통령의 시선은 줄곧 한반도 평화를 향했다.

문 대통령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등을 만나 한국의 대북정책과 한반도정책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29일 이탈리아 로마교황청에서 가진 프란치스코 교황과의 만남은 백미였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지난 2018년 9월에 이어 다시 한번 교황의 방북을 공식 제안했고, 이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면서 북한이 초청장을 보내면 기꺼이 가겠다고 화답했다.

세계 12억 가톨릭 신자의 정신적 지주인 교황의 방북이 현실화된다면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교착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반도 비핵화 협상과 평화프로세스 재가동에 커다란 동력이 될 것이 분명하다. 정부 안팎에선 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연내 한반도 모처에서 대면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곧바로 사상 첫 화상정상회담을 하고 내년 2월 중국에서 열리는 베이징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바이든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까지 한자리에 모여 종전 선언에 서명한다는 시나리오가 공공연히 떠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이인영 통일부 장관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정상외교에 힘을 보탰다. 정 장관은 G20 정상회의 계기에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한미·한중 외교장관회담을 갖고 종전선언을 비롯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가동 방안에 대해 협의했다. 통일부 장관으로서 이례적으로 문 대통령 순방을 수행한 이 장관도 세계식량계획(WFP)과 세계보건기구(WHO), 국제적십자연맹(IFRC), 그리고 교황청 관계자들과 만남을 이어가며 종전 선언에 대한 지지를 당부하고 대북 인도주의 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임기 6개월을 남겨두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불씨를 되살리려는 문 대통령의 진정성엔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비무장지대(DMZ) 폐철조망을 녹여 만든 십자가를 전시한 산타냐시오성당 전시회를 찾아 “성경에 전쟁을 평화로 바꾼다는 상징으로 창을 녹여 보습을 만든다는 구절이 있다”며 “이 십자가는 헤어진 가족을 만나고 싶다는 이산가족의 염원, 평화롭게 지내고 싶다는 대한민국 국민의 염원을 담았다”고 밝힌 대목에서는 절박감마저 느껴진다.

다만 짧게는 종전선언, 길게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여정을 향한 행보에서 적잖은 우려 지점도 드러나고 있다. 교황청이 교황의 방북 관련 발언을 공식 발표하지 않고, 미국이 한·미 외교장관회담 결과 종전 선언에 대한 언급 없이 한반도 비핵화에 무게를 싣는 등 청와대와 외교부의 발표와 미묘한 온도차를 보인 것은 석연치 않은 뒷맛을 남긴다.

문 대통령은 이탈리아 방문을 마친 뒤 “한반도 평화의 시계가 다시 힘차게 돌아갈 것이라 믿는다”고 밝혔다.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얘기다. 그러나 시계는 힘차게 돌아가는 게 아니라 정확하게 돌아갈 때 존재의 의미를 지닌다. 문 대통령의 좌우명으로 알려진 ‘어려울수록 원칙으로 돌아가라’를 새삼 곱씹어 본다.



shind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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