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광장] 골드워터 규정과 국민의 알 권리
2021-11-12 11:24


1964년 미국 상원의원 베리 골드워터는 한 잡지사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승리해 약 7만5000달러( 약 6억원)의 보상금을 받았다. ‘팩트’라는 잡지사가 대통령에 출마한 골드워터가 대통령직을 수행하기에 적합한지에 대해 2400여명의 정신과 의사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해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이었다.

이 판결 이후로 정신과 의사가 직접 면담하지 않은 공적 인물의 정신적인 문제에 대해 언론에 의견을 밝히는 것이 비윤리적인 행위로 여겨졌다. 미국정신과학회와 미국심리학회 윤리 규정에도 이 조항이 포함돼 있다.

한편 이 규정은 2016년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출마를 계기로 다시 논란이 됐다. 일부 정신과 의사나 심리학자가 트럼프는 자기애적 성격 장애가 있다며,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맡기에는 너무 위험한 인물이라고 언급하면서 골드워터 규정을 어긴 것이었다. 자기애적 성격 장애는 자기중심적 성향, 자기 능력에 비해 과도한 자신감을 가지며, 공감 능력이 부족해 자신의 목적을 위해 상대를 이용하기도 하며, 오만하고 건방진 행동을 많이 하는 성격적 특징이 있다. 예일대 법정신의학의 한국계 여교수 밴디 리는 일간지 USA투데이에 “정신과적 진단 과정에서 대면 인터뷰 그 자체보다는 그 사람의 행동이나 언어 등을 관찰하는 것이 중요해졌으므로 특정 인물에 대한 전문적인 의견을 개진하기 위해 직접 면담이 필수적이지는 않다”고 직접적으로 골드워터 규정을 반박했다. 그녀는 예일대에서 트럼프의 정신상태에 대해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것에 대한 윤리적 문제를 다루는 콘퍼런스를 주최했고, 이 내용은 나중에 ‘도널드 트럼프라는 위험한 사례’라는 책으로 출판되기도 했다.

한편 1976년 타라소프 판결은 골드워터 규정과 다른 판단을 한다. 1969년 8월 버클리대 학생상담소에서 상담하던 학생이 자신의 여자친구인 타라소프를 살해할 계획이 있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상담을 진행한 의사나 학교는 타라소프나 가족들에게 아무런 사전 경고를 하지 않았고, 약 2개월 후 타라소프는 남자친구에게 살해당했다. 가족들은 위협을 알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대학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이 판결을 계기로 정신의학자들은 어떤 개인이 다수의 사람에게 위험하다고 판단된다면 의사로서 공개적으로 발언해 잠재적 피해자들에게 위험을 경고, 보호해야 할 적극적 의무가 있다는 주장을 했다. 이런 측면에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되면 그의 성격적인 문제로 인해 미국민을 위험에 빠뜨릴 가능성이 크고 더 나아가 전 세계가 위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의사들이 더 공개적으로 논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최근 국내에서도 이런 논란이 있었다.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자에 대해 ‘소시오패스’라고 공개적으로 밝힌 정신과 의사가 논란의 중심이 됐다. 개인 면담도 없이 공인의 정신상태에 대한 의견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과 대통령 후보자에 대해 국민에게 그의 정신상태를 알려야 한다는 의견은 골드워터 규정과 타라소프 판결 사이에서 고민하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kt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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