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대용의 현장에서] 공수처 1년을 생각하다
2021-12-28 11:37


해마다 이맘때면 지난 일년을 돌아보게 된다. 영속적인 시간의 흐름에 선을 그어놓고서 날이니 달이니 해니 하는 것이라지만, 세밑이라고 하면 마음가짐을 새로이 해야 할 것만 같아서 한 해 일을 모아 생각한다. 업무적으로도 그렇다. 뭘 하고 뭘 안 했고, 뭘 잘하고 뭘 못했는지 톺아보면서 출입처 생각도 한 번 해보는 것이다. 그러자면 올해 출범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를 빼놓을 수 없다.

공수처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곱지 않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여론조사 결과로 수치화 하지 않아도, 첫돌도 되기 전에 폐지론이 공공연하게 거론된다는 것 자체가 그 방증이다. 폐지론이 공수처를 맹목적으로 반대하는 이들의 주장에 불과했다면 터무니없는 소리 정도로 쉽게 흩어졌을 테지만, 공수처 출범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던 법조인들조차 “뭐하는 건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젓는 게 현실이다.

공수처가 비판받는 근본적 원인은 출범 목적을 잊어버린 데 있다. 홈페이지를 열면 첫 화면에 ‘국민의 신뢰를 받는 인권 친화적 수사기구’라고 나온다. 지향점이니 대문 앞에 적었을 텐데 공수처는 자꾸만 그 반대방향으로 움직였다. 대표적인 게 최근 거센 비판을 받는 ‘통신자료 조회’다.

수사기관이 통신사에 통신자료 제공을 요청해 정보를 확보하는 일은 오래전부터 기본권 침해 지적을 받아왔다. 현행법상 불법은 아니라 해도, 당사자가 전혀 알 수 없는 사이 주민번호·주소 등에 대한 확인이 쉽게 이뤄지기 때문이다. 합법을 내세운 ‘저인망식 수사기법’으로 널리 쓰이면서 헌법소원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런데도 검찰과 경찰, 국가정보원이 하던 방식을 공수처가 그대로 활용해 무분별하고 광범위하게 통신자료를 조회한 사실이 드러났다. 심지어 공수처에 비판적 보도를 한 기자를 중심으로 통화 상대방을 찾다가 가족을 비롯해 고위공직자 사건과 무관한 시민들이 대상에 포함된 사실이 알려지며 더욱 논란을 키웠다. 공수처는 24일 입장문을 통해 “과거 수사 관행을 깊은 성찰없이 답습했다”고 시인하고 유감을 표명했지만, 경위 설명과 사과는 담기지 않았다.

강제수사 과정에서 보였던 모습들도 미숙하다는 말만으로 그러려니 할 수가 없다. 고발사주 의혹 사건 핵심 피의자인 손준성 검사에 대해 청구한 체포영장과 두 번의 구속영장이 모두 기각됐는데, 법원은 두 번째 구속영장 청구마저 “소명이 부족하다”고 했다. 수사 정도도 고려하지 않고 인신 구속부터 시도하다가 출범 후 청구한 모든 체포·구속영장이 기각됐다. 앞서 적은 건 어디까지나 먼저 생각난 예시다.

공수처를 여권이 출범시킨 ‘금지옥엽’으로 여기는 이들은 “이제 갓 태어난 아이에게 뛰라고 요구해선 안 된다”며 마냥 두둔한다. 하지만 공수처를 향한 비판의 이유는 ‘뛰지 못해서’가 아니라 되레 ‘조급하게 뛰려 해서’ 쪽에 가깝다. 비판이 그저 야속하게만 들리지 않으려면 출범 목적에 걸맞은 성장과 이를 위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개혁의 산물이라며 만들어진 고위공직자 수사기관도 본연의 기능을 못하면 개혁의 대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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