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금수저들이 세금을 회피하는 법, ‘피넛 버터링’
2021-12-29 11:10


[123rf]

미국 ‘슈퍼리치’들 사이에 중소기업을 육성·보호하기 위한 세금 감면 제도를 악용해 합법적으로 세금을 회피하는 방안이 유행하고 있다. 배우자와 자녀는 물론 친척과 친구에게 회사 주식을 양도하는 방법으로 진행되는 ‘합법적’ 탈세로 ‘금수저’의 세금 회피 사례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지만, 이를 규제하려는 미 정부의 노력은 지지부진을 면치 못하는 모양새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미 캘리포니아주(州) 실리콘밸리에서 기업을 운영 중인 기업인들을 중심으로 ‘적격 중소기업 주식(Qualified Small Business Stock, QSBS)’ 제도를 통해 세금을 내지 않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고 2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QSBS 제도는 총자산이 5000만달러(약 594억원)를 넘지 않는 ‘적격 중소기업(QSB)’의 주식에 대해 연방 세금 면제 혜택을 주는 것이다. NYT는 “QSBS 제도를 통해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은 1년간 1000만달러(약 118억7200만원) 규모의 자본 이익에 대한 세금을 피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 제도는 빌 클린턴 전 미국 행정부 시절인 지난 1993년 중소기업에 대한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해당 제도 도입을 주도한 고(故) 데일 범퍼스 전 상원의원은 당시 “좋은 아이디어를 갖고 있지만, 자본이 충분치 않은 수십만개의 중소기업에게 큰 가능성을 열어주기 위한 혜택”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슈퍼리치들의 재산을 관리하고 있는 유명 자산 관리사와 세금 전문 변호사들은 허점을 파고들었고 이 제도를 합법적 탈세의 도구로 활용했다. 다른 투자자들로부터 주식을 산 사람은 QSBS 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없지만, 증여를 통해 주식을 획득한 사람에게는 제한이 없다는 점을 발견한 것이다.

NYT는 실리콘밸리 최고경영자(CEO)들 사이에서 배우자와 자녀, 친척, 친구들에게 회사 주식을 증여함으로써 세금 감면 혜택을 겹겹이 받는 일명 ‘스태킹(stacking, 쌓기)’이 공공연한 통과 의례처럼 번져있다고 전했다. 여기에 자본을 넓게 퍼트리며 손쉽게 혜택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피넛 버터링(Peanut Buttering)’이란 이름으로도 불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 게임 플랫폼 로블록스를 설립한 데이비드 바추키 CEO가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아내와 네 자녀, 장모, 사촌 등 12명에게 회사 주식을 양도해 거액의 세금 혜택을 받았다.

NYT는 “우버, 리프트, 에어비앤비, 줌, 핀터레스트, 도어대시 등 실리콘밸리에서 시작한 유명 스타트업들도 모두 QSBS 제도를 활용한 세금 회피 혜택을 입었다”고 전했다. 익명을 요청한 한 세무 관련 유명 어드바이저는 NYT에 “유명 상장 기술 회사 설립자가 자신의 배우자와 자녀 7명에게 주식을 증여해 1억5000만달러(약 1780억9500만원) 상당의 수익을 거두는 것을 돕고 있다”고 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조세 전문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캐러채일 씨는 실리콘밸리에서 기업을 운영하는 고객들에게 세금을 피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농담을 한다며 “아이를 기르는 데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실리콘밸리 지역에서 아이를 많이 낳아야 하는 유일한 이유는 QSBS 제도”라고 말했다. 세금 회피를 막기 위한 미 정부의 노력이 있었지만, 효과를 거두고 있지 못한 상황이다. 지난 2018년 8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미성년 자녀에게 증여된 주식에 대해 세금을 매기는 규제 방안을 마련했다. 하지만 규제 대상이 지나치게 광범위하고 위헌적 소지가 있다는 거센 반대 여론에 밀렸고, 다음 해 초 재무부의 규칙이 완성됐을 때 규제안은 백지화됐다.

조 바이든 현(現) 행정부도 QSBS 면세 혜택을 절반 이상 축소할 것을 제안했지만 효과에 대해선 의문부호가 달리는 상황이다. 미국 3대 투자은행인 노던트러스트의 폴 리 수석 조세 전략가는 “바이든 행정부의 시도가 조세 회피를 막긴커녕 더 정교한 조세 회피 방안을 찾는 노력을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 신동윤 기자



realbighead@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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