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뽑은 2000여명 모두 내보낼 판”…울고 싶은 대중음악계
2021-12-22 11:21


코로나19 이후 대중음악계는 ‘삶의 터전’을 잃은 업계 관계자들의 힘겨운 버티기가 이어지고 있다. K-팝은 그 어느 때보다 최고의 시기를 맞았지만 장르별 차별이 극심해 공연 줄취소를 겪는 타 장르 음악 관계자들은 추운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은 한국 인디밴드 1세대 크라잉넛의 공연 모습. [한경록 SNS 캡처]


“지금까지 꿈을 짓밟히며 2년을 버텨왔습니다. 그리고 기다렸습니다. ‘언젠가는, 또 언젠가는 나라의 배려가 있을 것이다. 이렇게까지 꿈을 짓밟고 모른 척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믿어왔습니다.”(청와대 국민청원 중)

한국음악레이블산업협회(이하 음레협)는 지난 10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소상공인 손실보상제 전면 대검토를 부탁드립니다’라는 글을 통해 이렇게 적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도래한 지 2년, ‘삶의 터전’을 잃은 대중음악계의 힘겨운 버티기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대중음악계의 ‘빛과 그림자’는 코로나19 이후 두드러졌다. K-팝은 그 어느 때보다 최고의 시기를 맞았지만 장르별 차별이 극심해 사각지대에 있는 타 장르 음악 관계자들은 공연 줄취소 속에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음레협에 따르면 올해 대중음악계 매출은 전년 대비 78% 하락했다. 지난해 2월부터 올해 6월까지 1094건의 공연이 취소됐고, 금전적 피해는 무려 1844억 원에 달했다. 코로나19 도래 이후로 집계 범위를 넓히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예술경영지원센터에 따르면 2020년 2월부터 현재까지 대중음악공연 분야 매출은 코로나19 이전 대비 약 90% 이상 하락했다. 올 상반기 대중음악공연장을 찾은 관객 수는 17만명에 불과하다. 지난 2019년 하반기 233만여명이 관객이 들었던 것과 비교하면 현저히 줄어든 수치다. 심지어 2020년 상반기(33만 9000명)보다도 줄었다.

대중음악계의 공연 취소는 업계의 줄도산을 의미한다. 비단 아티스트와 제작사뿐만 아니라 음향, 조명, 악기업체들이 줄줄이 묶여 일자리를 잃고 있다. 대중음악계는 그런데도 “식당, 카페, 유흥업소 등의 업종 외에는 보상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것은 물론 여러 지원책에선 외면받고 있다”고 호소한다.

이종현 한국대중음악공연산업협회장은 “한국의 수많은 아티스트가 월드투어를 진행하는데 정작 우리나라에선 공연을 개최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대중음악공연업계는 정부의 지침이 발표되기 전부터 가장 높은 수위의 방역을 자체적으로 진행해왔다. 그런데도 차별 대우를 받고 있어, 정부에서 대중음악공연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갖고 있다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대중음악공연은 클래식, 뮤지컬, 무용 등 타 장르와는 달리 ‘핀셋 규제’ 대상이나 손실 보상 과정에서 타 장르와 함께 묶이며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 7~9월 영업 손실을 보상해주는 소상공인 손실보상에서도 대중음악공연계는 제외됐고,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원하는 창작지원사업, 소비쿠폰지원사업에도 대중음악공연은 제외되고 있다. 일부 온라인공연과 일자리사업 등에 대한 지원은 있지만 현장에선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4월 한국콘텐츠진흥원은 228억원 규모의 ‘대중음악공연 분야 인력지원’사업을 시작했다. 최장 6개월간 월 180만원의 인건비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문제는 이 사업이 개인 기준 미취업자나 프리랜서, 공연 업종 기준 최대 5인까지 신규 채용일 때만 해당한다는 점이다. 지난 5월 3일까지 신청이 완료된 만큼 대부분의 신규 채용인원에 대한 지원은 12월이면 끝이 난다. 업계에선 “올해 말이면 지원받던 대부분의 신규 직원 2000여명이 다시 일자리를 잃는 대규모 실업이 예상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려는 이미 현실이 되고 있다. 익명을 요청한 소규모 공연제작사 관계자는 “인디 뮤지션의 경우 앨범을 제작하면 공연을 통해 수익을 내야 하는데 공연을 열지 못하니 앨범 제작에도 소극적인 상황이다. 이를 기획하는 중소 공연기획사들도 줄줄이 수익을 내지 못하니 직원들을 함께할 수 없는 여건이 됐다”며 “있는 직원도 유지하지 못하는데 신규 채용을 지원하는 일자리정책은 현장 여건에는 맞지 않는, 탁상공론식 행정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공연기획사 관계자는 “공연을 하지 못하는데 신규 채용을 해서 인력을 늘리라는 것이 어불성설”이라며 “이 정책은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됐다는 보여주기식 통계 확보용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대중음악계 현실과는 괴리가 큰 정책”이라고 꼬집었다.

고기호 한국대중음악공연산업협회 부회장은 “직원 채용을 하다 보니 채용 이후 유지비용이 발생하는데, 공연은 하지 못해 일자리 보존이 어려워졌다”며 “신규 인력에 대해 지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채용된 직원을 유지할 방법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2022년에도 같은 규모로 해당 분야에 지원할 예정이다. 이혜은 한국콘텐츠진흥원 음악패션산업팀장은 “인력지원사업에 대한 문제는 해결해야 할 숙제다. 기존 고용지원사업과는 다소 이질적인 면이 있으나 최대한 노력해 풀어보려고 한다. 불편한 지원 방식에 대해 내부에서도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고 부회장은 “대중음악계가 억울함이 없도록 정부 정책의 세심한 정립이 필요하다”며 “자생적으로 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차별된 시선을 거두고 공평한 시선과 잣대, 장르 간 공평한 지원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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