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법정기념일 된 ‘한글 점자의 날’을 맞으며
2021-11-03 11:21


요즘 길거리, 기차, 승강기 등에서 자주 접하는 6개의 점이 있다. ‘한글 점자’다. 점자는 시각장애인이 손끝으로 만져 읽을 수 있도록 만든 문자다. 한글 점자는 우리말의 표기 수단인 한글을 점자로 적기 위해 개발된 문자 체계로 초성·중성·종성을 모아쓰는 우리말 표기 방식에 적합하게 고안됐다.

한글 점자는 ‘시각장애인의 세종대왕’으로 불리는 송암 박두성 선생이 1926년에 창안했다. 박 선생은 일제강점기 제생원 맹아부 교사 시절 일본어 점자로 교육해야 하는 현실의 부조리를 깨닫고 7년간의 연구를 거쳐 1926년 11월 4일에 한글 점자 ‘훈맹정음(訓盲正音)’을 발표했다.

‘한글 점자의 날’은 선생이 한글 점자를 발표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훈맹정음이 발표된 1926년 11월 4일은 공교롭게도 한글날 기념식(가갸날·음력 9월 29일)이 처음으로 거행된 날이기도 하다. 이는 한글과 한글 점자가 다르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특히 올해 한글 점자의 날의 ‘법정 기념일’ 지정 이후 처음으로 맞는 기념일이어서 더 뜻깊다. 그동안 점자의 날은 시각장애인 관련단체들이 주관해서 기념해왔다. 그러던 중 2019년 93돌 점자의 날 기념식에서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장이 문화체육관광부에 점자의 날을 법정 기념일로 지정해 줄것을 요청하면서 그 씨앗이 뿌려진다. 그 후 많은 이의 노력 끝에 2020년 12월 8일에 점자법이 개정되면서 열매를 맺었다.

필자가 점자를 처음 접한 1970년대에는 작은 송곳 모양의 점필을 이용해 직접 손으로 점자를 찍었다. 점자는 약간 두꺼운 종이에 찍어야 하는데 점자지를 살 돈이 없어 당시 무료로 나눠주던 반공 잡지를 뜯어 점자지를 대신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컴퓨터를 이용해 문서를 입력하면 점역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점자 번역을 해서 인쇄기로 출력까지 해준다. 부피가 크다는 이유로 점자책을 일회용으로 읽고 버리는 세상이 됐으니 상전벽해와 같은 격세지감을 느낀다.

요즘은 점자를 통해 세상을 들여다보는 일이 점점 더 편해지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16년 5월에 점자법을 제정해 ‘점자가 한글과 더불어 대한민국에서 사용되는 문자이며, 일반 활자와 동일한 효력을 지닌다’는 것을 공인했다. 그리고 ‘한국 점자 규정’을 계속 보완해 시대의 흐름에 맞는 점자 사용환경을 마련해가고 있다. 특히 국립국어원에 특수언어진흥과가 설치돼 점자에 관한 기초 연구를 하고, 외국의 점자 규정과 지침을 번역해 외국어를 배우려는 시각장애인에게도 길을 열어주고 있다.

많은 이가 점자 발전을 위해 노력하지만 여전히 아쉬운 점도 있다. 잘못 번역된 점자가 시각장애인의 문자생활을 혼란스럽게 하지 않게 완성도 높은 점역 프로그램이 개발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한글 점자를 읽고 쓰는 시각장애인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필자가 특수교육과 상담을 박사 과정까지 공부할 수 있었고, 맹학교 교사와 장애인복지관장으로 34년간 직업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고마운 점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글 점자의 날이 법정 기념일로 지정된 것에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김호식 2021년 한글발전유공 대통령표창 수상자



yj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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